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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Oct 20. 2018

제주도에서 1인빵집을 시작했습니다

빵과 추억을 파는 가게가 되자

저번 주 목요일부터 피크닉델리를 1인 빵집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리일 거라 생각했는데, 계산된 동선으로 움직이니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혼자서 더 부산스러워 보여서 그런 걸까?

손님들이 더 많이 방문해주시고 주문해주셔서 타르트며, 케이크 주문이 꽤 나갔던 시간이었다.


혼자서 가게를 12시간 넘게 지키며 내가 모든 손님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에는 신경 써드리지 못했던 손님 한분 한분 신경 써 드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은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그래서 한 주를 마감하며(매출 정산도 못했지만) 그려보고 적어보는 이야기



브런치에서 보고 왔어요


브런치를 보고 손님이 왔다?!


엄연히 피크닉델리는 빵집이지만(사실 더 큰 원대한 꿈이 있지만 아직은 비밀),

브런치에 빵 이야기를 올린 적은 없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직 수많은 선배님들과 사장님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이지 꼬꼬마 베이커이니까.

그런데 제주도민으로서 겪은 곰팡이 제거 이야기가 다음 홈&쿠킹 탭 상단에 며칠 고정되면서 실제 제주도민분들이 그 글을 보셨나 보다. 그래 그러셨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 글을 보고 빵을 사러 오시는 손님이 계실 줄은 몰랐다.

태풍 콩레이가 오기 전날이라 비상식량을 구입하시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부산스러웠는데, 처음 뵙는 남자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시자마자 다음 브런치를 보고 오셨다고 하셔서 반가움과 부끄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약간의 변명을 더하자면 글을 더 잘 쓸 수는 있지만 가게 일을 우선하다 보면, 일단 적고 퇴고 절차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가죽재킷에 곰팡이가 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냥 올리게 된다.

그런 글을 읽고 무려 제주공항에서 삼양동까지 와주시다니! (심지어 집은 이도동쪽이신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다 내 글을 우연히 발견하신 손님은 글을 읽고 우리 빵집이 궁금해지셔서 태풍 콩레이를 뚫고 비상식량을 사러 피크닉델리에 들리셨다고 했다.

치즈케이크가 없는 걸 아쉬워하시며 종류별로 골고루 사가셨는데, 사가시며


"맛있으면 또 올게요~"


라고 하셨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체감상 제주도민에게 삼양동과 이도동은 강남과 강북 같은 거리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 후 태풍 콩레이가 우리 가게를 모조리 침수시켰지만, 태풍 때 우리 빵을 먹은 뉴페이스 손님들은 인스타그램에 인증샷과 맛있다는 덧글을 남겨주셨고 그분들 중에 브런치를 보고 방문하신 손님도 계셨다.

참 좋으신 분이시구나 하며 주말 내내 수해 복구를 했고, 며칠 뒤 이번에는 가족분들을 모두 이끌고 피크닉델리에 와주셨다. 빵이 맛있다고 해주시니 참 기분이 좋았다.

1인 빵집으로 전환하고 3일째가 되는 월요일에 이 손님이 훌쩍 혼자 나타나셨다.

내일이 결혼기념일인데 케이크를 주문하고 싶으시다고.



우리 가게의 케이크는 가격대가 낮은 편은 아니다. 유기농 밀가루에 유기농 설탕, 직접 만든 슈크림과 동물성 100% 생크림, 그리고 제철 생과일을 사용하다 보니 원가율이 엄청나다. 하나만 개별 작업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만 그래도 드시고 나서 가게를 다시 찾아 케이크가 너무 맛있었다고 해주시는 손님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 맛있는 케이크로 소중한 날 추억을 쌓는 것을 열심히 돕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생겨나서 내가 버는 돈과는 무관하게 신경을 더 쓰게 된다.

특히나 맛있다며 첫 방문 후 일주일 동안 두서 번 더 들려주신 손님이었기에, 야근을 해가며 작업을 했고 기분 좋게 케이크를 전달드릴 수 있었다.

퇴근하고 커피를 한잔 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맛있는 케이크였고 기분 좋은 결혼기념일을 보낼 수 있었다고.

1인 빵집 시작 3일 차, 맛난 크림을 입에 잔뜩 묻힌 아이들을 상상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마감한 저녁이었다.






빵에 곰팡이를 피워보는 취미를 가진 손님


오븐에서 구워지는 우리집 모닝빵


이 손님은 언제나 늘 우리 가게에 제품이 부족할 때 방문하신다.

