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단체 채팅방에서 만난, 함께 차량을 빌려 2주 동안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동행 부부가 있었다. 아이슬란드에 들어가는 비행기 표를 사고 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동행 부부가 개인 사정으로 여행을 갑작스럽게 취소했고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물가가 워낙 살인적이라서 혼자 차를 빌려 2주 동안 지내는 것은 무리였고 비용뿐 아니라 혼자 운전을 하면서 다니는 여행을 하느니 차라리 봉사활동을 겸해서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를 봉사활동으로 간 것은 이전 세계여행에서 한 가장 큰 실수로 이 아름다운 곳에서 나는 너무나 외롭고 고독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3일 전, 미리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헝가리에서부터 시작된 고열과 통증, 그리고 30시간 공복에 제대로 뿌려진 신라면으로 나의 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그렇게 3일 동안 별로 한 것도 없이 봉사활동 장소로 이동해야 했고 그 후, 11일 동안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을 가두며 지냈다. 복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봉사 기간 내내 계속 힘들었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져서 쉽게 남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지냈다.
대체로 아이슬란드 봉사활동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그런 거라고 핑계를 대보려 했지만, 나이가 문제가 아닌 듯했다. 그냥 우리는 서로 유대감이 없었다. 아니, 내가 그들과 유대감이 없었다. 같이 어울려서 카드놀이도 하고, 수다도 떨고 싶었지만, 그들과 어울리기에 나의 영어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했기 때문에 그들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은 더욱 나 자신을 수령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들 사이에 있다가 프랑스에서 행복했던 지난 추억들이 떠올라 그리워지면 함께 일했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한 시간이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아시아인은 나와 제헌이라는 한국인 친구뿐이었다. 우리 둘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유럽인들이었기에 그들은 서로 통하는 대화 주제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웃기지도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 투성이었다. 스포츠 경기나 유명 가수의 노래에 대해 말할 때도, 유럽의 역사나 경제에 대해서 말할 때도,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그들의 대화 속에 들어가 이해하고 있는 척, 아는 척 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곳에 있는 내내 외로웠다.
우리가 지냈던 숙소는 이제는 더 사용하지 않는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었다. 굉장히 넓고 다양한 공간이 있었지만, 오히려 공간이 넓다 보니 다들 제각각 흩어져 지내게 되었다. 자질이 의심되는 리더 두 명과 미흡하고 허술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은 정해진 규칙도 규정도 없었다.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는 당일 아침에나 알 수 있었다. 숙소와 마을을 연결해주는 대중교통이 없어서 항상 히치하이크로 마을까지 가야 했다. 마을에 있는 온천 수영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지만, 매번 히치하이크로 다녀와야 한다는 이유로 자주 갈 수도 없었다. 따라서 비라도 오면 작업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숙소 밖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었다. 날이 좋아서 숙소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한들, 차가 없으니 정작 나가도 할 것이 없었다. 수영장을 제외하면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푸른 초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보통 봉사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만나서 계획을 짜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워크 캠프의 리더 중 한 명은 캠프 시작 하루 후에야 도착했고 어떤 이유로 늦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지도 않았다. 하루는 리더 줄리아가 반나절 동안 캠프를 무단이탈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렇게 질서 없고 정신없는 캠프를 잡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줄리아는 재밌고 말도 잘해서 사람으로서는 좋았지만, 리더로서는 아쉽게도 많이 부족해 보였다. 참가자들 개개인들에게 다가가면서 구성원들을 융화시킬 수 있는 포용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리더의 역량이나, 프로그램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워크 캠프의 매력이다. 리더 포함 총 14명이었지만 좀처럼 융화되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없어, 친구로 발전되기 어려웠고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질문이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많지 않아 총체적 난국이었다.
숙소에 갇혀 지내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가 와서 일하지 않는 날이면, 내가 이곳에 먹으러 온 건지 봉사를 하러 온 건지 분간이 어려운 정도였다. 마트가 주변에 없다 보니 봉사활동을 도와주는 현지 코디네이터가 멀리서 일주에 한 번씩 장을 크게 보고 식재료를 사다가 부엌에 채워 넣어주곤 했다. 바나나, 사과, 시리얼, 오렌지, 오렌지 주스, 우유, 빵, 달걀, 치즈, 햄, 감자, 쌀, 각종 소스 그리고 참가자들이 자국의 음식을 위해 미리 주문했던 고기류까지. 눈 뜨면 바나나와 시리얼 달걀을 삶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먹고 싶을 때마다 햄을 꺼내먹고 원할 때마다 빵에 잼이나 누텔라를 발라서 먹었다. 모든 것이 허술하고 미숙한 덕분에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제지하는 사람도, 제지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도 없이 누구든 자유롭게 언제든지 음식을 꺼내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계속 지루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있었기에 비가 오지 않길 매일 기도했다. 우리가 아이슬란드에서 했던 일은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루핀 (lupine)이라는 식물을 뽑거나 잘라내는 일이었다. 차를 타고 다 같이 이동하여 하루에 3~4시간 정도 루핀 제거 작업을 마친 후 숙소에서 하루 전날 요리해 가져온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휴식시간에는 햇빛을 이불 삼아 단체로 초원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햇볕은 따뜻했고 초원은 침대보다 편안했다.
루핀 제거 작업 3일, 겨울철 미끄러움 방지를 위해 검정 모래를 산길에 날라서 뿌리는 일 1일. 비가 와서 일하지 않은 날 2일, 그리고 캠프 첫날과 마지막 날은 버스 이동으로 시간을 보내느라 또 1일을 잡아먹었다. 두 번의 주말로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주말 4일. 그렇게 총 11일 동안 이곳까지 와서 내가 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쉬는 날엔 주로 개개인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데 하루는 승합차를 빌려 개인당 13만 원을 내고 숙소 주변에 있는 Dettifoss, Grjotagja cave, Gooafoss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참가비로 이미 지급했던 돈과는 별개로 숙소 주변 명소들을 보는 것 또한 또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11일 중에 단 하루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팠다. 여행 200일 만에 드디어 찾아온 권태기 같은 것일까. 행복했던 그동안의 여행을 뒤로하고 새로운 대륙으로 넘어가야 하는 사실을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미 대륙으로 넘어가기 직전, 마치 아시아와 중동 유럽 대륙이 나를 잡고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 여행은 인생과 같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날들만 있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오로라의 나라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 외롭고 지루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나에게는 바로 아이슬란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