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 줄을 모르겠는 요즘 일상과 글럼프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무기력하고 답답할 뿐이다.

by noname



요즘 글쓰기 슬럼프를 겪고있다. 그래서 글럼프다.

슬럼프라고 하기에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그냥 술술 잘 되던 게 좀처럼 안되고 있으니 대충 슬럼프라고 쳐보자.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정리되진 않았을지라도 어쨌든 기록을 통해 나의 일상과 평소 생각들을 가감없이 생생하게 남겼었다.

쏟아내고 싶은 것들이 넘쳐서 매일매일 종이에 손으로 써대고, 노트북이나 다른 툴에 타이핑을 하기도 했다.

출근 전 아침, 회사 업무 중 조금 한가할 때, 퇴근 후 잠자기 전까지 기록하느라 하루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때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렇게 쏟아내며 쓸 때가 좋았다.

내가 어떠한 감정이 들었을 때, 그 상황을 정말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 기록들을 들춰보면 되지만 별로 열어보고 싶지는 않다. 그 때의 기분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솔직하게 썼을까?

지금은 왜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

이렇게 보면, 글쓰기에 대한 슬럼프라기 보다는 기록 변비에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왜 글쓰기, 기록이 싫어졌을까?

개인적인 사정을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다.




첫째, 기록의 무쓸모함때문이다.

1) 일기의 경우 지금 방정리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 이것저것 쏟아낸 일기장은 아마 쓸모없는 쓰레기일 것이다.

그리고 썼던 일기를 회고하지 않았다. 내가 과거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점을 바탕으로 오늘에 이르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근데 그다지 꺼내보고 싶지 않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고하지 않는 기록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2)기록할 시간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게 차라리 나은지도 모른다.

단순 기록에도 시간은 꽤 많이 든다.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에 나는 하찮다.

나는 내 기록에 자신이 없다. 내 생각이 남의 생각과 다를 것이 두렵다.

배울점 없는 끄적임을 남기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두렵다. 보잘것 없는 나를 증명하는 것 같다.

한편, 아직 읽은 책은 아니지만 오늘 도서관에서 잠깐 만나본 책이 있다.

'쓰지 않은 글이 가장 좋다' 와 유사한 한 줄의 문장일 뿐이지만 내 상태를 너무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3)그리고 '좋았던 경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내가 개인의 에세이를 책으로 만들어주는 모임에 참여했을 때, 너무너무 좋아했던 운동모임에서의 기록을 남겼었다.

하지만 나중에 운동을 가르쳐줬던 모임장(?)이 모든 멤버들을 대상으로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소하게 현금을 챙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금을 챙기는 방식이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나의 감정, 절실한 마음'을 이용했었기 때문에 나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나의 컴플레인으로 결국 모임은 해체 되었지만, 그 후로 다양한 종류의 충격에 휩싸였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멤버중에서도 내 말보다는 모임장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도움을 구할 수 없는 부당한 상황, 고소할까 했지만 보복이 두려웠던 나.

긍정적으로 했던 활동에 대한 내 기록은 쓰레기가 되었다.

그 뒤로 경험한 것에 대한 기분과 감정을 기록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기록이 배신당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게 되었다.




둘째, 정보나 감정의 유통기한

맛집 포스팅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우연히 가본 식당의 메뉴가 맛있었기에 추천하고 싶은 마음과

방문 전에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에게 메뉴와 가격 등 정보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

한편 열심히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나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등등의 이유로

다른 블로그에 맛집 포스팅을 했었다.


이 맛집 포스팅에 대해 무기력해진 이유는 2가지가 있다.

1) 생각 이상으로 요즘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몇달 되지 않은 맛집이 금방 문을 닫는다.

그렇게 되면 내가 쓴 것들은 결국 첫번째 이유처럼 '쓸모가 없어진'다.

새로운 것이 빠르게 생겨나고, 없어지고, 또 생기고 없어지고.

유행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속도에 올라타지 못하는 나의 무거움이 싫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바에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는 웃기는 생각이다.


2) 굳이 '내가 쓸 필요'는 없다. 나보다 잘 쓰는 사람, 나보다 잘 먹는 사람은 지천에 깔렸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 보다는 기록하기 위해 움직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맛있대' 라고 말하는 것을 쫓아 매일 후발주자가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남들 뒤나 따라다니다보니 뭐하러 내가 맛집 포스팅을 하는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만이 전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한 내 포스팅은 무가치하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나는 그 어떤 차별점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맛집으로 비유를 했지만 여러가지 경험에 대해 동일하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이미 다른 사람들은 겪어봤고 책으로 냈다.

나에게는 그 어떤 목적도, 의무도 없다. 한편 '되고싶다'는 마음도 사라진다. 세상엔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냥 인생에 대한 무력함과 슬럼프이다.

이걸 1년째 경험하고 있고, 아직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셋째, 하나의 완성된 목차하에 주제를 정해서 써야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질 못한다.

이유인 즉슨, 감정에 좌우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연속성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이고 기복이 널을 뛰고 돌변하는 주기도 짧다.

목차를 잡은 다음날만 되어도 그 글 주제에 대한 기분과 감정이 사라진다.

