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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Feb 21. 2021

감염자 3명에 도시를 봉쇄하는 스케일

 쉬는 날 없이 일주일 내내 일을 하며 지낸 지 근 한 달째, 일이 없어 백수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며 바쁘게 지내는 편이 100배는 낫다는 깨달음 하에 열심히 일개미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제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여느 때처럼 유튜브로 요즘 푹 빠져있는 미스 트롯2를 다시 보며 행복에 젖어있었는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장문의 영문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당장 오늘 자정부터 오클랜드 시티가 봉쇄된다는 문자였다. 방역 모범국, 코로나 종식 선언,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국가 등의 수식어로 잘 지내오던 뉴질랜드였지만 바로 오늘 낮에 영국에서 최근 뉴질랜드로 입국한 3명의 가족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뉴질랜드 총리는 도시를 봉쇄해 버리는 정책을 긴급 발표했다. 고작 3명으로 도시 전체를 봉쇄해버리는 이런 상황은 현재 수백수천 명씩 감염자가 속출하는 국가에서 볼 땐 과잉 진압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감염자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 추적해오던 뉴질랜드가 이러한 오점을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그 3명이 곧 내일이면 300명이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주 7일로 한 달 내내 일해오던 나에게는 단비와 같은 휴식이다. 앞으로 3일간 레벨 3을 유지하며 이후에는 더 강화할지 유지할지 다시 레벨 1로 돌아갈지를 하루하루 모니터링을 하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고작 3명에 도시 봉쇄라니 솔직히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내가 봐도 유난스럽긴 하다. 이렇게 유난스럽게 해야만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뭐가 정답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일벌레처럼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일을 너무 많이 한 탓에 발과 무릎이 아파왔는데 시기적절하게도 이렇게 강제 휴가가 찾아와 다행이다. 한국에서는 코로나가 발발한 이례로 외출금지나 식당이 문을 아예 닫는 일은 벌어지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아주 적은 감염자 수에도 벌벌 떨며 모든 식당 문을 닫고 이유 없이 밖을 나돌아 다니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나라마다 코로나를 대처하는 방법이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코로나의 여파로 상인들의 수입은 줄어들었어도 아예 일을 할 수 없게된 것은 아니라서 당장 노숙자가 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수입이랄 것도 없이 아예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업종과 배달을 할 수 없는 직종의 상인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차원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주며 도와주긴 하지만 정부에서 주는 돈도 결국에는 본인들이 그동안 냈던 세금에서 나오는 돈임으로 내 돈을 내가 받는 셈이라 정부 지원금을 많이 받는다고하여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힘든 재정 상황에 도달해있으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 보조금을 무리하게 풀었던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재정상황에 이르게 되면 그 피해는 다시 국민들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때문에 지금 현재 단편적인 상황만 보고선 어느 나라가 잘하고 있고 어느 나라가 못하고 있다고 결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오랫동안 봉쇄 정책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나라에서 돈도 주니 이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는 없는 아직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에 돈이 없어 보조금 지원도 어려운 나라가 수두룩한데 그것에 비하면 코로나 시대에 뉴질랜드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감염자 3명에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스케일, 이런 유난스럽고 엄격한 정책을 펼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민들의 의식과 참여 의지다. 2년 가까이 뉴질랜드에서 지내 본 결과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모험심이나 정의감이 투철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정부가 내린 지침에 잘 협조하고 남 탓을 하기보다는 각자의 인생을 묵묵히 잘 견뎌나간다는 점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각자의 방식대로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뉴질랜드에서 코로나 사태를 보내며 느끼는 점은 각자 나라의 스타일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만 난 어째 뉴질랜드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런 유난스러움에 고마움을 느끼며, 이를 잘 따라주는 시민들 사이에 속해 살아가고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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