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노 Sep 16. 2016

아트한 숙소에서의 하룻밤

다른 세계의 문을 열었더니



예술이란 낯선 것인가 흔한 것인가



고민을 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게 요즘 현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변하지 않은 지식이란 사실 없고, 내 눈에 예쁜 것이 남들에게도 예쁘다는 보장은 없고, 대중성은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 이상으로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하기를 원한다. 시장의 파이가 다양해지고 인디 게임과 독립 영화, 인디 밴드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흔한 것은 언젠가 익숙해지고 낯선 것은 언젠가 빛나는 때를 위해 기다린다.


기실 예술은 언제나 낯선 것이 되려고 한다. 새로운 발상 혹은 기법, 또는 표현들로 나만의 것을 구축해야 하는 작가들에게 흔하고 익숙한 것은 기피해야 할 것이며 대중성에 맞닿아있다는 증명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  2년 전 석촌 호수에서 나타났던 러버덕 프로젝트도 큰 의미에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는 러버덕 프로젝트에서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평화와 행복을 느끼기보다 외관적인 모습에서 보이는 귀여움과 그 커다란 규모로 인한 비현실성을 만끽하고 즐기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러버덕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이 알만큼 유명하고, 상업적 이익 또한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을 어떻게 느껴야 맞는 것일까. 러버덕 프로젝트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둘 다 유명하지만 게르니카는 고매하고 러버덕은 가볍고 발랄하니까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가 진정한 예술이고 러버덕은 상업성에 치우쳐진 커다란 공기 인형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일까.


시간을 내서 보러갈만큼 귀여웠다.


ARTTRIP의 ART&STAY 2번째 프로젝트인 송송X어반우드를 방문하고 적었던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에서 예술이란 예술가가 가진 우주, 혹은 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이며 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현실의 공간이던 석촌 호수에 떡하니 떠올라 호수를 순식간에 거대한 욕조처럼 보이게 한 러버덕도 예술이고 우리를 순식간에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관객으로 탈바꿈시키는 게르니카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러버덕과 게르니카의 차이는 작가의 표현의 차이이기도 하고 시대의 차이이기도 하고 두 작품을 받아들이는 우리 심상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ARTTRIP 링크

*ART X STAY란? 링크





체크인 체크아웃



나는 가을 초입의 어느 금요일에 ART X STAY의 세 번째 프로젝트 김민기X우앤우에 체크인했다. ART X STAY에서 처음으로 지내보는 1박, 오프닝 행사에 참여한 다수의 관람객 중 한 명이 아닌 나와 친구만을 위한 시간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금요일 밤, 고된 일주일을 보낸 친구와 각자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서 숙소에 체크인하기로 했다. 숙소 현관에서부터 눈 닿는 곳곳에 김민기 작가의 작품들로 가득했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타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서자 노곤하게 풀어졌다. 친구는 차가 많이 막혀 늦어진다고 연락을 해왔다. 우앤우의 호스트인 우성님이 친구가 도착하기 전 간단하게 숙소를 안내해주고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었다.


우앤우의 호스트인 우성님에게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우앤우에 설치된 작품들은 모두 조각가 김민기 작가의 작품들로 김민기 작가의 작품들 중 선인장 형상을 띈 작품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인장처럼 보이는 그림자들로 둘러싸인 방은 김민기 작가가 사용한 영수증을 모아 전면을 도배하고 그 위에 새롭게 이미지를 덮은 독특한 공간이었다. 책상의 한 쪽에는 영수증을 기증받는 빈 페인트 통이 있었는데, 이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이 그 통에 영수증을 넣고 가면 후에 작가의 작품에 사용된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면서, 회사 일과 가정 문제로 이리저리 치이는 친구에게 김민기 작가 작품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김민기 X 우앤우 에 설치된 선인장과 유사한 형상들은 사막과도 같은 사회(모순과 갈등, 괴리, 외로움, 혼란을 초래함)에 자유롭지 못하며 상처받기 쉬운 하나의 인간이 세상을 마주하는 모습을 표방한다. 척박한 사막에서 버텨내는 선인장의 모습이 현실의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의도가 표현된 작품이다.


