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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Jun 11. 2017

반죽기와 오븐의 변


우리 집의 반죽기와 오븐은 아마 느긋하게 은퇴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운 좋게 주인의 변덕으로 일없이 간간히 전자레인지의 기능을 수행하는 오븐과 식빵 굽기라는 누워서 빵 먹기인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에 일없이 놀고 있던 반죽기나 8년이 넘어서 이렇게 맹렬하게 일하는 신세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하였으리라. 그런 걸로 치자면 역시 싱크대 아래에서 놀고 있던 핸드믹서도 할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구워본 녹차 쉬폰



갑자기 어느 날 생기는 쓸모

단지 집에서 필요 없는 것을 정리하여 버리고 조금 위치를 찾아주었을 뿐인데, 요리하기가 편해져 반죽도 치고 케이크도 굽고 쿠키도 굽게 되었다.

예전엔 괜히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이스트는 생 이스트가 아니면 쓰지 않으리라 했던 욕심도 버리고 편하게 건조 드라이 이스트를 쓰기도 하고, 사과파이를 굽기도 하고, 레시피를 보다가 맛이 궁금해서 해보고 싶었던 캐러멜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도 만들기도 했다.



외할아버지 댁에 가져간 인기만점 치즈케이크
진한 커리를 끓였더니 난이 먹고 싶어졌다
반죽을 툭툭 쳐서 만든 난, 다음엔 버터를 겉면에 발라볼 생각이다.


욕심을 조금 버렸더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몸에 걸치고 있던 과분한 욕심들을 하나씩 버리는 나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상황에 꼭꼭 묶여있다면 완벽하기 위해 짊어진 무언가를 조금씩 내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 그렇다고 최후의 최후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절대로 놓지 말기.


팬더모양 쿠키에 도전! 모양 쿠키는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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