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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제 Jul 23. 2015

아버지의 편지



우리 아버지의 학력은 초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어렵게 자랐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졸업 후 농사일을 계속 지으시다 지금 돈의 가치로 단 돈 2만원만 들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오셨다고 한다. 시골에서는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로 도착하셔서는 아무 가게나 문을 두드리고 일을 할테니 숙식만하게 해달라고 하셨고, 계속 거절 당하시다 한 사진관 사장님의 배려로 사진관에서 잠을 자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평생 사진일을 해오시고 계신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밖에 못나오신게 부끄러워서 부모님이 쓰셔야 하는 각종 제출 자료들을 내 손으로 써서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부모님 학력에 고졸, 대졸을 쓸 때 초졸이라고 쓰고 싶지 않아서 대졸로 쓰고는 했다. 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들 중에 모르는게 있을 때 부모님들에게 물어보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그렇게 철 없이 살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오매불망 친구들의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편지는 오지 않고 한묶음의 편지를 여자친구로부터 받는 동기들을 부러워하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편지를 나눠주는 시간에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흰 봉투에 있는 편지를 받아들고는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누가 보냈는지 확인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편지지 가득 빼곡히 글을 쓰셔서 편지를 보내주셨다. 그것도 세장이나....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가 편지를 세장이나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철 없던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이 너무나 한심했고,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면서 틈틈히 편지를 쓰셨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항상 세상에 두려울게 없고 못할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그런 말들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30년이 넘도록 사진관 일을 해오신 우리 아버지는 색약이셨다. 완전히 색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들과 다른 색감을 가지고 계신다.  처음에는 손님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욕을 들으셨다고 하셨다. 손님의 얼굴색이 울그락발그락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셔서 지금은 훌륭한 사진가가 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가르쳐주셨다. 돈이 없어도, 많이 배우지 않아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어떤 물질적인 지원보다도 큰 지원을 나에게 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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