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받아들이는 마음

물론 나는 성인이고 검사는 부정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단은..

by noname

* 지극히 개인적 경험일 뿐이며 두서 없는 글이지만, 남겨봅니다.

앞으로 보강하면서 과정을 적어보려고 해요




직장생활이 어려웠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 싶어서 상담을 시작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정확한 목표는 없었던 것 같고 지난 3~4년간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다녔었다.

그 후 약 1년 정도는 이직을 하면서는 토요일 주 1회 상담을 다니고 있다.


나는 오래토록 상담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배적으로 느꼈지만,

다른 상담사를 만나면 다년간 쌓인 경험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 같고 실패하는 것처럼 느껴져

한 곳에 지속적으로 다니기를 선택했다.



어느 날 어떤 맥락이었는지 잘은 기억이 안난다.

주치의로부터 '자폐의 성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은 대체로 나에 대해 스스로 경계성 성격장애라고 생각했었다.

상담을 해도 구체적으로 병명으로 나를 정의하지는 않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아도

적어도 나는 나를 경계선 성격장애로 생각했다.

성격장애 자체가 완치가 되는건 아니지만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를 주제로 한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사실 한동안 도서관에서 자폐 관련 책을 빌리거나 인터넷 자료만 찾아볼 뿐이었다.

글을 읽는게 불편해서 책은 읽다가 말기도 했고, 대체로 교수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저자라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인터넷 자료는 그닥 별 내용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를 바탕으로 나에 대입할 수 있는게 없달까..

풀배터리 검사를 해보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윽고 자폐 스펙트럼과 관련된 카페에 가입했다.

워낙 커뮤니티 카페 활동을 잘 못하는 사람이지만 용기내어 글 한두개를 올리긴 했고

어찌저찌 카페를 통해 알게 된 기관에서 aods2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다.



사실 검사를 받는게 무슨의미인가 싶기는 했다.

자폐라고 결론이 나면 어쩔것이고, 자폐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것인가?

자폐라고 의심했는데 검사결과도 그렇게 나온다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 점에 있어 후련할 것 같았고

아니라고 하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럼 내 문제가 뭔지 다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자폐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검사를 받기 전과 후의 나는 외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문득. 가끔씩. 나의 취약함이 인식될 때면

'내가 자폐라 그런가?' 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행동을 제한하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사실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야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 관심이 없는 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트렌디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였다.

하지만 노력해도 평범한(?) 사람들의 센스를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한편, 상담을 다니면서 또는 유튜브를 보면서 인간관계나 특정 상황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부하고 실행했다.

워낙 회사생활이 어려워 상담을 다녔지만, 상담비를 벌어야 해서 회사를 다녀야 했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닌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 미래를 설계하는게 목표였지만, 실패했고 좌절했다.

어쨌든 많은 것들을 견디며 여전히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그렇게 11년차가 되었다.


자폐 스펙트럼의 범주에 있는 나라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건 당연히 어려운 것인데,

이미 10년 넘게 회사는 다녔고 경력은 어찌되었든 쌓였다.

이제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없다.


한편, 자꾸 얼굴의 트러블을 뜯는 안좋은 습관 때문에 얼굴에 흉이 지자 남편이 장난감 하나를 사다주었다.

버튼을 누르거나 휠을 굴리는 등 감각을 자극하는 장난감이고 손 안에 들어오는 사이즈로 귀엽게 생겼다.

정서불안용 장난감인데 회사에서 갖고 있으니 조금 효과가 있었다.

아 내가 정말 정서불안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ados2 검사를 해준 센터에서는 성인 자폐스펙트럼 당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안내해주었다.

나의 이런 증상이 다른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연구에 동의했다. 어떤 실험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연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면 난 정말 자폐 스펙트럼의 어느 곳에 있는게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나를 타박하면서 키웠을 뿐인 부모님에게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한편 그럼에도 어떻게 일반인으로 자라와서 (괴롭지만) 사회생활을 어떻게든 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 많은 부분에서 나를 꾸미고,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수 많이 학습하고 적용했던 행위들.

하고 싶지 않지만 했던 일들, 마스킹을 하고 지내온 지난 몇십년을 돌아보니 혼란스럽다.

내 행동 하나, 말 하나가 모두 거짓된 것이 인식이 되고

사실 싫었지만 싫은 티를 내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것이 인식되니

어렵고 싫은 환경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던 나를 구출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려면 직업의 전환은 물론, 그동안 만들었던 인간관계까지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

나는 항상 꾸며진 나를 남에게 보여주며 인간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하고싶지 않은 일을 참아가며 하려고 했는데, 내 체질에 안맞는 일이라고 인지하고 나니 정말로 싫어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사소하고 작은 영역도 힘이 들었다.

친구 관계라고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욕했었다.

한편, 일반인의 '가면'과 자폐인의 '마스킹'의 차이가 무엇일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내가 겪는 어려움이 평균적인 것인지, 아니면 유난한 것인지 알지는 못한다.




검사를 받은 직후, 그동안은 별 생각 없었던 나의 약점들이 모두 자폐스펙트럼으로 인해 나온 것 같아 나의 약점이 더욱 피부로 느껴진다.

관계에서의 어려움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을텐데 그 것들이 수면 위로 오른다.


상대방은 눈치채지 못한다.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굉장히 머리가 아파온다. 나의 자폐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장소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모두에게 어렵지 않아보이는 (물론 사람들 모두 고충이 있겠지만) 관계형성과 유지가 나에겐 너무 어렵다.

나는 사람들의 수다와 다양한 책 등을 통해 인간관계를 어설프게 익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내 가면을 들킬까봐 너무 두렵다. 인간관계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는데 그걸 다 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불안증 약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나의 자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소수의 사람을 만나며 사는 것도 나의 선택, 나의 약점을 알고 노력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도 나의 선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지를 주는 의사의 말투에서 은연중 후자가 우위에 있음이 느껴진다.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상담사의 말에 동조했다. 사회생활을 해야하고 히키코모리는 사람들이 안좋게 보니까. 나 역시도 후자처럼 살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머리는 지이이이잉거렸고 또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소수의 사람을 만나며 나에게 안전한 삶을 살고 싶은 나를 스스로 부정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변화'는 거짓되게 사람을 만나는게 아니라 진솔하게 사람을 덜어내는 일이다.



소수의 사람만 만나고 어울리며 일하는 삶이 잘못된걸까?

내가 마냥 구석에 있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입에 풀칠을 할 정도의 돈은 벌고 살텐데..

왜 사회생활을 안하는 사람을 끄집어 내려고 하는걸까?

혼란스러워졌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지내야할 지 잘 모르겠다.

익명의 공간이라면 모를까 사회에서는 절대 커밍아웃 하지 않을것이다.

내가 외부 공간에 나를 어느정도까지 노출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스킹을 하고 연기를 하는 삶은 생각 이상으로 체력을 많이 소모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 나는 집에서 먹고 잠만 잘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 혼자서는 내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나의 현재 상황은 그 누구보다 일반인의 삶이다.

어려서부터 구분된 삶을 살았다면 조금은 밝은 성격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자폐를 가진 것 치고는 엄청 평범해보이고 전혀 (자폐같다는게) 느껴지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자폐임을 밝힌다한들 그렇게 타격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자폐에 대한 이해가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내가 온갖 거짓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렵다.







240428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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