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 오기 직전, 하영 언니 집을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잠시 있었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그간 했던 유럽 여행을 상기시키며 상념에 잠겼다. 낮 동안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핫팬츠와 민소매를 입고 다녔지만 내 얇디얇은 옷으로는 부다페스트의 찬 밤바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감기에 걸린 채로 꼬박 밤을 지새운 후,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잠도 안 자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카운터에 여권을 내밀자 항공사 직원이 말하길 항공권 티켓은 반드시 종이로 인쇄되어 제출해야 한다며 현장 인쇄비로 10유로를 뜯어갔고 돈 낸 것도 서러운데 사람이 많아서 체크인을 위해 2시간 이상 줄도 서 있어야 했다. 지난밤 걸린 감기와 밤을 못 자 피곤한 몸, 그리고 달랑 종이 한 장 인쇄하는데 걸린 시간과 돈으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꼴이 영 말이 아닌 채로 간신히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곤 비행 내내 열이 났고 배가 아팠으며 어지러워 눕고 싶은데 저가 항공이라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도 않아서 각목처럼 앉아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슬란드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진통을 겪으며 시작되었다. 봉사활동 시작 3일 전에 미리 들어온 아이슬란드는 입국부터 삐걱거렸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ik) 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도착한 후, 워크 캠프 주최 측에서 제공해준다는 호스텔을 헤매다 겨우 찾았지만, 공사 현장뿐이었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다시 한번 캠프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보니 그제야 워크캠프 측에서 더 이상 호스텔 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작은 글씨를 발견한 것이다. 일단 밤에 잠은 자야 할 곳이 필요했기에 숙소 예약을 위한 인터넷 검색이 시급했다.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주변 카페에 들어가서 와이파이를 쓰고자 5천 원짜리 작은 소라 빵 하나를 카드로 결제하고 구석에 앉아 부킹닷컴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주변에 택시가 없기도 했거니와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1시간을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새로 잡은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헝가리에서부터 고열과 복통,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헝가리에서부터 밤을 새우고 새벽같이 나오느라 30시간 동안 잠을 못 잤기 때문에 호스텔에 도착해서 그 즉시 잠들어버렸다. 복통, 두통, 고열에 수면 부족까지. 그렇게 피곤함에 절어있는 상태로 심지어 1시간이나 가방을 메고 걸었으니 서 있을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18시간을 자고 눈을 떠 보니 아침 7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예약해 두었던 버스 투어가 아침 8시였기에 눈을 뜨고 일단 세수를 먼저 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렇게 잠만 자다가 끝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수면 부족과 두통, 복통이 가라앉아있는 듯했고 고양이 세수로 대충 얼굴에 물을 적신 후 정신을 차리고 나니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이 찾아왔다. 24시간 동안 물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배고픔을 넘어 아사할 지경에 이르러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주방으로 가 먼저 물을 마셨다.
숙소 주변에는 마트나 편의점, 심지어 택시조차 전혀 없었기에 차가 없는 나로서는 일단 초콜릿 같은 거라도 있을까 싶어 내 가방을 먼저 살폈다. 다행히 가방에는 헝가리에서 챙겨 온 비상식량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 라. 면 한 봉지. 콜택시를 불러서 타고 멀리 마트에 가서 음식을 사 올 필요 없이 바로 물만 끓여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식량이었다. 4분 만에 완성된 라면을 먹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목구멍을 지나 음식물이 위 속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라면으로 식사를 마친 후 아침 8시 예약 시간에 맞춰서 도착한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는 한국인이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나눈 후 첫 일정인 빙하 트레킹을 향해 출발했다. 차가 출발하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화장실에 가고 싶은 배가 아니라 이상하게 태어나서 느껴 본 적 없는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숙소에서 출발해 인적 드문 곳까지 와서 이동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중간에 멈춰서 갈 수 있는 간이 화장실 하나도 없었다. 투어 가이드는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 가려면 30분은 더 가야 하고 거기에 가면 화장실이든 약국이든 있을 거라고 했다. 차 안에서, '지옥이 있다면 여기는구나' 싶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30시간 동안 먹은 거라곤 낮잠을 잠자기 전 먹었던 작은 소라빵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 상태에서 신라면의 맵고 짜고 자극적인 국물이 들어가면서 위를 갈기갈기 다 찢어 놓은 듯했다. 위염과 위경련이 함께 온 듯한 수준의 고통이었다. 30분 동안 통증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심해졌고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배를 움켜쥔 채 쥐똥 구리처럼 몸을 구부렸다. 응급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주변에 병원은커녕 제대로 된 도시도 없는 상황이라 설사 도시에 가더라도 응급실이 있는 병원 조차 없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 숫자도 적지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병원 찾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함께 있던 한국인의 직업이 약사였기에 다음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분이 나를 대신해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와주었다. 나는 태어나서 진통제를 먹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응급실에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전해받은 진통제 한 알을 바로 삼켰다. 내성이 없던 나의 몸은 진통제가 들어가고 신기하게도 얼마 후 바로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다시 소름 끼치는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진통제 하나를 또 삼켰다. 태어나서 진통제를 2개나 먹은 것은 내 인생에 있어 신기록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약에 의존하다 보니 어느새 빙하 트레킹 장소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여 신발에 아이젠을 끼우고 빙하를 밟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산이 아니라, 빙하라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투어 가이드가 만들어주는 빙하 물도 맛볼 수 있었다. 세상에 빙하 물이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깨끗한 맛이었다. 약 효과가 제대로 받았는지 배가 아파 죽을 것처럼 응급실에 가자고 하던 것도 잊어버린 채 빙하 트레킹을 즐기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와중에도 아이슬란드에서 했던 빙하 트레킹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하이킹이었다.
그동안 중국의 쓰촨성, 네팔 안나푸르나 등 수많은 산을 등정해 왔지만, 빙하는 처음이었다. 그 풍경과 짜릿함은 잠시나마 나의 고통을 줄여주었고 그 후로 며칠간 미음과 누룽지만 먹으면서 회복하는 데 전념했다. 3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위장에 매운 신라면 고춧가루가 뿌려지면서 통증이 발생한 것 같아서 며칠 동안은 가능한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서 먹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소름 끼치게 아팠던 그날, 응급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줄 전혀 몰랐다. 택시를 타고 싶어도 택시가 없으니 탈 수 없고, 응급실에 가고 싶어도 병원이 없으니 갈 수 없다. 배가 고파도 차가 없으니 마트에 갈 수 없고 화장실이 급해도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으니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