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곤 한다. 그 행운이 나에게는 바로 오지 탐사대였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야말로 운명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최종 합격을 하고 국내 산행 훈련을 하면서 무릎 염증으로 아파 고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았기에, 무릎 주변 근육이 조금씩 형성됐고 그에 따라 통증이 사라져 갔다. 4달간의 국내 훈련을 마치고 중국 쓰촨성으로 해외 등반 출정을 위한 발단식까지 치렀다. 출국 당일.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사람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화물 가방들을 수화물로 부친 후, 파란색 비행기 발착 정보 스크린을 배경 삼아 다들 한 손에 주먹을 쥐고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중국에서 지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매주 했던 국내 산행 훈련에 비교하면 그렇게 고되거나 힘들지도 않았다. 단지 고도가 높아 숨쉬기가 쉽지 않고 고산병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고산 체질이었던 나는 숨쉬기가 어렵지 않았고 고산병도 오지 않아서 국내 훈련할 때에는 언니 오빠들과 한참 떨어져 맨 뒤에서 걷곤 했는데 막상 원정에 나가니 거의 뛰어다녔다. 쓰구냥 산군 봉우리 중 가장 높은 5,545m 봉우리에 오르자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무릎이 아파서 이를 악물고 견디며 산행을 하던 때, 비가 억수처럼 내려서 신발이 다 젖었는데도 철퍼덕거리며 밤새 걷던 때, 부산 금정산 바위 타는 훈련을 할 때 도저히 못 뛸 것 같았던 절벽 사이를 뛰어넘었을 때, 그리고 형편없는 체력으로 그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메고 맨 뒤에서 걸으며 팀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혼자 걱정하던 때. 그동안 되지도 않는 체력으로 모든 훈련을 견뎌오면서 마침내 이렇게 정상에 섰다는 기쁨에 발아래 구름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었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운은 운명이다. 내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럴 운명이었다. 나는 운명론자다. 세상 만물이 하는 일은 모두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내가 무릎이 아팠던 것도 운명이지만, 낫기 위해 더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운명이다. 미래를 바꾸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또한 운명이다. 노력하고 바꾸려는 의지. 그것 또한 운명이다. 즉, 열심히 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동의하는 것이다. 운명에 기대어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하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살아나는 것, 그것이 운명이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면 이건 내가 돈을 받을 운명이라며 당연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쓰거나 그 돈으로 카지노에 가서 놀음하는 것 또한 당신이 할 운명이다. 누군가가 힘든 나를 도와주면 운명이라고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까지가 당신이 할 운명이다. 나의 운명론은 내가 마주한 현실 앞에 그저 수긍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신에게 다가온 행운이나 불행을 당연시하여 안주하거나 희망을 포기해버린다면 그로 인한 대가의 운명이 또 다가올 것이다.
체력은 부족했지만 오지 탐사대 모든 훈련을 이겨내며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지 탐사대는 활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창의적인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내가 다녀왔던 2012년도뿐 아니라 그 전년도까지 다녀온 사람들 또, 그 후년도에 다녀온 사람들까지 서로 연락하고 지냈다. 그러면서 함께 다른 스포츠를 즐기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관계를 지속해 나아갔고 선한 영향력으로 서로를 성장시켜주었다. 그러던 중 2009년도에 오지 탐사대를 다녀왔던 언니가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며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사진 속에는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담겨있었고 '세계여행'이라는 말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사실 오지 탐사대 집단에서는 세계여행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도 꽤 많았기에 '세계여행'은 내가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20대에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오지 탐사대 이후, 주변 친구들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으며 보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단단해진 나는 돈을 벌어 20대가 끝나기 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떠나자고 결심했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온다. 오지탐사대는 내 인생을 흔들어놓았고 이제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향해 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