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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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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Sep 09. 2016

내가 제주도를 여행하는 방법


국내 여행지 중에서도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는 이국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제주도가 아닐까.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누볐던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비행기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부터 남달랐다. 공항을 나서면 느껴지는 이국적인 열대의 가로수부터 곳곳에 들리는 제주도 방언은 외국어처럼 알아듣기가 어렵고 제주도 현무암으로 낮게 쌓아진 돌담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은 낯설게 느껴졌다. 제주도민 가이드가 붙어 제주도를 여행했고 집에서 기른다던 흑돼지도 직접 보고 말의 뼈로 만들었다는 수상쩍은 약을 맛보기도 했었다. 흡사 지금의 동남아 같은 여행지였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기 같은 책들도 나오고 서울만큼이나 힙한 카페들과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하고, 새로워진 제주는 내가 몰랐던 곳 같아서 매번 올 때마다 놀랍기도 하다.



15년이 지나 방문한 제주도에서는 관광지로써 개발된 제주를 안타까워하는 택시 기사분들을 만나기도 하고, 혹은 이런 변화를 반기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예전에는 절대로 혼자 여행할 수 없었던 폐쇄적인 섬 문화를 생각해보면 정말 지금의 제주는 완벽하게 여행자들을 위해 변화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제주도에 오면 필수 코스였던 만장굴이나 천지연 폭포는 오히려 뒷전이고 사진 찍기에 예쁘고 좋은 곳이나 맛집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친구들을 보며 살짝 놀랍기도 했다.



나도 지금의 제주도 싫지는 않다. 오히려 좋다.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만 한번 타면 도착하는 멀고도 짧은 이 거리가 어쩐지 매력적이랄까. 그래서 나는 제주도를 그냥 여행하는 것이 아쉬웠다. 여행자라면 다들 꿈꾸는 여행지에서 내가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곳, 여행지에서의 내 집, 내 단골 카페, 내 동네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며칠이고 뒹굴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곳이 마음만 먹는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어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느냐에 달렸던 것 같다.



다행히 저번 여행에서 마음에 쏙 드는 게스트 하우스를 만나 사장님 추천으로 근처 카페를 알게 되었는데 그곳의 사장님도 참 좋았다. 게다가 그 동네에 현무암 돌담이 있다는 것도 용천수가 퐁퐁 나오는 시원한 노천탕이 있다는 것도, 조금만 걸으면 도두봉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도 그리고 마을에서 쉽게 관광객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마음에 들었던 이 게스트 하우스가 퍽 까다로워서, 숙박할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다. 그래서 그다음 여행에서는 그 게스트 하우스에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가 없었고 열심히 찾아본 덕분에 또 다른 좋은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도두항에 있는 향토음식점 도두항에서 사온 접짝뼈놈삐국 : 맛있다


새로 찾은 낭만 제주 펜션의 주인분이 친절하셔서 아침마다 핸드드립 커피도 가져다주시고, 가격도 착하고 맛있는 국밥집도 알려주시고 저녁에는 고등어조림도 챙겨주신 덕에 이번 제주도 여행은 숙소에서 집밥을 자주 먹었다. 이웃에게서 얻은 주먹만 한 무화과도 내어주셨는데 그 따뜻함에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이웃의 정을 제주도에서 느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야심차게 챙겨가신 핸드드립 커피 팩들이 고스란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내려준 따뜻한 인정보다 더 맛있었을 린 없다. 따뜻한 드립 커피를 잔에 따라 마실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졌으니까.



두 번째 날 아침, 흐린 날씨에 달달한 디저트와 씁쓸한 커피가 그리웠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로치아에 가서 아침으로 찹쌀 와플을 먹기로 하고 준비를 했다. 로치아 커피 로스터스는 제주 토박이 주인장이 운영하는 중후한 매력이 있는 독특한 카페다. 저번 여행에서 후다닥 아이스커피만 마시고 일어난 것이 아쉬워서 다시 들렸는데, 마침 여름 시즌 메뉴인 모히또가 곧 끝난다는 말에 드립 커피 말고 모히또를 시켰다. 그리고 아침밥 대신 찹쌀 와플도 싱글로 하나.



로치아는 독특한 복층 구조가 이색적인데, 혼자 왔다면 꼭 바 테이블에 앉아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부끄럽다고 저 멀리 앉았다간 로치아의 주인분이 알려주는 생생 제주 정보를 놓칠 수 있으니까.



딱 봐도 싱글 와플의 양이 꽤 되어서 우스갯소리처럼 와플을 사실 더블을 시키려다 말았어요 하니 음식이 남는 걸 싫어하셔서 더블을 시켰어도 안 주셨을 거란다. 이런 소신 있는 주인장 좋다. 찹쌀 와플은 바삭하니 쫄깃해서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쫀득하니 잘 어울렸다. 너무 달다 싶으면 새콤한 블루베리를 몇 알 씹으면 된다. 모찌 와플을 좋아한다면 꼭 먹어보면 좋겠다. 쫀득쫀득한 와플이 꼭 구운 떡 같기도 하고 바삭하게 쿠키 같기도 하다. 아침을 먹지 않고 왔는데도 혼자 다 먹으려니 배가 불렀다.



