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4만 시간 워홀 끝에 얻은 깨달음

세 나라의 워홀, 하나의 나

by 석탄


만 시간의 법칙.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세 나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다.
그리고 내가 보낸 워홀의 시간은 아마 4만 시간이 넘을 것이다.
어느새, 나는 고인 물이 되어 있었다.


뉴질랜드와 캐나다에서 워홀을 한 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워홀지였던 호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게 익숙했다.
은행 계좌를 만들고, 면허를 바꾸고,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일을 시작하는 과정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익숙함 속에서 특별함은 사라지고,

모든 게 그냥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모든 게 수월하게 흘러가는데도 마음 어딘가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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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워홀을 한 나라, 뉴질랜드에 갔을 땐 아름다운 자연에 세상이 눈부셨다.

모든 게 새롭고 낯선 게 해방으로 느껴졌고 그 자극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쳤다.


차를 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곳곳을 여행하고,

때로는 도로에서 만난 히치하이커를 태우고,

낚시로 잡은 해산물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줬다.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한 설렘으로 하루하루가 가득했다.

장엄하고 웅장한 자연에 이끌려 기뻤고, 그 모든 것이 곧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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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선 뉴질랜드의 자유로움과는 정반대의 삶이었다.

눈이 내리고 영하의 날씨의 캐나다 동쪽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살던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물리적, 정신적 거리감 속에서

가족, 친구,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서서히 떠올랐다.
나를 채우고 싶어 싫어하던 분야까지 일부러 공부고 들여다보며,

나를 넓히려 애썼다.


그건 조금씩 나의 밖에서 나로 시선이 돌아갔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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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워홀지였던 호주에선 상황이 달랐다.
모든 게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일상이 된 워홀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언제나 ‘내 마음을 묻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가장 익숙한 환경에서, 나는 가장 낯선 질문과 마주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제야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꿈은 희미해졌고, 미래는 불분명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긍정적인 나만이 아닌 부정적인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됐다.

호주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깊은 공허와 불안, 무기력함과 외면했던 감정들을 마주했다.
죽음조차 무섭지 않다고 느껴질 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세 나라에서의 워홀은 ‘워킹과 홀리데이’를 한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시선으로 나를 다시 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에서는 세상이 만든 감정에 흔들렸고,

캐나다에서는 내 주변과 생각의 겉면을 돌아봤고,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내면 깊숙이 나 자신을 마주했다.


누군가는 내 워홀을 두고 ‘시간 낭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버지는 여행만 하고 남은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한때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 안의 질문들과 이렇게 깊게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워홀을 세 번 한 나는, 이제야 알게 됐다.


익숙함이 쌓이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내가 어떤 나라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나 자신과 얼마나 가까워졌는가를 묻게 만들었다.


그게 내가 4만 시간을 통해 얻은 가장 확실한 답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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