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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을 다녀오다

콜롬비아 - 산안드레스

by 너나나나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다

콜롬비아, 산안드레스


황홀했던 쿠바 여행을 마친 후 주환이와 함께 콜롬비아로 넘어왔다. 우리는 수도 보고타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메데진을 지나 콜롬비아의 가장 아름다운 섬 '산 안드레스'에 함께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산 안드레스(San Andiés) 섬은 카리브해에 위치해 있으며 사실 콜롬비아보다는 니콰라과에 더 가까워 지도상으로 보면 콜롬비아에 속한 섬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미국 압두 집에서 카우치 서핑으로 만났던 콜림비아인 알란의 추천으로 우리는 주저 없이 섬으로 들어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늘보다 더 아름답고 에메랄드 빛깔을 가진 이 섬은 특히나 콜롬비아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며 스쿠터 하나를 빌리면 섬 전체를 도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이 작은 섬은 과거 영국령으로 속해있다가 콜롬비아에 편입되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산 안드레스 섬에서 또 한 번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면 주변에 있는 더 작은 섬들에 갈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조니 케이'라는 섬을 갔을 때 생긴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환이와 함께 얼굴 전면 커버용 스노클링 마스크를 낀 채 조니 케이 섬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스노클링 마스크만 있으면 절대 죽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안전하게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해변과 멀어지면서 바닥에 보이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바닷속 세상을 감상하고 있을 때 문제가 시작됐다. 파도가 거세짐에 따라 마스크 안으로 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고 물이 차오름과 동시에 호흡 통로가 막히면서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일단 급한 대로 숨을 쉬어야 하니 그대로 멈춰 서서 얼굴만 물 밖으로 내민 후 마스크를 얼굴에서 살짝 떼어 숨만 잠깐 쉬고 다시 제대로 마스크를 착용하려던 그 순간에 사고가 발생했다. 마스크를 들어 올리는 순간 파도가 치면서 마스크 안으로 물이 가득 차 버렸고 순식간에 낭만드라마에서 호러영화로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일단 마스크를 아예 벗어버렸고 그 와중에도 파도는 계속 거세게 치고 있어 바닷물을 계속해서 들이키고 있었다. 너무 당황하여 일단 제대로 발을 땅에 딛고 곧게 서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깊은 곳까지 들어온 터라 물속에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수영장 수영은 할 줄은 알았으나 바다 수영은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사지를 휘저으며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유형으로 해변을 향해 돌아가려고 노력해봤지만 파도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호흡이 가빠진 정말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했다.

"야!! 주..!! 주화!! 주환아, 악, 윽, "


주환이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멀리 있는 주환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했다. 이미 숨을 쉬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길 몇 분째, 에너지를 다 쏟아 불으면서 정신이 희미해질 찰나,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필사적으로 내 팔을 잡아준 사람의 팔을 잡았는데 어쩐 일인지 내 팔을 잡은 이 사람은 꼿꼿이 서서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드디어 나의 두 발이 바위 위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허우적거리는 동안 계속 파도에 밀려 해변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온 나는 계속해서 사레들린 것처럼 기침을 하며 폐로 들어간 물을 빼내려고 노력했다. 한꺼번에 다량의 바닷물을 삼켜서인지 위가 볼록해져 부풀어 올랐고 복통이 오기 시작됐다. 한없이 아름다웠던 에메랄드 바다는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고 그런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마치 완벽하게 웃으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한 사람이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 칼을 들어 나를 죽이려고 찌르는 것 같았다. 물 밖에 나와서도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과다한 바닷물이 뱃속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주먹으로 내 배를 계속 때리는 듯한 고통이 지속됐다. 햇볕이 뜨겁고 날씨가 좋았음에도 온몸이 서늘했고 손과 이가 덜덜 떨리면서 한동안 진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공황 상태에 빠져있어야 했다.

사건이 발생한 첫 번째 이유는, 마스크의 오작동 가능성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는 파도가 거센 바다에서 너무 깊이 들어갔다는 것, 세 번째는 나 자신을 너무 맹신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영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파도에 휩쓸리면 빠져나오기 힘든 법인데, 나는 나 스스로 죽음의 길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사람이 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죽기 일보 직전,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말이 헛소리라는 것도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볼거리가 가득했던 콜롬비아였지만 조니 케이 섬에서의 위험했던 기억은 한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안전과 건강이다. 조니 케이 섬은 나에게 삶의 진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제발,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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