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시선
1.
쉬는 날은 물론, 비행이 있는 날에도 항상 곁에 있는 필름 카메라 한 대.
이따금씩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왜 손에 들고 있는지 모를 만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나에게는 주머니에 늘 있는 스마트폰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존재가 바로 필름 카메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찍는 취미는 있지만, 보정이나 카메라와 관련된 빛의 양, 셔터 스피드, 광각 등 깊게 알아보면 좋을 주제들에는 아직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제대로 알고 취미를 펼친다면 조금 더 나아질까 하며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지금과 같은 서툴다면 서툴고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내 사진이 좋다. 견고하고 전문적으로 담을 나의 시선과 투박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나의 시선은 모두 소중하다.
여름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나던 날, 태양은 뜨겁지만 우거진 나뭇잎에서 반짝거리는 초록빛이 강렬하게 내 시선에 들어왔다. 이어서 나무 아래 넓게 드리워진 그늘 안에서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며 앉아 있는 엄마와 딸이 보였다. 문득 간절하게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가방을 열심히 뒤적였지만 하필 그날은 필름이 다 떨어진 날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다. 눈앞의 대상을 보고 떠올렸던 감정이 내가 담은 사진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을 ‘좋은 사진’이라고 말하고 싶은, 꽤 주관적인 철학이 고개를 들었다. 친구들과 소풍을 나서는 초등학생 무리를 보며 떠올렸던 싱그럽고 즐거운 감정,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떠올렸던 회색빛의 피곤한 감정, 청춘들의 새로운 것을 향한 여행이나 도전에서 느껴지는 희망찬 열정 등등 나의 시선에 스며든 감정들이 그대로 사진에 담겼을 때, 비로소 가장 좋은 사진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선을 담으며 지내보니 주관이라는 간을 치고, 농익은 추억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온다. 때론 간직한 시선을 보며 경험했던 것에서부터 파생된 수천 가지의 상상도 맛볼 수 있다. 나는 나의 주관적 철학이 당당히 고갤 들고 나의 세계를 활보했으면 하는 목표가 있다. 이렇듯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오히려 스무 살 무렵의 나보다 서른 살 무렵의 내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정말 감사하게도, 인연이 닿게 된 여러 지인의 칭찬과 추진력, 제안과 응원이 나를 더 흥미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어떤 시선으로, 어떤 글을 남길 수 있을까. 나의 주관적 철학이 고개를 끄덕임을 느낀다. 나 또한 그들에게 칭찬과 위로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수동 카메라를 사용할 경우, 필름을 감아줄 때마다 느껴지는 긴장감이 있다. 아마도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줄어드는 유효 필름에 대한 아쉬운 마음 반, 이 필름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짐에 설레는 마음 반이 적절히 섞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사진 찍는 동안 대상의 초점을 일일이 맞춰줘야 하는데, 바라보고 있는 대상의 초점을 선명하게 잡기까지 걸리는 20초가 20분인듯하다. 카메라의 작은 뷰어를 통해 피사체에 시선을 보내고 초점을 잡아 담아내기까지의 시간은 언제나 긴장되지만 즐겁다.
수동 카메라에서 탄생한 결과물은 웬만하면 실수가 거의 없다. 피사체를 선명하게 잡았다면 선명하게 나올 것이고 피사체를 날려버렸다면 엄한 곳이 선명하게 나올 것이다. 앞서 말한 실수란, 의도했던 안 했던 카메라를 조작해서 셔터를 눌렀을 때 내가 설정한 그대로 나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내가 설정한 값에 의해 정확히 표현되는 결과를 만날 수 있다. 물론 값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나 계산의 착오로부터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점이 어찌나 역설적인지, 참 매력 있다. 다만, 눈앞의 대상을 빠르게 담지 못하는 특징 때문에 놓치는 순간과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무게 역시 만만치 않은 수동 필름 카메라는 자발적 의지 없이는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무리가 있다는 점도 있다.
내가 쓰는 수동 필름 카메라의 경우에는 회색과 검정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어떤 단단한 물체보다 더 딴딴한 느낌이 있다. 딴딴함의 또 다른 해석으로 굳은 의지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장의 사진을 찍는 순간, 앙칼진 셔터 소리를 내며 그 순간을 '찰칵!'하고 붙잡는 의지가 있다. 덕분에 흐릿한 기억, 지나간 시간에 대한 시선이 연결된다. 그렇기에 수동 필름 카메라를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