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운동을 가려고 건물을 나서는데 내 앞으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맨 앞사람이 유리문을 열고 나갔고 두 번째 사람이 핸드폰을 보느라 문이 닫히는 줄을 몰라 유리문에 어깨를 꽝 찧고 나갔다. 세 번째 사람인 나는 도로 닫힌 문을 열고 나갔다. 세 사람의 사이의 간격은 50센티도 되지 않았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라서 앞사람은 민망해하며 웃었고 뒷사람은 어깨가 아프다며 웃었다. 그 뒷사람인 나는 ‘그만 웃고 사과를 하지 그래’라고 생각하며 뒤따랐다.
서울에서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앞사람이 나갈 때 문을 잡아줬다면, 뒷사람이 그 문을 잡고 나가 또 문을 잡아줬다면, 내가 그 문을 잡고 나가 또 문을 잡아줬다면 흔치 않은 미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의 이야기, 그러니까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교육비 보조, 육아 지원, 장애인 복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하게 안전하다고 느낀다. ‘저 나라에서는 내가 다치고 망가져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류의 안전한 기분.
그런 비슷한 류의 안전함을 스페인에 갔을 때 느낀 적이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고만고만한 나라였지만 자전거에서 넘어졌더니 달려와 걱정해주는 사람, 무거운 걸 들고 버스에 탔더니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3미터도 넘게 멀리 있는데도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사람, 주문을 못하고 있으면 미소 지으며 기다려주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절로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이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망가지고 못나져도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류의 안전한 기분. 그것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안전함이었다.
그래서 나도 얼른 배워서 친절을 퍼주고 싶었는데 둘째 낳으면 백만 원 주고 셋째 낳으면 오백만 원 준다는 제도처럼 어설펐다. 타인을 고려해본 적이 없어서 시야가 좁고 타인을 배려해본 적이 없어서 손이 느렸다.
내가 하는 친절이 책에서 배워서 고민 끝에 행하는 친절이라면 그들이 준 친절은 몸으로 체득해서 생각 없이 나오는 친절이었다. 내 친절이 나중에 '그때 좀 친절할 걸 그랬나' 후회하는 뒤늦은 마음이라면 그들의 친절은 '아 그때 너무 친절했었나?' 후회하는 한발 빠른 마음이었다.
박한 도시에서 태어나 게으르게 배우고 자라 친절이 뭔지 잘 모르지만 문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이 도시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비밀이지만 문을 잡고 기다려주면 뒷사람은 반드시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서울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