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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l 23. 2019

손을 꼭 잡고

 

 한 손 씩 맞닿은 후,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어요. 연애 때부터 신혼인 지금까지 서로에게 내민 손을 꼭 잡고 걸어왔어요. 우린 서로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르며, 무엇을 꿈꾸는지 이야기했어요.


짝!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사이에 어색했던 기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리는 같이 있으면 정말 많이 떠들고, 실없이 웃고 장난치다가, 또 한없이 진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한마디로 24시간이 부족해요. 어느 정도인 줄 아세요? 서로 영화 보는 걸 무진장 좋아하는데, 따로 관람해요. 각자 쉬는 날 영화를 보곤 해요. 만나면 대화 나누기도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혹시나 퇴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그냥 하루를 넘기는 것보다는 되도록 1시간이라도, 아니 30분이라도 만나야 했어요. 다음 날 새벽 비행이 있거나 최소 3일 후에나 볼 수 있는 스케줄 때문에. 나름 애틋했네요. 하긴 신혼인 지금도 연애할 때처럼 애틋해요. 행여나 아내의 야근과 제 급격한 스케줄 변동이 심술을 부리기라도 하면, 여전히 생이별하는 중이에요.


 에헴, 투정은 이쯤 해두겠어요. 사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예요. 제가 저희 부부를 소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취미' 때문이거든요. 아내의 취미가 저에게, 제 취미가 아내에게, 서로에게 없었던 무언가가 우리에게 찾아왔어요. 


 함께 하는 취미들을 정리해서 나열해보았어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서 정리가 되네요. 


1. 구제시장은 천국
2. 커피에서 차로
3.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림 그리기
4.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기
5. 내 단짝 필름 카메라


 이번 '손을 꼭 잡고'에서는 1번과 2번에 대해 이야기 들려드릴까 해요. 



 1. 구제 시장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구제시장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많아서 잘 모르시거나, 동묘나 종로라는 장소 정도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육회나 빈대떡이 유명한 광장시장 쪽에 구제시장이라는 게 있다', '그곳에 가면 저렴하게 구제 옷을 구매할 수 있다' 정도만 생각했었죠. 저는 옷에 있어서 취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선택의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입을 게 필요하면 백화점에 가봤고,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구매하는 그런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에게 구제시장을 정말 좋아하고 실제로도 능숙하게 옷을 고르고 흥정하는 아내(그 시절 여자 친구)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어요. 처음 쫓아다니면서 느꼈던 구제시장에 대한 첫인상은, 옷 더미에서 취향을 몰라 헤맬 수밖에 없는, 여러 호객행위로 골치 아프고 두려운 곳이었어요.


 한 번, 두 번 아내를 따라 구제시장에 가보니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싶었고,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어요.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 구체화가 된 거죠.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옷보다는 살짝 커서 덮어주는 느낌의 옷을 좋아하고, 슬림한 바지보다는 일자바지가 더 정이 가는 취향이 고개를 내밀었어요. 아내는 추운 날이면 도톰한 옷 한 개를 걸치는 것보다 얇더라도 여러 벌로 나누어 따뜻할 때는 따뜻하고, 더울 때는 벗을 수 있는 방법을 좋아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닮았었어요. 게다가 은근 둘 다 흥정을 잘해요. 괜히 안 좋은 물건, 더 높은 가격으로 사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아무튼 우리는 구제시장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제겐 없던 세상을 알려주고 만들어준 첫 번째 소재였어요. 구제 옷 틈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 흥정을 해서 원하는 값을 받아내는 것도 새롭고, 각각의 옷가게마다 자부심 있게 물건을 보이는 모습도 볼 만했어요. 그래서 서서히 끌리더니 이제는 백화점 가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구제시장은 천국입니다. 마음껏 취향을 고르세요!






 2. 하루에 최소 한 잔은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아요. 회사에 출근하면 피곤함을 누르고 산뜻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커피가 자동으로 생각이 나죠. 저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침 출근 시간이나 점심 식사 시간 이후만 되면 커피가 생각나던 것 같아요. 물론 스스로 검열을 하긴 했어요. '하루에 마시지 않을 수 있으면 마시지 말고, 마시고 싶더라도 최대 두 잔까지만 마시자'라는 생각을 했죠. 저는 오히려 차를 마시고 싶었는데, 차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거나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남편 이상순이 함께 여가를 보낼 때마다 다도를 해서 차를 내려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커피는 여유가 없을 때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느꼈다면, 는 여유가 있을 때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우연의 일치였을지 몰라도, 이런 생각이 있고 관심이 생겼을 때쯤 아내의 어머니를 만나뵀어요. 어머님은 전라남도 광양에서 지내시는데 그쪽의 지역을 사랑하고, 문화를 공부해서 해설해주시는 일을 하셨어요. 아내가 어머님을 쏙 빼닮은 점이 여러 가지를 언제나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인데, 여러 취미와 도전 중에서도 마침 다도에 대해서 배우셔서 그 방법을 잘 알고 계셨고, 예비 사위인 제가 광양댁에 찾아갈 때면 차를 내려주시면서 차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 역시 커피보다 차를 사랑하게 됐죠. 어머님과 저, 그리고 아내 모두 커피도 물론 좋아하지만, 평소 몰랐지만 궁금했던 차에 대해서 관심의 영역을 넓히게 된 거죠. 손잡고 걸어가지 못했다면 결코 몰랐을 부분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우리 부부는 커피숍을 자주 가지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찻집을 찾고 방문해보기도 해요. 집에서는 물론 차를 즐겨 마시고요. 그래서 과거에는 커피 선물을 많이 받았던 반면, 요즘에는 차 선물을 많이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도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은 수준이지만 집에서 따뜻한 물로 찻잎을 우려내는 행동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을 때가 많아요. 요즘 같이 뜨거운 날에는 얼음컵을 따로 준비해서 시원하게 먹으면 더없이 상쾌하고요. 우리처럼 차에 대해 관심이 있긴 있으나 커피가 실질적으로 편했기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도 어렵지 않으니 기분 좋게 시작해보시길 권해드려요. 자, 저는 그럼 다음 이야기를 드리기 앞서, 시원하게 차 한 잔 내려 마셔볼까 해요. 꽃 향기 가득 머금고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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