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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Jul 18. 2019

Lucy, Just hold me

그냥 나를 안아주세요.


To. 마음이 약한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한 달 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생산적인 활동을 깨작깨작 겨우 해나가며, 제 생존에 필요한 일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저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고 무작정 잠만 자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이리 약한 걸까. 혹은 꾀병이 아닐까. 사실 나는 힘든 게 싫은 것은 아닐까. 많은 상념들이 둥둥 떠다녔어요. 놀라울 정도로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저는 매우 놀라울 지경이에요. 스스로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고 있다니, 제가 한 달 동안 집안일도 제대로 해내기가 버거웠단 사실을 아신다면 이게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지 당신도 아실 텐데요.


그리고 상담도 받았어요. 정신건강의학과가 제주도에는 많지 않은데, 다행인지 제가 사는 곳에서 무척 가깝습니다. 보건소에서 상담을 할 때도 이 곳을 추천해주셨고, 동네 친구의 남편분도 다니는 곳이라 덜 걱정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전화를 해서 초진 예약을 잡았습니다. 병원 여름휴가와 겹쳐 2주 정도를 기다려 처음 상담을 받았습니다. 첫 상담은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보니 눈이 퉁퉁 부어있었어요. 첫 상담을 받고 나서야 내가 이제까지 힘들고 괴로웠는데 그걸 제대로 봐주지 않았구나 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어요. 눈을 돌리고 봐주지 않던 상처를 제대로 대면하고 나니까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인간관계에서의 실수들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쉽사리 'NO'라고 말하지 못했었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사랑받아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당당하게 멋진 친구들이 부러웠고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저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 입고 있는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상담을 받으며 돌이켜보니 저는 정말 까마득하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지금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이성이 제 마음을 단속했고, 저는 결국 제 마음과 제대로 마주할 기회를 오랜 시간 동안 잃어버렸습니다. 어렴풋하게 알았던 제 호불호를 이제야 명확하게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글을 적습니다. 마음이 약한 당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면, 그건 당신이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격류가 당신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요. 


그러니 지금은 그냥 당신을 안아주세요.


태풍이 오고 있는 제주도에서

노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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