이거저거 막 다 모아보고 거기서 추린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한번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자꾸 한번에 끝내려고 하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넷째. 좀처럼 쓸 수 없는 감정들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이 내 치유 과정(?)에서 중요할 수도 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이지만, 관련된 사건들은

그동안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엄마에 대한 부재, 그리고 그에 대해 가끔 몰아치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분노했던 기억이나 다양한 모임을 하면서 느꼈던 긍정적인 기분 등을 기록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깨닫게 되는 내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와 관련된 경험들을 겪을 때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내용들은 정말 내가 기록해두고 싶은 내용이고 의무감도 갖고 있다. 꼭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님을 어린나이에 잃은 사람들이야 많겠지만, 그 극복과정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 중 나의 사례를 공유하고 싶었다. 다른사람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도 못하겠고, 내 사례를 나누지도 못하겠다.

얼마 전,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내 감정을 건드린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수습을 했지만,

그 때는 정말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마음이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서 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 때의 일을 글로 남기는 건 아직 못하겠다. 역겹고 거부감이 든다.

지금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은 좀 무뎌진 상태다'로 남겨두지만 이후에 언젠가 좀 자세히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다섯째, 글쓰기 훈련을 못하겠다. 내 인성이 문제다.

잘 쓰려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봐야한다고 한다.

벤치마킹이랄지 레퍼런스랄지 스승님이랄지 그런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걸 보고싶지 않다. 나의 빌어먹을 열등감 때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걸 좀처럼 가질 수 없다. 그들 조차 나에겐 열등감을 주는 대상이 된다.

나는 이전에 특정 작가를 좋아했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고 그 사람처럼 그리고 싶었다.

이전에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철없이(?) 무작정 준비했던 때가 있었다.

막무가내로 열정만 쏟았기 때문에 성취는 없었다 (있었을지 언정 내 기대에 못미쳤고 오히려 자존감만 무너졌다)

그 뒤로 나는 좀처럼 다른 웹툰이나 에세이, 그림 등등의 창작물 그 어떤것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넷플릭스는 보게되어 다행인데, 내가 실패한 활동에 대한 다른사람들의 결과물을 볼 수가 없게 된것이다. 보면 나의 좌절감만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극복하고 훈련해서 나아지고 발전하면 나도 좀 괜찮아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말 못하겠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나아져야 배움이 있고 성장을 경험할텐데 나는 요즘 마음의 문을 닫고 내 속에만 갇혀있다. 그렇다고 나만의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여섯째, 주변 사람들 말 듣기도 바빠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할 틈바구니가 없다.

지난 3년간은 혼자서 프로젝트를 맡아 일했었다. 일정관리도 가능했고, 회사에서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름 나만의 루틴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팀원으로 일하며 그때그때의 주어진 상황에 대처해야한다.

회사에서 팀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에 서툰 나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면 항상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하지?','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일을 하지?','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두뇌 풀가동하며 생각하다 보면 집에 돌아와서 뻗어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절대 큰 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날씨가 좋네요~' 라고 말하면, 날씨가 좋다고 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좋을지,

날씨 얘기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날씨가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요인인지 등등을 생각하면서 머리가 아프고, 표정이 굳는다. 이런 시간이 많다보니 사람을 피하고 싶다.


이렇다보니 요즘은 내가 경험한 일들에 대해 자연스러운 감상이 잘 없다. 내가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잘 없다.

(상대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람들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하루의 끝에는 '내일 출근하기 싫은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렇게 나를 돌아볼 시간이 사라졌다. 회사의 탓도, 일의 탓도, 사람들의 탓도 아닌 '내 탓'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퇴근 후 시간을 관리하거나, 내 작은 성취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온라인 모임을 하나 신청해두었다. 6월 매일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나의 괴상한 면과 그로 인해 겪는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해봤다.

어쩌다보니 길이가 길어졌고, 예상과는 다르게 간만에 1시간 이상 앉아서 기록을 하고 있는걸 보니

조금은 기록 변비가 일시적으로 해소된걸까?



무기력이나 번아웃에 대해 찾아봤던 다양한 영상들 중에서 기억나는 얘기가 있는데,

지금 내 상황과 부합한 내용은 아니지만 '해야할 일을 해야할 때 하기 싫은 이유'는

인간의 본성은 자기 편한대로 있고 싶어할 뿐이고, '생각'을 이용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수천가지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글쓰기 슬럼프 이유'가 내가 글쓰기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수만가지 핑계거리가 아닐까 싶다.




결국 내가 무엇을 하든 나 스스로 '나의 의미'를 만들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 방법을 모르겠다. (의미 부여에 방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진 않지만)

일상이 멀쩡한 와중에 글쓰기 슬럼프, 기록 변비가 온게 아니라서 단순히 글쓰기를 배우거나 어떠한 모임을 나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원래는 이 내용을 쓰려고 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머리에서 꺼내져 나오고 손가락이 움직일 수 있는게 지금까지 써내려온

'뭐라도 쓰는데 무력감이 드는 이유'여서 이걸 남겨보았다.






정말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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