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렸을 때, 진짜 세상이 열렸다.

'틀림'과 '다름'

by 석탄
"그럴 수도 있지"




여행을 떠나기 전, 어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다.
인터넷에서 본 정보, 책에서 읽은 사실, 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기준들.
그 안에서 나는 확신을 갖고 세상을 판단했고,

내 상식에 맞지 않는 의견이나 삶의 방식은 대부분 ‘틀렸다’고 여겼다.
세상은 그런 나를 ‘고지식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조차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생각은 언제나 정답이었고, 세상을 보는 내 방식엔 의심이 없었다.


그런 내 사고방식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조용한 해변가에 있는

한 허름한 호스텔에서 만난 한 알제리 청년을 통해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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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후 방에 들어가려 문을 열었는데, 문이 반쯤만 열렸다.
무언가에 걸린 듯한 느낌에 몸을 숙여보니,
문 뒤에는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짐만 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무엇을 하는 중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스러웠다.


주방으로 나와 시장에서 사 온 삼겹살을 구울 준비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시 후, 그 청년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웃으며 삼겹살을 같이 먹자고 권했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나는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는 안 먹어.”


무슬림.


실제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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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가득해진 나는 식사를 마치고 그에게 다가가 웃으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과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기도하던 이유를 자연스레 물었다.
그는 웃으며, 하루 다섯 번의 기도와 그 방식, 이슬람의 문화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내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무슬림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꺼내 물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한 가지의 질문은 이슬람에서 여자에 대한 시선이었다.

“이슬람 남자들은 이슬람 여자들을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무례하고 직설적인 말이었지만, 그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여성을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남자들도 있어. 하지만 그건 이슬람이란 종교 때문이 아니라, 그 남자들이 문제인 거야.
나는 여성을 남자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여자야. 우리 어머니.”

그리고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 사진도 보여주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
내가 알고 있던 사실, 아니 믿고 있던 ‘틀림의 기준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날 밤늦도록 서로의 문화와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틀렸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그저 ‘다른’ 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화의 끝에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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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따뜻하고 차분했던 그 청년과의 몇 시간은 내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상식’과 ‘사실’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세상은 더 다양했고, 틀림이 아닌 ‘다름’이 존재할 뿐이었다.

지금은 누군가와 의견이 다를 때, 예전처럼 단정 짓기보다 한 번쯤 멈춰서 이렇게 말해본다.


“그럴 수도 있지.


그 한마디는 내 기준을 내려놓고,

다른 시선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가장 작은 용기이자,
내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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