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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절대 불편의 법칙

김종욱의 결말

by 너나나나

여행 절대 불편의 법칙

김종욱의 결말

주환이와 쿠바에서부터 콜롬비아까지 함께 만들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묻은 채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주환이는 혼자 힘으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우리는 산 안드레스에서 보고타로 함께 돌아간 후 나는 국제선을 타고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주환이는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섬으로 갈 예정이었다. 일단 보고타로 이동을 하는 것은 같았기 때문에 비행기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내가 그냥 보고타행 비행기를 같이 예약할 테니까 돈을 이체해줘'라고 말하며 두 명분 표를 1월 9일 자로 구매했다. 보고타 이후 일정은 각자 예약을 했으며 주환이는 보고타에서 갈라파고스 가는 날짜를 1월 10일로, 나는 보고타에서 키토로 가는 비행기를 1월 11일로 잡았다. 단지 비행기 삯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보고타에서 혼자 2박을 할 생각이었고 주환이는 이미 보고타 여행을 했으니 바로 갈라파고스로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다.

산안드레스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 2019년 1월 9일, 보고타로 가는 오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항공사 직원에게 여권을 내밀었는데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오늘 예약한 것이 맞냐고 내게 물었다. 스카이스캐너 예약한 화면을 보여주자 직원은 내게 핸드폰 화면을 가리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예약한 날은 1월 10일이에요. 오늘은 1월 9일이고요"


그랬다. 내가 날짜를 잘못 계산하여 하루 일찍 공항에 온 것이다.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1월 10일 자였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주환이의 갈라파고스행 비행기가 1월 10일 오후 4시였기에 못해도 10일 오후 2시 전에는 보고타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면 보고타에서 갈라파고스로 들어가는 비행기 삯 30만 원을 버리게 되는 셈이 된다. 항공사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혹시 오늘 보고타로 가는 비행기에 남는 자리가 없는지 물었고, 이미 비행기는 만석이라 자리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일 오전에는 비행기가 있는지 물었고, 다행히 좌석이 2자리가 남아있다고 직원은 대답했다. 주환이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며 내일 오전에 보고타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데 현장 예매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주환이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런데 문득 혹시나 다른 항공사에서 오늘 갈 수 있는 빈자리가 있는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왜냐면 좀 더 일찍 도착하면 안전하게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거니와 가격이 좀 더 저렴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항공사 두 군데에 가서 같은 문의를 했지만 아쉽게도 좌석이 모두 만석이라는 소식을 들은 나는, 할 수 없이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며 처음 문의했던 항공사에 갔다.


"저, 보고타행 내일 아침 비행기 남은 자리 살게요."


"다 팔렸어요."


"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다른 항공사를 알아보던 사이 이미 현장 예매 좌석이 다 팔렸다는 것이다. 주환이는 이 말을 전해 듣곤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게 내가 바로 사라고 그랬잖아!"

나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상황을 전부 내 탓으로만 돌리려는 그의 모습에 사실 굉장히 실망했다. 물은 이미 엎질러져 버렸고, 어쩔 수 없이 스카이스캐너로 예매했던 1월 10일 보고타행 오후 비행기를 예정대로 탑승해서 주환이의 갈라파고스행 비행기는 놓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환이가 갈라파고스에 예정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10일 저녁 비행기를 새로 끊어주었고 그제야 사건이 해결되는 듯했다. 나는 다행히도 보고타에서 이틀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새로 비행기를 예매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가 날짜 계산을 잘못해서 공항에 도착한 죄로 주환이의 갈라파고스행 40만 원어치 항공권을 사주어야 했다. 30만 원에 결제했던 주환이와는 다르게 하루 전날 예약을 하다 보니 40만 원으로 가격이 껑충 뛰어오른 비행 삯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동안 단돈 천 원이 아까워서 1시간 이상씩 걸어 다니던 나였는데 이렇게 거액의 돈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이 너무 허탈했다. 주환이도 자기가 탈 비행기를 끝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했다는 이유로 내게 100유로를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 거금의 피를 흘리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만약 비행기를 애초에 각자 예매했다면 각자 본인의 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가능성을 절반으로 차감시키는 기회라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절대, 다른 사람의 표를 대신 예매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여행 절대 불변의 법칙 1 : '항공권은 반드시 각자 예약하라.'


명백한 나의 실수로 벌어진 이번 일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면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하루 더 묵을 호스텔을 향해 공항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서로 어색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더 이상 연인 사이도 친구 사이도 아닌 아주 민망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다음날 보고타에 도착해서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어색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다시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결국 서로에게 마음만 상해 안타까운 결말로 끝을 본 김종욱과의 결말.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쿠바에서 헤어졌어야 했다.

여행 절대 불변의 법칙 2 : '여행에서 만난 연인과는 손뼉 칠 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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