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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Apr 13. 2021

2년 동안 고마웠다. 이젠 안녕.

 2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2019년 3월 인도 함피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만능 재주꾼 범철이가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 만들어준 팔찌를 2년 넘게 착용해왔다. 그동안 내 몸의 일부처럼 24시간을 함께했지만 이젠 놓아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과감히 가위를 들었다. 사람들이 이 팔찌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친구가 직접 내가 보는 눈 앞에서  만들어준 소중한 팔찌라며 괜히 어깨를 한 번씩 으쓱하곤 했다. 인도에서 만난 인연이라서 특별히 인도 국기 색깔을 넣어서 만든 것인데 2년이 지나니 인도 국기 색을 고사하고 이게 대체 무슨 색깔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해이해져 있었다.

 인도는 세계 여행할 때 2번째로 방문한 나라다. 기쁨, 즐거움, 슬픔, 노여움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기억들을 팔찌에 고이 저장하고 네팔로 떠날 때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화가 나고 무섭기도 했지만 가장 여행다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라였다. 그래서 14개월 세계여행을 하면서 힘든일이 있을 때마다 팔찌를 보며 인도 여행을 떠올렸다. 그리곤 혼자 생각했다. '나, 인도도 혼자 여행하고 온 사람이야'. 이렇듯 어느 순간부터 이 팔찌는 내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요술봉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도 팔찌는 내게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비록 남의 똥오줌 닦거나 고무장갑도 없이 뜨거운 물에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나는 인도 여행도 혼자 한 달이나 다녀온 사람이야,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아.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버티고 이를 악 물었다.

 세계여행과 워킹홀리데이까지 모두 끝나고 운 좋게 워킹비자를 받아서 시작된, 안정적인 뉴질랜드 일상. 어제는 문득 한국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하도 손님이 없어 혼자 스트레칭을 하던 중에 뭔가가 까슬거린 느낌이 들어  오른손 손목을 쳐다봤다. 그동안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던 녀석이 어느새 다 늙어서 흰머리가 수두룩하고 기운도 없어 너덜거리고 있었다. 언제 처음 팔찌를 꼈는지  달력을 보며 날짜를 계산해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리곤 문득 가위를 가져와 주저 없이 잘라냈다. 그동안 사람들이 언제 까지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항상 '글쎄요, 근데 제가 제 손으로 자르진 않을 거예요'였다. 그런데 어제는 무슨 일인지 그냥 자르고 싶었다. 이제 놓아줘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팔찌는 내게 마치 '이젠, 내가 없어도 넌 이미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팔찌는 내가 겪어온 수많은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경험한 산 증인이다. 그러나 이젠 팔찌를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세계여행과 워킹홀리데이에 더 이상 묶여있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2년 동안 정말 고마웠다. 이젠 너를 팔목이 아닌 내 가슴속에 저장해 둘게.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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