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언니와 함께했던 1차 유럽 여행은 루마니아 세면대 깨부순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언니 집으로 돌아왔고 3주의 휴식기를 가진 후 2018 러시아 소치 월드컵의 준결승 경기를 보기 위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Zagreb)로 향했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가 결승전 경기를 하는 날, 월드컵 2위까지 올라온 크로아티아는 이 자체로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우리는 자그레브 중앙 광장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관중 속에서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은 맥주를 공중에 뿌리며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결과적으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2위라는 쾌거를 달성해 나라 전체가 들썩였던 그 날의 분위기는 한일 월드컵과 매우 흡사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그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얼굴에 크로아티아 국기를 그려 넣고 응원을 하는 아시아 여자 두 명의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어떤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고 다 같이 으쌰 으쌰 크로아티아를 응원했다. 한 나라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며 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 누군가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만큼 짜릿하고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며칠 후, 우리는 히치하이크로 스플릿 (Split)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목적하여 이 도시에 온 것이 아니라, 히치하이킹으로 오다 보니 이곳에 내리게 된 것이다. 스플릿 역시 연일 축제 현장이었고 우리가 갔던 그 날은 더군다나 러시아 소치에서 금의환향하여 돌아오는 크로아티아 월드컵 대표 선수단이 지역 순회 인사를 하려고 스플릿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겠지만, 언니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수단 방문이 마치 깜짝 선물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무대는 보이지 않았고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욕심에,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서 층마다 문을 두드리며 실례지만 창문 너머로 구경을 좀 같이해도 되겠냐고 물으며 다녔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문을 두드리며 다녔는데 보통은 문을 안 열어주지만, 운이 좋게도 우리는 어느 건물 3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영웅이 된 선수단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고 마침내 등장한 선수들의 입장에 사람들은 찢어질 듯한 함성과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해주었다.
건물에서 나온 언니와 나는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군중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가야 했다.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중에 한쪽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욕을 하거나 빨리 이동하라며 소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군중 속에 갇힌 도토리만 한 나는 가뜩이나 덩치가 크고 키가 큰 유럽인들 사이에 묻혀서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끼어 있었다. 문제는 뒤쪽에서 막무가내로 밀면서 앞으로 이동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들을 사방에 두고 있었기에 사람들 사이이 끼여서 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무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밀고 있었고 그로 의해 주저앉을 수도, 옆으로 나갈 수도 없이 몸이 눌러 숨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갑작스러운 압력에 실제로 공황에 빠졌고 이렇게 있다가 압사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동 반사적으로 나도 주변 사람을 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언니가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렇게 나의 폐가 눌리지 않게 팔을 들어 내 몸을 사수하며 천천히 앞으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국어가 내 귀에 들렸다.
"아, 팔 좀 치우세요. 아프잖아요!"
"저도 지금 숨을 못 쉴 것 같아서 이러는 거예요."
"자기만 생각해요? 그쪽이 팔을 들고 있어서 내 팔이 아프다고요."
어느 한국 여성분이 나에게 팔을 치우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폐가 눌리지 않게 양팔을 들고 있었는데 내가 든 팔이 자기 팔에 닿아 눌려서 아프다며 나에게 짜증을 내며 말한 것이다. 자기 팔이 아프다며 지금 이 상황에서 겪는 온갖 짜증을 한국어를 알아듣는 나에게 화풀이하던 여자였다. '당신 팔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숨을 못 쉬고 죽을뻔해서 살려고 이러는 거라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밀려오는 인파에 설명할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떠밀려 가고 있었다.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은 보통 반가워야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만나니 오히려 같은 한국인이 더 미웠다. 서로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말싸움이 나기도 하고 서로 욕을 하거나 몸싸움으로 번질 일촉즉발의 상황들 속에서 나는 작은 내 몸 하나만 건사해서 간신히 인파 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날 숨을 못 쉬어서 압사의 문턱까지 갔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조심한다는 것이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나와 언니는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나라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위까지 올라가서 전 국민이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라 집에서 경기를 보고 베란다에 목을 내밀어 소리를 지르던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tv앞에 앉아 목청껏 응원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했다. 2002년, 그때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소리를 질렀던 것처럼 크로아티아의 2018년도 그러했다. 러시아 소치 월드컵의 준우승이라는 결과는 정말 전례 없는 역사적인 성과였기에, 모두가 이 월드컵에 미쳐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는 비록 외국에서 온 낯선이였지만, 그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