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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Apr 09. 2021

"Don't call me, 사장님"

 내가 일하는 곳 사장님 이름은 재키다. 한국에서 살다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기 시작해서 40년 넘게 영어를 쓰며 살아온 분이다. 당연히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편하고 미국에서 산지 오래되어 미국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남편은 콜롬비아에서 살다가 미국에 이민을 왔고 둘은 국제 커플로 결혼까지 골인하여 슬하에 건장한 아들이 하나 있다. 재키는 5년 전, 개인 사업을 위해 뉴질랜드로 와서 살고 있고 뉴질랜드 시민권까지 얻어 이제는 미국인인지 뉴질랜드 사람인지 한국인인지 뭐라고 불러야 하나 모르겠다. 뿌리는 한국에, 수많은 업적과 가족 그리고 한평생 살아온 일생은 미국에, 노년의 꿈을 이루고자 도전하는 새로운 인생은 뉴질랜드에 있다. 내가 재키를 존경하는 이유는 60대가 훌쩍 넘어 검정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본인의 꿈을 이루고자 홀로 뉴질랜드에 와서 터전을 잡고 본인 사업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60이 넘으면 나이가 많아서 뭘 하겠어, 젊을 때 열심히 일 했으니 이제 좀 편하게 쉬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재키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나 보다 훨씬 트렌디하시고 젊은 생각을 갖고 계시며 동성애자나 비혼 주의와 같은 한국 사회에서 논쟁점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열린 사고와 시각을 갖고 있어, 이럴 때 보면 역시 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말을 할 줄 알면서도 영어가 편해서 나랑 이야기할 때 역시 항상 영어를 쓰신다. 내가 잘 모르는 영어는 한국어로 종종 바꿔서 말씀해주시기도 하지만 한국어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둘 다 서로 영어로 말하기 때문에 사장님과 직원 사이라기보다는 친구사이 같은 느낌이 든다. 사장님이라는 호칭도 없고 항상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상하관계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이 없다. 물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항상 노력하며 유행어나 줄임말을 쓰지는 않지만 일단 영어로 말한다는 자체에서 그녀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확연하게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하루는 그녀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는데 우연히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대화 주제가 나오게 됐다. 그녀에게 재키라고 이름을 부르는 대신 사장님이라고 장난처럼 불러봤는데 손사래를 치면서 자기를 사장님이라고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다.


 "Don't call me  사장님"


몇 해 전, 한국에 일이 있어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자신에게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한국어를 못하는 척까지 했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이 미국에 있어 혼자 사는 재키의 상황이 나랑 비슷해서 우리는 종종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사실 아무리 영어를 쓰고 호칭을 그냥 이름으로만 부른다한들 25년 넘게 한국에서 자라온 나는 재키가 아무래도 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게 먼저 영화 보자 같이 밥 먹자 제안을 먼저 해주셔서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재키는 내게, 회사에서는 사장님이긴 하지만 그전에, 함께 밥을 먹고 데이트를 하는 나의 소중한 친구다.  뉴질랜드에서 주 7일 아르바이를 하면서 살고 있지만 매주 월요일마다 출근하는 재키의 제약회사는 내게 자부심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냥 식당 홀서빙이나 초밥만 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약회사에서 크고 작은 전문적인 일들을 배우고 있다. 그러니 재키는 내 인생의 구원자가 틀림없다.  앞으로 제약회사가 조금씩 더 자리를 잡고 일이 많아지면 뉴질랜드에서 정말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못나고 능력 없는 중생을 거둬주시고 항상 딸처럼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장님, 아니 dear Jackie, you saved my life. Thank you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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