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그 제주
작년 강릉에 갔던 친구들과 이번에는 제주도를 갔다. 서로 직장도 다르고, 가고 싶은 곳도, 취향도 다른 친구들끼리 정말 가나 싶었던 여름 여행을 다녀왔다. 누구 하나 고생하는 거 보기 싫다고 렌트도 안 하고 돌아다녔던 여행은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고 아직도 후유증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마냥 편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왜일까.
이번 여행에서는 차를 빌리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짐만 챙겨갔다. DSLR도 당연히 놓고 갔고, 그래서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찍고 싶으면 찍고 보고 싶으면 보고 예쁜 풍경도 눈에 먼저 넣고 사진을 담았다. 그래서일까 내 사진첩엔 풍경보다 친구들의 파파라치 컷들이 더 많은 것은,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라는 특별함을 더 담고 싶어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함께 정신없이 꾸미고 걷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번잡했던 일상의 고민들, 감정들은 다 잊혀진 채로 그저 달렸던 것 같다. 혼자 여행이었다면 내면으로의 다이빙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테지만, 틈틈이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웃고 다시 보느라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히 찾아오는 고독한 순간이 있다. 지하철 안이든, 숙소에서든,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누가 강제로 입을 봉해놓은 것도 아닌데도 누군가와 속 시원하게 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마음이 찰떡궁합처럼 잘 맞는 베프이면 더 좋고 오랜 시간 서로 연애의 유구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래서 친구들과 종달리 달집 게스트 하우스를 빠져나와 소등 시간 전까지 골목을 걸으며 소근거렸던 그 이야기들이나, 잠들기 전까지 떠들었던 그 모든 해답 없는 고민들이 여행이라는 시간에 녹아 삶에 침전되듯 가라앉은 이 순간 나는 그 병을 다시 흔들어 그 몽롱했던 시간들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나는 늘 여행지를 관조의 시선으로 대하려고 노력하곤 했다. 갑작스럽게 헤어지거나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아쉽지 않도록, 깊게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고, 담백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 그런 의미에서 스톡홀름은 실패했다. 거긴 사랑하게 되는 도시다. )
제주도도 의례 그러려니, 그렇게 담백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은 너무 여유를 부려 아쉬움은 많았지만 사랑에 풍덩 빠지지는 않았다. 북유럽을 너무 촉박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진득하게 마음을 줄 시간이 없었다. 도쿄는 자주 갔기에 자주 보는 동네 친구처럼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그립다. 태엽을 감아 다시 돌리고 싶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점에 가서 다 같이 감탄하며 밥을 먹기도 하고, 우도에서 전기차로 씽씽 해안도로를 달리기도 했고, 해변에서는 올해 놀 물놀이는 다 했다고 장담할 만큼 후회 없이 놀았지만 딱히 유별나거나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도. 가려던 맛집은 거의 가보지 못하고, 모기는 엄청 물렸고, 예쁜 사진도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 평생 두고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웃긴 사진들은 몇 장 있다. )
그런데도 그립다. 못생긴 연인에게 빠지면 답도 없다더니, 딱히 여행지 같지 않은 제주도 여행에서 나는 이렇게 헤어나기가 힘든 것일까. 누군가 답을 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빨리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