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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Aug 07. 2019

서로의 취미가 서로에게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부분이 '취미'인데요. 아내의 취미가 저에게, 제 취미가 아내에게, 서로에게 없었던 무언가가 우리에게 찾아왔어요. 함께 하는 여러 취미 중 3번에 대해 이야기드리려 해요.


짝!


3.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림 그리기


<집들이 선물, 산타 캔들 홀더>


 3.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아내를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내는 정말 제가 느끼기에 군더더기 없는 글과 유쾌한 힘이 담긴 그림 실력을 가졌어요. 그래서 부러울 때도 있죠. 그런 아내가 일 년 전, 자신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와 함께 아이패드와 팬을 구매했어요. 연애시절 데이트를 할 때면, 종종 작은 도화지 노트와 붓, 물감을 이용해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었는데 조금 더 장소와 준비물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내는 아이패드와 팬으로 더 자주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저는 주로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패드를 보곤 했는데 새롭게 그려진 그림들을 볼 때면 정말 예쁘고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내는 본인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가끔은 더 배워서 잘 그리고 싶다는 말도 했죠. 오히려 그림이 좋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아! 사실 아이패드와 팬이 생기고부터, 저도 가끔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제가 살면서 그린 그림이라고는 졸*맨처럼 생긴 짝대기 사람과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이 전부였는데 그림이 작은 취미가 됐어요. 원하는 느낌의 팬 종류를 직접 고를 수 있고 색을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다 보니 편하게 손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저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위의 그림이 제 첫 번째 그림이었죠. 결혼 후, 아내의 친구에게 집들이 선물로 받았던 산타 캔들 홀더였어요. 감사한 마음과 12월에 참 잘 어울리는 산타의 모습에 무심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저도 재미있었고, 편하게 그렸을 뿐인데 친구 분이 참 좋아해 주셨어요. 이때부터였나. 심지어 아내는 저에게 앞으로 특별하거나 일상적인 기억을 남길 때,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표현해달라고 했죠. 네, 맞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칭찬 한마디에 겁도 없이 취미를 가지게 됐어요. 취미란 그런 거잖아요?


<우리집의 평화>, <깨트린 컵과 그릇>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재밌었어요. 좀 더 명확히는 칭찬받다 보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누군가 기다려주고, 좋아해 주니까 더없이 행복하더라고요. 한 번은 저희 부부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 놀러 온 날의 차려진 상의 모습을 그 자리에서 그렸던 적이 있어요. 잠시 간략하지만 투머치 하게 소개해보면, 전주에 사는 이 친구는 저희 결혼식 전날에 신혼집에서 함께 잠을 잤던 친구예요. 원래 아내의 친구였지만 지금은 저와 더욱 친해져 버린, 그리고 여전히 존대하며 좋은 영감을 주고받는 친구죠. 아무튼 이맘때쯤 저희 부부는 인터넷에서 한 기사를 접했어요. '사람은 한정된 공간만을 활용한다.'라는 기사를 읽고, 넓은 집안 곳곳에 외면받는 공간들을 되살려보고자 다짐했고, 친구가 방문한 날에 안 쓰던 책상에 다과를 차려놓고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특별하고 기억에 남았어요. 그 느낌을 최대한 간직하고자 지체 없이 그렸던 그림이죠.


 집에서 요리는 아내가 하고 설거지는 제가 하는데, 도대체 제 손에 뭐가 달렸길래 아내가 아끼는 컵과 그릇만 골라 놓쳐서 깨트려버리는 거예요. 절망적이죠. 말로 표현이 안돼요. 처음에 깨트렸던 컵까지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세 번째는 동시에 부딪혀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었어요. 아내는 애써 웃으며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를 꽉 문 모습을 봐버렸어요. 정말 속상했는데, 이렇게 버리기 아쉬운 생각에 사진으로 담아놓고 며칠 지난 뒤에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줬어요. 참 이게 뭐라고, 정말 좋아해 줬어요. 그림도, 저도, 떠나보낸 컵과 그릇도. 그래서 애틋한 마음이 담긴 그림이죠.


 이렇게 칭찬의 힘으로 그림을 취미 삼아 그리기 시작해서 어느덧 아이패드 속 제 폴더가 생겼고, 차츰차츰 길 막한 스크롤이 등장할 만큼 쌓이고 있어요.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길 때도 행복하지만, 실력 없는 그림으로 감동을 남길 때 더욱더 행복해요. 그래서 계속해서 남겨보려 해요. 얼마만큼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그림들이 쌓여갈지 기대되고 궁금하네요. "오빠는 오빠 스타일이 있어, 따뜻하고 감동을 줘"라며 응원해주는 아내 덕에 자기 스타일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자신 있게 팬을 쥔다. 흠. 취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끝이 없네요. 다음 글에서는 4번 자기 목소리로 노래 부르기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오늘도 내일도 즐겁게 취미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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