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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Jun 28. 2021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나 싶다

 주 7일 근무를 시간 꽉꽉 채워서 살인적으로 일하던 시기가 지나고 다시 한가로운 일상이 찾아오나 싶었지만 나는 가만히 시간을 보낼 위인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초밥 가게에서 일이 줄어 금요일이 휴일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휴일에 늦잠도 자고 뭉그적 거리다가 일어나서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만히 방에 있는 게 좀이 쑤셔, 이윽고 알바 사이트를 다시 뒤적거리다가 오후 6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나는 일을 찾았다.  다음날 있을 농구 경기를 위해 전날 밤 주류와 음료를 판매 부스 냉장고에 채워 넣는 일이었다. 판매 부스가 경기장 좌, 우, 3층 끝자락 좌, 우, 총 4 군데에 배치되어 있어 술과 음료수만 채워 넣는데도 시간이 모자라 다 끝내지 못하고 벌써 11시가 되었다. 1시간 더 추가로 일을 해 줬지만 그래도 일이 끝나지 않았고 나는 다음날 아침에 초밥가게에 출근을 해야 했기에 결국 12시가 되어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로 매주 금요일마다 여기저기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하루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사모아 섬나라 사람들 전통 결혼식 행사 뷔페 웨이터, 부자들의 자재들이나 다닐 법 한 거대한 규모의 사립 여 중학교 임원들의 티타임과 조찬 행사 보조, 오클랜드 대학교 남 캠퍼스 소규모 학생들을 위한 아침 티 타임과 조찬 행사 보조  등등. 이번 주에는 스파크 아레나 (시티에 위치한 규모가 큰 공연장) 뮤지컬 라이온 킹의 Bar 주류 판매원 일을 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한다고 하여 혹시 직원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까 봐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5시에 해당 부스에 가 보니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이내 곧 담당자가 도착했고 5시 30분 정도 되어서야 음료 판매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계산원이었는데 웨이터와 계산원 잡은 여태껏 정말 많이 해보았지만 그래도 계산대가 가는 곳마다 다르고 음료 배열이 달라서 빠른 계산을 위해서는 해당 기계에 배열되어있는 술과 음료수 위치를 눈에 익혀야 했다. 그러던 중 나처럼 일을 하러 온 사람 중에 저번에 결혼식 알바에서 봤던 여자가 또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사. 수다를 떨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이 친구가 나랑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친구는 멕시코 사람으로 본 업은 변호사라고 한다. 5년 공부해서 3년 일을 했고 미국에 가서는 영어공부와 일을 하면서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뉴질랜드에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지금은 가능한 한 매일 일을 쉼 없이 하려고 한다고 했다. 어쩜 나랑 이리 똑같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다행히 너무나 한가로운 업무 덕분에 수다를 떨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공연 시작 1시간 전 6시 30분, 라이온 킹 뮤지컬은 특히 어린이를 위한 공연 연출이 많아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는데 때문에 주류보다는 젤리가 더 잘 팔렸다. 하지만   공연 시작 전, 중간 쉬는 시간 30분, 이렇게 두 타임만  판매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근무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세상에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가했다. 2021년 6월 현재 시급이 한화로 하면 16,000원인데 총 일한 3시 30분 중에 절반 정도는 그냥 서 있거나 어디 앉아 있거니 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런 꿀 알바임에도 내가 다신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총 일한 시간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하루에 8시간 정도는 일을 해 줘야 뭔가 일을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3시간 30분은 아무리 일이 꿀이라도 절대적인 수입이 적어서 아쉬운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나의 정형화된 일주일에 한 줄기 재미를 선사해줄 금요일. 다음 주에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함께할지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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