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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Feb 15. 2021

하루 11시간 근무라도 행복하다

 워킹홀리데이를 온 후 일을 못 구해 3개월간 백수로 살아가던 그때,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었다. 제발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수십 장의 cv이력서를 뿌리고 다니며 일을 구걸하던 내가 1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11시간씩 일을 일하고 지낸다. 물론 일주일 내내 11시간씩 매일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쁜 날에는 오늘처럼 파트타임을 하루 두 번 뛰는 날이 생기면 11시간 근무가 된다. 보통 오전 9시에 알람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웬일인지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8시 50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막상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면  뭔지 모를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눈만 뜨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9시 20분.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난 후 화장실로 직행한다. 대충 얼굴을 닦고 양치를 한 후 손에 물을 묻혀 머리를 살짝 적신 후 빗으로 대충 빗어 넘긴다. 머리는 항상 늦은 밤에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샤워를 하면서 같이 감고 바싹 말린 후 잠 자리데 들기 때문에 아침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해도 무리가 없다. 9시 30분. 중국 마트에서 얼마 전에 사 온 바비큐 찐빵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돌린 후 신발을 신고 가방을 업쳐 멘다. 삐이이익 전자레인지에서 갓 나온 뜨거운 찐빵을 꺼내 입에 물며 차에 올라 탄 후 운전 신호 걸릴 때마다 찐빵을 한입 베어 물고 선크림을 얼굴에 대충 짜 놓는다 그다음 신호에 걸리면  헤어롤로 앞머리를 말아 올리고 그다음 신호에서는 얼굴에 짜 놓았던 선크림을 펴 바른다. 20분이 걸리는 출근길은 아침 식사와 선크림 및 머리단장까지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고속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는 길 내내 신호가 많고 또 자주 걸려서 빨간 신호에 멈출 때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기본 메이컵과 헤어는 끝이 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제약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위클리 청소 날이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직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는데 Hi, How are you?라고 말한 후 후다닥 사물실을 빠져나온다. 혹여 영어로 다른 질문이라도 받을까 긴장되어 청소를 해야 하는 옆 건물 열쇠만 챙겨 나온 후 청소를 시작한다. 약 1시간 후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조제를 위한 시약 사전 테스트를 검증하는 업무가 내게 주어졌다. 반복적인 일이라서 굳이 연봉이 높은 다른 직원들이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효율적인 그런 업무다. 이 업무는 청소나 설거지보다는 훨씬 재밌고 즐겁다. 워홀러의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진귀한 경험이다. 이 나라에 사는 현지인들조차도 이런 제약회사에서 이런 식의 일을 해 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 자긍심을 갖고 더 즐겁게 임하며 일을 하는 중이다.

 오후 3시 제약회사 일을 마친 후 내가 작성한 테스트 결과를 보며 직원들이 토의를 했다. 사장님이 결과지를 보며 내게 뭔가를 질문했을 때 영어로 잘 답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이 답답해 보였던 옆 직원이 나서 나 대신 유창하게 설명해줬다. 영어도 서툰데 의약품 용어들까지 익숙하지 않은 나는 사장님이 웃음기 없이 이것저것을 공격적으로 물어보면 머리가 새 하얘진다. 

 오후 4시 한국 식당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 두 번째 파트타임 일을 시작한다. 마포로 홀 바닥을 전부 닦은 후 음식 정리와 테이블 정리를 하면 오픈 시간이 된다. 어제는 공휴일이라 조금 바빴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조용하다. 손님이 없으니 몸이 편해 아주 일할 맛이 난다. 오늘은 주방에서 일하는 중국인 아주머니께서 체리를 주말 장터에서 사 왔다며 먹어보라기에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2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여태 먹어본 뉴질랜드 과일은 하나같이 맛이 없었는데 이 체리를 정말 꿀맛이다. 요즘에는 손님이 없어 차가워진 사장님이 말이 없어져 대화를 하지 않으니 나는 묵묵히 체리만 먹었다. 오늘은 손님이 9시 즈음 전부 나가서 20분이나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오후 10시 10분,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면서 유튜브를 본다. 핸드폰을 하며 뭉그적거리다 보면 밤 12시가 다 되고 이렇게 긴 하루가 끝이 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점점 왼쪽 발이 아파오지만 건강할 때 일해야지 언제 하겠나 싶어 이렇게 살아간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0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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