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울지마.

by 흑곰

24년 1-2월 무렵 가슴에 약 1.5cm가량의 툭 튀어나온 혹이 감지됨

7/26 금요일 건강검진 예약했으나 회사 전사 워크샵이 있다는 사실을 깜깜.. 가장 빠른 날인

9/19로 연기 9/19 목요일 건강검진. 바로 조직검사 권고

9/24 화요일 분당위드심 조직검사, 검사 중 암을 생각 하는 것이 좋겠다 말씀주심

9/30 조직검사 결과 암진단

10/1 대학병원 및 상급병원 예약

10/4 산정특례 암환자등록

10/14 산부인과검진, 뼈스캔, MRI, CT

10/18 산부인과 검진 결과 상담

10/21 암센터 초음파, 검진결과 상담

11/5 분당차병원 수술, 11/7 목요일 퇴원

11/7 미라클(요양)병원 입원

11/13 분당차병원 외래

11/20 분당차병원 외래

12/11 분당차병원 외래

———


13일 첫 외래에서는 HER2양성이 의심된다 하여 추가 검사를 한다고 했었다.

1주일 뒤, 20일.. HER2만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호르몬양성 유방암 항암은 그나마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1년 항암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결과는 운 좋게도 음성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11/20일에 온코타입X 검사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온전히 환자의 결정이라 하셨다. 유전자검사를 미국으로 보낼지 독일인지 유럽으로 보낼지도 온전히 정하라 하셨다. 임상이 많은 온코타입x로 하기로 결정하고(미리 공부하고 미리 결정해두었었다) 피마르는 3주를 보냈다.


항암을 해도 안해도 걱정이 앞섰다.

12월 중순무렵이면 아이의 방학이다. 항암을 하면 너무 힘이 들텐데 아픔을 집안에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병원을 가자니 아이를 케어하기가 어려워 걱정이 되었다. 사춘기 아니 얼마나 케어할까마는 그래서 중요한 시기라 걱정이 앞섰다.

항암을 안하면 안하는대로 걱정이 없는것이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또 출근을 하고, 운동도 없는 채로 하루하루가 흘러갈게 뻔했다. 식단조절을 하고 있지만 출근하는 이상 일반식을 할 수 밖에 없고 스트레스를 안받기 어렵다. 회사 복귀한지 3주째부터 특히 체력이 딸리는 것을 꽤 느끼고 있었다. 팔뚝의 살과 근육이 모두 빠지고 병약한 몸이 되었다. 나는 할머니의 몸이라 표현하였고 야속하게도 남편도 그렇다 하였다. 주말과 재택하는 날 저녁 남편을 따라 운동을 가보지만 스쿼트 몇개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니 항암을 안하는 경우 어찌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기를 지 염려되지 않는게 아니었다. 허나 비교할일인가..



12월 11일. 골밀도검사를 하고 김승기교수님을 뵈러 갔다.

잠시 뜸을 들이시곤, 검사가 잘 나왔다고 하셨다.

아직 나이 50 전이고 Recurrence Score 10이면 아주 좋다,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셨다. 재발율도 3%로 앞으로 관리 잘하고 약은 5년 먹자 하셨다.

다만 나는 난소제거 수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폐경이 올 수 있으니 약은 수술여부가 결정되면 그때가서 정해서 먹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도..(물론 이 과정에서 고민도 많이 하셨다)


차주 방사선치료 계획을 위해 병원진료를 가고 어쩌면 크리스마스주부터 방사선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남편에게, 친한 친구들에게.

왠지 나, 항암을 안할 것 같아. 라고 이야기했었다.

워낙 건강체질이었고 집안에 암내력도 없기에 뭔가 근거없는 자신이 있었던게 사실.


항암을 안해도 되는 결과를 엄마에게 알리자 엄마가 "진짜?"하면서 소리르 지르시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의 울음은 사실 나는 처음.. 처음이었다. 나의 엄마.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엄마. 엄마가 유방암 수술에 림프제거, 항암에 방사선까지 할때에 나는 그 아픔을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의 외침과 목놓은 슬픔을 느끼고서야 내가 얼마나 엄마의 고통을 몰랐던가. 깨달아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배우자가 있다 하더라도 나의 슬픔을 온전히 표현하기 힘들다. 암만 친해도. 암만 배우자라하더라도. 내 고통을 모두 나누기란. 쉽지않다.

어찌 다 표현할까.

슬픔은 슬픔으로서 온전히 내 몫.


엄마에게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다.

후회없도록.

매거진의 이전글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