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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난 Aug 13. 2017

이지고잉 펄슨

in Ericeira


반년 동안 이방인에게도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무엇이라도 맹렬히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극적인 것에 감동하며, 굴곡진 인생을 동경하고 쉬운 것에 쉽게 싫증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무 살에 시작된 여행은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성격이 모나지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고, 싫은 사람만 눈에 밟히고, 나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아니게 되고 나의 감정이 내 맘대로 컨트롤이 안되기를 몇 해, 여행의 목적은 평온한 감정을 되찾기 위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 받지만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게 틀린 것만 같다는 의심을 품고 떠나온 유럽의 끝, 이베리아 반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지고잉_Easygoing’ 을 생의 가치로 삼고 있었다. 이 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이나 이 곳에서 살기 위해 찾은 사람 또는 이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내게

-
나는 이지고잉 하는 사람이야.
나는 이지고잉 하게 살고 싶어.
나는 비로소 이지고잉 할 수 있게 됐어.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이지고잉이라는 것은 쉽게 쉽게, 좋은 게 좋은 거라, 적당 적당하게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가치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자 그 의미가 간절하게 다가왔다.


정신 없이 바쁜 사람을 보면 놀리는 이지고잉.
길에서 뛰는 사람을 보면 놀라워하는 이지고잉.
언쟁하고 싸우는 사람을 별종 취급하는 이지고잉.
시비를 걸면 농담으로 받아치는 이지고잉.
먼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이지고잉.
크리스마스에, 집 앞 홈리스_Homeless에게 선물상자를 건네는 이지고잉.

고집불통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이지고잉.
직업은 바꿀 수 있지만 나는 바꿀 수 없는 이지고잉.
남의 가치에 관대하지만 남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는 이지고잉.
내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내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이지고잉.
내가 나를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로 이끌어가는 이지고잉.
무리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멀리 보고 느긋하게 웃으면서 이지고잉.

쉬움이 어려움보다 더 멋진 가치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 가치를 행동하며 살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지고잉을 알게 됐고 이 여행에서 이지고잉을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멋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본인을 만족시키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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