로치아의 모히또는 이제껏 내가 어느 칵테일 가게에서 먹은 것보다 맛있었다. 모히또를 주문하면 주문을 받자마자 바로 밖에 달려 나가서 옆 화단에서 직접 재배하시는 애플민트를 따서 가져오시는데 메뉴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시는 그 모습에 로치아에서 나오는 모든 메뉴가 왜 그리 섬세한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치아 인스타그램을 보니 오일장에서 사 와서 심어놓은 애플민트인가 보다. 알코올이 들어가서 그런지 살짝 들뜨게 된다. 들뜬 기분으로 종알종알 떠들다가 오일장을 걸어가 볼까 하는데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오일장에 가면 꼭 광주식당에서 꼼장어를 먹어야 한다고 강력 추천하시지 뭔가. 꼼장어에 막걸리를 이야기하시면서 '크'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폼이 예사가 아니라서 오일장에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저번 여행 때에 오일장에 삼계탕에 쓸 토종닭을 사러 함께 갔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함께 오일장을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광주식당을 찾았다.



입구 초입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빙글빙글 돈 것이 아까웠지만 솔솔 풍기는 꼼장어 냄새가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가게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서 서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자리는 생각보다 금방 났다. 자리에 앉아 계산서를 들여다보니 메뉴가 생각보다 많았다.



꼼장어 1인분과 섞어 국밥 한 그릇을 시켰는데 섞어 국밥은 소담한 것이 한 사람이 후루룩 먹기에는 제격이다. 깊은 국물은 아니지만 안에 들어간 돼지 부속들이 맛깔나다. 다진 양념을 풀어 먹으면 얼큰한 것이 술이 절로 생각난다. 특히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시장 안 식당에서는 더더욱 더위를 식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리워진다.



뭐 달리 방도가 없지. 금주 중이라는 사장님의 결심이 무색하게 막걸리를 한병 시키는 수밖에, 반찬도 깔끔해서 국밥이 아니더라도 안주는 많았다. 물론 이건 꼼장어가 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꼼장어가 나오자 정신이 없었는지 카메라 사진이 없다. 폰으로 찍고 바로 입에 넣은 모양인지. 솔솔 올라오는 양념이 살짝 탄 향기가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입에 넣으면 통통하고 튀어 오르는 꼼장어의 살이 너무 맵지도 않고 알싸하다. 1인분은 금방 두 사람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감탄이 계속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 맛있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꼼장어는 따로 1인분을 포장했는데 집에 가져와 식은 꼼장어를 따뜻한 밥 위에 올려먹어도 꿀맛이었다.



배를 꺼트릴 겸 오일장을 돌아다니다 백도를 사려고 했는데, 시장 아주머니가 황도가 더 맛있는 거라며 황도를 파셨다. 진한 노란색이 참 예뻤다. 옆에서 백도를 산 사장님과 사이좋게 두 알씩 나눴다. 숙소에 와서 먹어보니 황도는 좀 더 진한 단맛이 돌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밤에는 천둥도 쳤다고 했다. 아침을 먹을 겸, 낭만 제주 사장님께 추천받았던 국밥을 먹으러 우산을 들고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골목도 항구도 모두 촉촉했다. 나는 카메라로 엄마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카메라가 상할까 얼른 집어넣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모자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제주도 장례식 때 먹는다는 고사리육개장과 잔치 때 먹는 음식이었다는 접짝뼈놈삐국을 주문했다. 반찬이 나왔는데 원래 나오던 간이 오늘은 없어서 돼지 꼬리뼈를 삶은 것을 주셨다. 젤라틴 덩어리가 탄력 있게 씹히는 것이 독특했다.



고사리 육개장은 돼지고기 살을 발라 고사리와 함께 뭉근하게 끓여낸 것이라서 국물이 걸쭉하고 부드러웠다. 수프처럼 넘어가는 목 넘김에 슬픔에 겨워 허덕이는 상주들도 고사리 육개장을 먹으며 그 어려운 시간을 넘겼으리라 상상되었다. 접짝뼈놈삐국은 돼지 등뼈와 무, 메밀가루가 들어간 잔치 음식인데 부산의 돼지 국밥 같으면서도 깊은 맛과 담백한 살코기가 정말 맛있었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접짝뼈놈삐국을 한 그릇 뚝딱 비워내시곤 제주도 뮤직 페스티벌에 딸이 가있는 동안 저녁 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두 그릇을 따로 포장하셨다. 그러곤 서울에도 이런 국밥집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서서히 그치더니 청명하고 맑은 하늘이 곧 펼쳐졌다. 서울에는 며칠 전에 찾아온 가을이 제주도에는 이제야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있자니 한 달쯤 이 곳에서 정말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뭉클뭉클 올라왔다. 하지만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면 이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했다.



낭만 제주 펜션의 개 '써니'가 내가 돌아오면 반겨주고 내 다리에 착 붙어 앉던 여행의 마지막 날. 내가 여행자인 것이 아쉽고 아쉬웠다. 낭만 제주 펜션 사장님은 웃으며 이러다 고운씨 곧 제주도로 오겠네요 하셨고 나는 그렇다면 참 좋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내 여행 방법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찾는 것


그리고 그 동네를 진득하게 즐기는 게 바로 내 여행 방법이다. 핫한 카페나 멋진 인증샷은 없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제주도 여행 방법.







낭만제주펜션 : http://www.nangman-jeju.com/

로치아 커피 로스터스 : https://www.facebook.com/rocciacoffee / https://www.instagram.com/roccia_jeju/

트로피카 게스트 하우스 : http://www.tropica.co.kr/

제주도 오일장 광주식당 :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3224752

향토 음식점 도두항 : http://blog.naver.com/doduhang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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