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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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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Jul 20. 2016

다시 일상으로 귀환했다, 아 이런

제주도, 그 제주


작년 강릉에 갔던 친구들과 이번에는 제주도를 갔다. 서로 직장도 다르고, 가고 싶은 곳도, 취향도 다른 친구들끼리 정말 가나 싶었던 여름 여행을 다녀왔다. 누구 하나 고생하는 거 보기 싫다고 렌트도 안 하고 돌아다녔던 여행은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고 아직도 후유증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마냥 편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왜일까.



마냥 흐르는 대로,


아일랜드 조르바_ 비가 올랑말랑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차를 빌리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짐만 챙겨갔다. DSLR도 당연히 놓고 갔고, 그래서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찍고 싶으면 찍고 보고 싶으면 보고 예쁜 풍경도 눈에 먼저 넣고 사진을 담았다. 그래서일까 내 사진첩엔 풍경보다 친구들의 파파라치 컷들이 더 많은 것은,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라는 특별함을 더 담고 싶어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지도에서는 길이라 나와있지만 실상은 진흙밭이었던 종달리의 어떤 지름길
종달항에서 출발하는 작은 배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정신없이 꾸미고 걷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번잡했던 일상의 고민들, 감정들은 다 잊혀진 채로 그저 달렸던 것 같다. 혼자 여행이었다면 내면으로의 다이빙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테지만, 틈틈이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웃고 다시 보느라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비자림은 더웠다.
가방들에게서 각자의 성격이 보여지는 것 같다






조용한 순간은 1초도 없었다.


에어컨이 고장났던 아일랜드 조르바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히 찾아오는 고독한 순간이 있다. 지하철 안이든, 숙소에서든,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누가 강제로 입을 봉해놓은 것도 아닌데도 누군가와 속 시원하게 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마음이 찰떡궁합처럼 잘 맞는 베프이면 더 좋고 오랜 시간 서로 연애의 유구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래서 친구들과 종달리 달집 게스트 하우스를 빠져나와 소등 시간 전까지 골목을 걸으며 소근거렸던 그 이야기들이나, 잠들기 전까지 떠들었던 그 모든 해답 없는 고민들이 여행이라는 시간에 녹아 삶에 침전되듯 가라앉은 이 순간 나는 그 병을 다시 흔들어 그 몽롱했던 시간들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속삭임의 밤






여행지에 마음 주는 것에 대하여,



이호테후 해변에서 보이는 부표 깃발들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늘 여행지를 관조의 시선으로 대하려고 노력하곤 했다. 갑작스럽게 헤어지거나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아쉽지 않도록, 깊게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고, 담백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 그런 의미에서 스톡홀름은 실패했다. 거긴 사랑하게 되는 도시다. )

제주도도 의례 그러려니, 그렇게 담백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은 너무 여유를 부려 아쉬움은 많았지만 사랑에 풍덩 빠지지는 않았다. 북유럽을 너무 촉박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진득하게 마음을 줄 시간이 없었다. 도쿄는 자주 갔기에 자주 보는 동네 친구처럼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그립다. 태엽을 감아 다시 돌리고 싶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점에 가서 다 같이 감탄하며 밥을 먹기도 하고, 우도에서 전기차로 씽씽 해안도로를 달리기도 했고, 해변에서는 올해 놀 물놀이는 다 했다고 장담할 만큼 후회 없이 놀았지만 딱히 유별나거나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도. 가려던 맛집은 거의 가보지 못하고, 모기는 엄청 물렸고, 예쁜 사진도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 평생 두고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웃긴 사진들은 몇 장 있다. )

그런데도 그립다. 못생긴 연인에게 빠지면 답도 없다더니, 딱히 여행지 같지 않은 제주도 여행에서 나는 이렇게 헤어나기가 힘든 것일까. 누군가 답을 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빨리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함께.



트로피카 게스트 하우스에서 막 사온 찹쌀 도너츠와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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