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뉴질랜드인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
한국에서 예를 들어 학교에 외국인이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나와 다르게 생긴 외국인에게 흥미가 생기고 관심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럼 은근슬쩍 다가가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한국말은 할 줄 아는지,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무엇인지 물어본 후 이야기가 잘 통하고 마음이 맞으면 같이 노는 횟수가 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은 가만히 있어도 한국인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지 않은데 뉴질랜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뉴질랜드 학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이 너무나 많아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친구 사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인종을 주변에서 워낙 자주 보고 자라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은근슬쩍 다가가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영어는 할 줄 아는지, 좋아하는 뉴질랜드 음식이 뭔지 물어보지 않는다. 생김새로 대충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굳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고, 뉴질랜드에 왔으니 당연히 영어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시 앤 칩스 (생선 튀김과 감자튀김)을 뉴질랜드 대표음식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는 나라에서 좋아하는 뉴질랜드 음식이 무어냐는 질문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온 사람들은 좀처럼 뉴질랜드 토박이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기 어려운데, 뉴질랜드 인구 자체도 한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적을뿐더러 주변 섬나라에서 온 사람들,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친구는 고사하고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현지인들을 만나는 일 조차 쉽지가 않다. 뉴질랜드에 와서 뉴질랜드 사람을 만날 일 보다 외국인을 만날 일이 훨씬 많은 곳. 한국에 오면 80프로 이상이 한국인데 뉴질랜드에는 80 이상이 외국인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악 조건에서도 뉴질랜드 현지인들을 만나서 친구가 되는 방법을 하나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문도 링고'라는 언어 교환 커뮤니티이다. 1년 전 문도 링고에서 우연히 만난 재키. 재키는일어를 구사하는 뉴질랜드 사람이다. 뉴질랜드인들을 키위라고 부르는데 키위라는 이름의 동물이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동물이라서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그냥 키위라고 부른단다.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김치. 일본은 초밥. 인도는 카레 이런 것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명사인 것이다. 재키는 한국어에 관심이 많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어느 날 재키는 자신의 여동생이 k팝을 좋아한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왔다. 한국이었다면 친구가 자신의 친언니나 친동생을 소개해준다며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언니 동생을 따지지 않으니 뭐 아무나 다 불러와도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인연으로 재키와 그녀의 동생 가비와도 급격히 친해졌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셋은 절친이 되었다.
재키는 한국 드라마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가비는 한국 노래를 좋아한다. 나는 영어를 말하고 싶어 하고 뉴질랜드에 있으니 우리 셋은 서로 공생 관계에 놓여져있어 서로 도와주고 서로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우리 셋을 결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우리 셋은 아미로서 서로 선물도 공유하고 같이 방탄소년단 영상도 보면서 만나기만 하면 bts이야기로 시작한다. 다이너마이트 노래가 나왔을 때는 만날 때마다 춤을 따라 추면서 광란하게 놀았고 대취타가 나왔을 때는 고개가 떨어져 나갈 깨까지 흔들어 재끼곤 했다. 각자의 생일에는 방탄 굿즈를 선물해주고 새로운 뉴스나 앨범이 나올 때마다 서로 가장 먼저 공유해주고 수다를 떨곤 한다. 새로 나온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넷플릭스로 서로 공유해서 같이 보고 오클랜드에 있는 한국 맛집을 찾아 탐방하곤 한다. 한국의 대중음악, 영화, 스포츠, 언어, 음식, 문화, IT 전반에 걸친 한국의 영향력이 세로 뻗어나가면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치솟고 있어, 외국 살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리하여 영어를 조금 할 줄 알고 한국말을 잘하는(?) 나의 장점 덕분에 뉴질랜드 친구 두 명을 사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밥을 먹고 코인 노래방과 카페에 가서 놀고 해변에 가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코 앞에 닿아있는 산에 가서 트레킹을 즐기고, 클라이밍, 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도 함께 한다. 이젠 외국인이라기보다는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들이 되어 가족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사실 뉴질랜드인 친구들을 사귀는 법은 따로 없지만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현지인을 만나 친구로 발전하기까지 어려운 나라이기에 '한국인'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한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뉴질랜드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일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말하는 국가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워킹홀리데이로 있을 때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본인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 실행에 옮기고 나서 깨닫게 됐다. 언어 커뮤니티에 적극 참가하고 그곳에서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주고 다가오지 않는다.
기회는 본인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기회를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기회를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