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끝, 고독 시작.
외로움은 피할 대상이 아니다.
혼자 떠난 장기여행.
여행이 시작된 지 2주쯤 되었을 무렵, 나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항상 곁에 있던 가족과 친구들이 없는 낯선 곳의 하루는 길게 느껴졌다.
그리움은 점점 짙어졌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핸드폰을 붙잡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정작 여행에 집중하지 못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외로움이란 감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막막했다. 불안했다. 이제 2주밖에 안되었는데.
어린 나는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계속 감정에 휘둘려 괴로웠다.
왜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만 즐기는 걸까?
왜 나는 혼자 있지 못하는 걸까?
괴로움을 없애려고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진짜로 의지하고 있던 건 ‘사람’이 아니라, ‘연결된 상태’ 였을까?
핸드폰, 인터넷, 그리고 그 너머의 익숙한 관계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연결을 끊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보기로. 그 하나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27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절벽 옆을 달리는 구불구불한 험난한 도로와 통신도 인터넷도 닿지 않는 산중턱 국경으로 향했다.
아무도 나를 찾는지 알 수 없었고 나 역시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었다.
그곳에선 핸드폰은 무용지물이었다.
버스 창밖으로는 베트남과 라오스 사이의 산맥이 끝없이 펼쳐졌고
창밖에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산속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지금'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한 가지 질문이 머리를 떠올랐다.
내가 느끼던 외로움은 ‘누군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와 연결되지 못해서’ 오는 감정일까?
국경을 넘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메콩강은 유난히 잔잔했고 스님들이 맨발로 탁발하는 아침 풍경은 숨소리처럼 고요했다.
풍경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보이고 내 감정의 결이 느껴졌다.
자신감을 가진 나는 루앙프라방을 떠나 인터넷이 닿지 않는 시골로 향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마을에서 몸짓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행복한 아이들의 미소, 길을 가르쳐주던 낯선 이의 손짓 하나가
어쩌면 수많은 대화보다 더 진한 연결로 다가왔다.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외로움이 고독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 감정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나를 단련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외로움은 피할 대상이 아니다.
그 안을 통과해야 비로소 ‘고독’이 된다.
스스로와 진짜로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고득은 연습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결심일 수 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앞에 있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스스로와 연결하는 것.
그 단순한 행동이 내 안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