이상하게도 타이밍이 매번 안 맞아서 손님을 맞이하는 나로서도 늘 마음이 쓰이는 분이었는데, 1인 빵집 6일 차 목요일 빵이 막 나올 시간에 헐레벌떡 가게에 들어오셨다. 몸이 아파 디저트나 커피를 드시지 않고 계시는 친한 언니분이 오늘 생일인데, 초콜릿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우리 가게 브라우니라면 그나마 건강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셨다는 거였다. 하지만 1인 빵집을 하면서 제과를 여유롭게 채워놓기 힘들어 한동안 브라우니는 쉬고 있는 차였고, 갑작스럽게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하시니 어떻게든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는데 20분 내로 만나시기로 하셨다고 하셔서 간단한 초콜릿 케이크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우선 초코 식빵을 데워서 달라고 하셔서 데우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딱 잘라 피크닉델리 빵은 하루가 지나면 맛이 달라지잖아요? 하시는 거였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냐고 물었더니 취미가 빵을 구입하시면 곰팡이가 필 때까지 두고 보시는 것이라서 남편이 별 이상한 취미가 다 있다고 타박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우리 가게 빵이 곰팡이가 필 때까지 관찰해본 적이 있던가 하고 스스로 반성이 들고 손님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를 키우시는 분이시라 깐깐하게 먹는 것을 따지시는 것을 떠나 궁금하니까 실제로 실험해본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 빵은 며칠 만에 곰팡이가 피었을까?

곧 그 언니를 만나셔야 하는 손님께 작은 것이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마침 냉장고에 남아있던 가나슈와 케이크용 생크림, 슈크림을 무스케이크처럼 생크림 컵에 담아 드렸다. 아프신 분이시더라도 생일을 소소하게 축하하셨으면 해서 초와 성냥도 챙겨드렸다.

고맙다며 이 것도 계산에 넣어달라고 하셨지만 그냥 다음에 빵을 좀 더 사달라고 하고 보내드렸다.

부디 그 작은 소박한 케이크에 행복하셨길,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셨길 바라본다.





복숭아 타르트 주문이요~



 처음에 그 손님이 오셨을 때는 가냘파서 비를 피해 가게로 들어온 학생인 줄 알았다. 생소한 가게에서 몇 가지를 집으신 손님에게 나는 갓 나온 머랭 쿠키를 드시며 가시라고 건네드렸는데, 그 머랭 쿠키가 참 맛있었다며 인스타그램에 덧글을 남겨주셔서 기억을 하게 되었다.

그 뒤에도 종종 태풍 전 식빵을 사러 오시거나, 추석 연휴 전 빵을 사러 오시기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도 들려 주문을 해주시기도 했다. 얼굴을 뵐 때마다 반가웠는데 집에 손님이 오신다고 복숭아 타르트를 하나 사가시고서는 다음에 오실 때 그 타르트가 너무 맛있어서 손님이 금방 다 먹어버리셨다고 정말 맛있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월요일에 육지에서 오신 어머니와 함께 방문해 복숭아 타르트가 없냐고 물어보셨다. 어머니께 꼭 들려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비행기를 타러 곧 가셔야 한다고 난처해하는 손님 옆에서 어머님은 딸이 정말 빵을 좋아하는데 여기에 와서 맛있는 빵집이 동네에 있다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 가게는 한전아파트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순환 근무를 하시는 직원분들의 아내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는데 이 손님도 그렇게 갑자기 제주도에 오시게 된 모양이었다. 서울에서는 빵 투어를 다닐 만큼 빵을 정말 제가 좋아하거든요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시는 손님을 보니 자신이 맛있다고 자랑한 타르트를 엄마에게 맛 보여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른거려 급하게 시간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부터 타르트를 만들면 3시간 안에는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손님에게 3시쯤 들려주시겠어요? 하고 타르트를 만들었다.



어머니의 손에 들려 서울로 간 타르트는 손님의 동생분과 어머니가 무척 맛있게 드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손님은 타르트를 찾아가시며 남편 생일용 케이크로도 복숭아 타르트를 하나 더, 다른 분께 감사하다고 전달 드릴 선물로도 복숭아 타르트 주문하셔서 돌이켜보니 3일 내내 타르트를 하나씩 주문해주셨다. 맛있다 생각해주시고 또 주변에 알려주시니 참 감사한 일이었다.




1인 빵집을 하다 보니 손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듣고 또 추억을 쌓도록 도와드릴 수 있어서 이 일이 더 좋아지고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지만, 세상은 정말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내가 힘들까 봐 설거지를 도와주고 된장찌개도 챙겨주고 원당봉에서 인테리어용 솔방울을 주워다 준 친구 파라에게도 고맙고, 복자네 국수의 귀염둥이 셰프 조현이도 본인 돈으로 산 커피도 마시라며 나눠주고 급할 때는 손님 포장도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미쿠니의 실력 있는 파티시에 누리 언니는 매번 커스터드 크림용 노른자를 힘들게 언덕을 올라 가게에 들러서 주고 가는 것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피크닉델리를 아껴주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시는 손님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래서 어제 금요일은 오후 5시에 완판을 경험했다. 이런 구석에 있는 빵집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에서 나온 '서울 3년 이하 빵집들: 왜 굳이 로컬 베이커리인가?'를 읽다가 마음에 남는 내용이 있었다. 빵이 다 팔리더라도 문을 닫는 것보다 매장에 남아 마감시간까지 방문하는 손님께 빵이 다 팔렸다고 죄송하다 말하는 것이 더 낫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도 힘들게 피크닉델리까지 방문해주신 고객님을 닫힌 문 앞에서 돌려보내는 것보다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실천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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