뉴질랜드 시골마을, 30명의 '가족'을 만들었다

낯선 곳도 '집'이 되는 법

by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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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못하는 내가,
뉴질랜드 시골 마을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뉴질랜드 북섬에서 페리를 타고 남섬 픽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진짜 혼자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고, 돈도 벌어야 했고,
무엇보다, 내가 원했던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었다.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듣고, 일상 속에서 함께 어울리며 진짜 친구가 되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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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턴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블레넘이라는 시골 마을에서는
며칠 뒤 뉴질랜드 특산품인 초록홍합 시즌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블레넘에는 초록홍합 공장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걸 기다리며 근처 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로 했다.


픽턴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마을 중심가와 조금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워홀러들이 머물다 갔는지

지저분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직원의 설명을 잠시 듣고, 내게 방을 배정해 줬다.
방은 좁고 어두웠다.
5평 남짓, 눅눅하고 음침했지만, 이전 여행 중 더한 곳도 다녀 봤기에 크게 상관없었다.
진짜 문제는 몸이 너무 피곤했다는 거였다.
전날 새벽부터 8시간 운전, 차박, 추위, 페리 탑승까지…
도착한 날 오후, 그냥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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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도 없고, 홍합공장 일은 일주일 뒤에 시작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함께 지낼 사람들인데, 이왕이면 친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는 잘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진 않았다.

며칠 사이, 게스트하우스엔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어느새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작은 공간에 모여 있었다.
동아시아, 동남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모두 나이와 국적도 다르고, 모두 낯선 곳에, 다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초록홍합 공장’이라는 공통점만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아무도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다들 핸드폰만 보고, 저녁이면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분위기가 어색하고, 좀 아쉬웠다.


“이 상태로 홍합시즌을 보내야 한다면 떠난 의미가 없다.”

이 생각을 하니, 이곳도 결국 또 하나의 틀에 갇힌 ‘생존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두려웠지만, 경험을 위해 마음을 먹었다.
'내가 먼저 움직이자.'

한 사람씩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악수를 건넸다.

“나 영어는 잘 못해. 그래도 친구하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살짝 놀라면서도 대부분 미소로 답해 줬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사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다.


그날 오후, 나는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한명한명 다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오늘 맥주 한 잔 하자. 저녁에 파티할 거야.”

나는 차가 있어 주류점까지 갈 수 있었고, 내 차는 8인승이었다.
여러 친구들에게 함께 리쿼샵에 가자고 했고,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씩 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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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차 안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늘 그냥 마셔도 좋고, 같이 마셔도 좋아.
어차피 앞으로 오래 같이 있을 테니까.”

그 말 이후로,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말이 섞이고,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다.

리쿼샵에 도착했을 땐 여전히 조금 어색했지만 각자 맥주를 사러 들어갔다.

나는 혹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봐 나는 맥주 두 박스를 샀다.

통장에 돈은 거의 없었지만, 앞으로 모두와 같이 보낼 시간을 생각하니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돌아오는 길, 다들 맥주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 7시, 리빙룸에서 보자!”


7시.
딱 두 명이 왔다.

순간, 좀 멍했다.
민망했다.
“그냥 셋이 마실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만약 오늘 이렇게 끝난다면 여기를 떠나기 전까지 틀에 갇힌 일상처럼 버텨야 할 것 같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하고 싶다는 내 바람도 그냥 막연한 기대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는 움직였다.

주방에 있던 사람들, 식사 중인 사람들, 방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찾아가 말했다.

“지금 맥주 마시고 있어. 같이 하자. 맥주 없으면 내가 줄게. 사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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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시간 뒤, 거실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준비한 맥주는 금세 바닥났다.
그날 밤, 30명의 사람들은 조용히 견디던 시간을 넘어 서로의 미소 띤 얼굴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매주 금요일이면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다들 맥주 한 캔씩 들고 리빙룸으로 모였다.
모두 살아온 환경, 나이, 나라, 피부색 다 다르지만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면 낯선 곳도 '집'이 될 수 있다는 걸.
그건, 그날 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참고로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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