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당연히 거르고
점심은 유일하게 온전히 먹는 식사
저녁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간단히 먹지만, 이마저도 최근 일. 어쩌다보니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러다 늦은 밤 귀가하면 혼자 맥주 두캔을 휘릭 둘러마시고 잠들고.
어느날 아침부터 거르지 않기로 했다. 그 어느 날 부터.
극혐했을 야채수프를 매 주말 끓인다. 버터없이 두유한팩에 찐단호박을 넣어 호박수프를 만들어 먹는다. 바바리안 호밀빵은 한 장을 다 먹기 힘들다. 남는 건 싸가지고 회사를 가서 종잇장 같지만 그래도 오물 씹는다.
나는 먹는 모습을 흉칙하게 생각해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가족과 절친 말고는 누군가의 밥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싫어했고 내가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더 끔찍이 싫어했었다.
생은 비루하다. 콧물이 흐르고 기침할 땐 침이 튀고 방귀가 비집고 나오고 뱃속은 꾸르륵 아우성친다. 욕심이 넘치고 하무한 허영이 생의 바닥에 깔려있고 허영 위에 자만을 채운다. 텅 빈 말이 오가고 오가는 칭찬을 이불삼아 자신을 보호한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눈을 흘긴다. 내 기분은 소중하고 타인의 기분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먹고 자고 싸고 산다. 살아있어서. 그러다 생이 다하면 떠난다. 하지만 떠나도 떠난게 아니다.
진정한 생의 소멸은 기억해주는 마지막 누군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부터.
야채수프 한 숟갈에 속이 뜨끈하다
살아있기에 뜨끈하다
그러나 삶에 대단한 추구하는 가치도 없고 먹고 싸는것 처럼 자고 깨고 숨쉰다. 수프 한 그릇에 보답하지 못하는 생이다.
이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가끔 나의 흉물스러움을 꺼내보고 덜 흉하고자 다짐하는 것 뿐. 정작 그렇다할만한 변화는 없어도.
사는동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람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최대한 덜 폐끼치도록 애쓰며 살기를.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안타깝게 떠나는 이들 대신 먹는 한그릇의 식사가 오점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