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난 Jan 12. 2019

공동거주 실험: 열흘의 기록

집에서 배운 것

6일째, 수요일


회사일이 너무 많아서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잤다. 



7일째, 목요일


유기자가 밤에 미리 짐을 싸서 나갔다. 금요일부터 일주일간 겨울 휴가를 바르셀로나로 가야 하기 때문에. 



8일째, 금요일


퇴근 후에 윤서와 둘이 동네 오뎅바에서 만났다. 토요일 마지막 날은 정말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9일째, 토요일


 매일 밤 "내일은 대륙식 아침식사를 차려먹자"라고 다짐하고 매일 아침 "아아, 내일은 반드시"라고 다시 다짐을 번복하다가 드디어 아홉째 날. 핫케이크, 베이컨, 웨지감자, 베이크 빈, 스크램블 에그, 커피로 구성된 대륙 스케일의 아침을 만들었다. 엄청 많다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부족함이 없는 정도였다. 주중의 어느 날, 남대문에 가서 새 뜨개실을 사 왔기 때문에 밥을 먹고 또 뜨개질을 했다. 빨간 넥워머를 또 하나 완성했는데 너무 커서 단추를 달아서 사이즈를 줄였다. 그리고 갈색 실로 새로운 모자를 뜨기 시작했다. 이번엔 크고 길어서 본격 추위에도 안전한 사이즈로. 윤서도 모자를 완성했는데 모자라기보다는 랍비용 머리 뚜껑 같았다. 무언가에 씌울 날이 오겠지. 뜨개질에 용도 변경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오후엔 동네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부동산에 들려서 거주공간 코앞에 나온 집을 하나 봤다.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정말 산다면 좋겠길래. 집보다도 탁 트인 옥상이 매우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집은 사지 못했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잔뜩 했다. 시장 안에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예품, 작은 가게들에서 파는 이국적인 물건들이 많다. 이 동네의 옷집들은 비슷비슷한 느낌의 옷들을 다양하게 판다. 넉넉한 품, 편한 소재, 둥글둥글한 핏. 이런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동네에 모이나 보다. 옷을 사들고 유명하다는 쌀국수를 먹었더니 바로 앞에 새로 연 바에 공짜 데낄라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길래 바로 넘어왔다. 데낄라를 마시면서 동네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옷을 파는 가게들도 각 동네마다의 느낌을 가진다면 쇼핑하기 편리하고 재밌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미 그렇게 된 건가? 

 집으로 와서 무한도전을 보며 모자를 완성했다. 방울도 달았다. 그 모자를 쓰고 나와서 근처 라이브 바에 갔다. 좁은 칵테일바에서 무대도 확보하지 못하고 혼성 2인조 밴드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보컬이 앙코르로 뭔 트로트를 부르며 호응을 유도하는데 익숙한 분위기. 회식이다. 느닷없네. 이 동네에는 소상인들과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회식 분위기가 색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바로 그 전날 겪은 일인데. 주말까지 회식을 할 수는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간 곳이 근처 인디밴드 공연장. 하지만 공연이 끝나버려서 또 박차고 찾아간 곳이 한때 자주 갔던 고양이 술집. 그런데 고양이 술집이 서촌으로 이사를 해버렸고 그래서 흥분감에 또 택시를 타고 서촌 도착. 하지만 고양이 술집엔 더 이상 고양이가 없고! 그래서 한잔만 마시고 또 박차고 나가 노래방에 가서 춤추며 노래를 부르다가 새벽 3시에 연남동으로 귀가했다는 것이 마지막 공동거주 실험의 기록이다. 연남동의 마지막 밤을 서촌에서 마무리했다. 술이 우리를 그곳으로 가게 했네... 그 새벽에 도착해서 모자를 또 하나 완성하고 잤다. 술이 나를 뜨개질하게 했다.



열흘째, 일요일
 

 열 두시 반. 며칠 만에 날이 풀렸다. 해가 드는 골목으로 윤서가 커다란 캐리어와 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떠났다. 올 때보다 더 짐이 많아졌다고 의아해하면서. 그리고 나도 캐리어를 끌고 나가 현관문을 잠갔다. 쓰레기를 내놓을 수 있는 건 오늘 일몰 후라 엄청나게 많은 재활용 쓰레기들을 남겨두고 나오는 것이 맘에 걸렸다.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렇게 술병이 많아?라고 말할 것만 같아서. 열흘간의 공동거주를 마치면서 윤서가 이렇게 말했다. "나 앞으로 일주일간 금주할 거야." 이런 말을 하는 윤서는 처음이니까 우리의 공동거주에는 공동 음주가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맞네. 

 

 그럴 줄 알았지만 공동거주는 참 즐거웠다. 회사가 중심이 되는 삶에서 집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 내 중심이 옮겨지는 것이 좋았다. 퇴근하면 씻고 이거 저거 좀 보다가 자는 집의 생활에서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좋았다. 요리도, 대화도, 뜨개질도, 음주도 꿈도 무엇이라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열흘이 한 달이 된다면 운동도 했을 거 같다. 그리고 각자의 방에서의 시간도 가질 거 같다. 한 달이 일 년이 된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어도 된다는 여유로움이 생길 거 같다. 윤서는 샤워를 하고 나면 샤워기 줄을 돌돌 말아 정리한다는 것과 유기자는 침대 정리에 재주가 있다는 것 같은 서로가 가진 생활의 기술을 더 알게 될 거 같다. 일주일에 하루는 영화를 보는 밤, 일주일에 하루는 요가를 하는 아침, 일주일에 하루는 금주의 밤, 일주일에 하루는 대륙식 아침상의 날 같은 거주자들의 전통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 열흘이 일 년이 되고 몇 년이 되다가 하나둘 떠나게 된다면 좋았던 만큼 허전함이 커질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공동거주의 시작점과 끝점이 내 인생에서 즐거운 또는 슬픈 분기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닌가. 셋으로 시작했지만 넷도 다섯도 될 수 있는 건가.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아내로서의 나보다 하우스메이트로서의 나로 살아간다면 가사도 동거의 의무감도 즐거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형태의 가정을 갖게 되더라도 이 열흘의 경험에서 얻은 것을 기억하고 싶다. 밀도 있게 열흘을 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