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일기장에 쓰자 좀
가끔 일기장이 아닌 브런치에 일기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타지에서 외롭고 내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남아있지 않은 것 같고 내가 가장 믿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나는 브런치를 켠다.
비겁한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는 늘어나는 구독자 수가 좋으면서도 버겁다.
내가 바보 같은 일기를 써서 발행하는 순간 여러분들에게 알림이 간다는 사실이 가끔은 심판이나 심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생각 없이 즐겁게 글을 써서 올리던 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겁이 많아진 것 같다.
물론 여러분들이 내게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브런치 작가들에게는 글쓰기와 발행도 주어지지만, 작가의 서랍이라는 곳도 주어진다.
적히다만 저장된 글들의 대기실인데 나에겐 무려 38개의 글이 이 곳에서 잠자고 있다.
2016년 6월부터, 제목과 몇 줄의 간략한 내용만이 그 당시 내 감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대다수의 글이 위와 같은 고민 끝에 결론 맺지 못했던 글들이다. 너무 솔직하게 내 속을 드러냈거나, 너무 소설처럼 적었거나 하여간 과잉된 무언가가 부담스러워 나에게 티비 스위치를 꺼버리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내 작가의 서랍에 남겨진 글들은 나를 껄끄럽게 만든다.
그런 글들이 이 곳에서 잠자는 이유는 브런치의 '발행'이라는 버튼을 가끔 너무 누르고 싶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속에 있는 말이라도 뭐든 끄집어내서 하얀 바탕 위에 늘어놓는다는 행위가 글을 적는 동안 부끄럽게 느껴지고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 임시 저장이 된다. 그리고 또 '발행' 버튼이 누르고 싶어서 '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짜잔
임시 저장된 내용이 뜬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확인' 버튼을 누르고 불러들인 다음 '저장' 버튼을 눌러 작가의 서랍 속에 집어넣어둔다. 그리고 쳐다보지 않는다. 아주 가끔 재밌어 보이면 다시 눌러보지만 그 당시의 내가 좀 웃긴 편이구나 하고 웃어넘기고 완결 없이 계속 그 서랍 안에 넣어둔다. 유효기간은 없다.
유효기간이 없다니 감사합니다. 브런치.
그러고 보면,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한 글들은 마치 일기장에 쓰여진 쓰다가 잠들어버린 반쪽 일기같다.
아아아아아~주 가끔 열어서 읽어보고 웃음이 나는 그런 일기.
내가 호호할매가 되어도 이 작가의 서랍은 살아있을까. 싸이월드처럼 백업을 해둬야하는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이 글은 '발행' 버튼을 가끔 너무 누르고 싶어하는 나를 표현하고자 하면서 '발행' 버튼을 누르기 위해 쓰여졌다.
미안해요. 구독자 4090분.
물론 그 중에서 정말 알림을 받으시는 분들은 몇 분이나 되실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다 읽으셨다면 덧글이라도 달아주세요. 양심의 가책 대신 직접 구운 작은 쿠키라도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추신.
제가 제주도에 사니까 제주도에서 보내는 쿠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