거실에 걸린 초기작 : "세상은 사막이다. 나는 선인장이 될 수 있을까."라고 적혀있다
침실의 화장대 옆에도 선인장 조형물들이 설치되어있다. 나중에 도착한 친구는 작품이 인테리어 소품같다며 좋아했다.


호스트 우성님이 떠나고 도착이 늦어지는 친구를 기다렸다. 조용한 방 안에서 바라본 하얀 벽에 걸린 까만 배경의 하얀 선인장들은 '어둠 속의 대화'에 들어간 나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까만 배경 위에 그려진 하얀색의 선인장들은 마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반딫불빛처럼 보였다.



여기에 정말 작품들이 설치된 숙소가 있어?


늦게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도 반신반의하던 친구는 하이힐을 벗고 들어오자마자 신기하다는 듯 방들을 둘러보더니 피곤하다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피곤해하는 친구를 끌고 불금의 연트럴파크(연남동의 구 경의선 철로길)를 걷고 연남동 탐방을 했다. 새벽 3시까지 하는 심야 식당들이며 도시의 이름을 딴 야시장들과 술집들은 문전성시였다. 속이 탄다는 친구의 말에 빙수 하나 먹고 수다를 떨다가 파닭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물이랑 가벼운 알코올류, 내일 아침에 먹을 과일들도 샀다.


파닭은 언제 어디서나 경건하게


숙소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먹은 갓 튀긴 파닭은 맛있었다. 편하게 소파에 앉아 파닭을 먹는 동안 친구는 '이 숙소에 TV가 없네.' 하고 아쉬워했다. 소파 맞은편에는 김민기 작가의 초기작이 걸려 있었기에 TV를 보는 대신 우리 둘은 몸을 틀어 서로를 마주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고, 예술을 경험하는 일에 워낙 오픈 마인드이기에 일반적인 직장인에 가까운 친구의 숙소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다. 친구는 작가가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숙소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과 그 숙소가 바로 주택가의 어느 빌라의 한 집이라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페이크 작품과 진짜 작품이 가지는 무게감이 다른 것 같다면서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작품들을 훼손할까 봐 조금 두렵기도 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숙소에 지내는 동안 친구는 작품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작품이 어렵다거나 훼손할까 봐 두렵단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아서 오히려 그런 의견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벽에 걸린 그림들보다 화장대 테이블과 창문과 방 곳곳에 설치된 선인장 조형물이 인테리어 소품 같아 훨씬 예쁘고 편하다고 했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무의식 중에 의식하게 되는 타인의 시선에도 무관해지니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하기가 쉬웠다. 서있지 않아도 되어서 더 좋다. 등받이가 없는 소파에 앉아 그림만 보고 있지 않아도 돼서 더 좋고, 마음껏 사진 찍을 수 있어서 더 좋다. 그 다음 날 아침 무렵에는 친구도 침대에 누워 저 그림은 좀 더 내 취향이니, 저 그림은 유광이라 더 예쁜 것 같다는 투의 감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간에 따라서 방의 인상이 달라졌다. 잠에 한번 빠져들었던 피곤한 몸을 뒤척여 겨우 뜬 눈으로 본 아침 햇살이 짠하게 들어오는 침실은 저녁과 달랐다. 그림들 표면으로 반사되는 빛은 더 따뜻하게 반짝였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실눈으로 보는 그림들은 더 내 일상에 착 붙어오는 느낌이다.



그림에 둘러싸여 잠이 들고 깨어나는 느낌이 확실히 집과 달라 생경하다. 천장 중앙에도 삐죽삐죽 철골 선인장 무더기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했다. 점심에 약속이 있어 서둘러 아침을 챙겼다. 어제 사둔 바나나와 복숭아를 꺼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내 12년 지기 베프는 복숭아를 껍질째 먹는다! 천도복숭아도 아니고 백도인데! 나도 껍질째 먹어볼까 했지만 입 안에서 영 거슬렸다.

이건 내 친구도 마찬가지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야 집에 내가 그린 그림도 걸어두고 선물 받은 그림도 걸어두지만 친구네 집은 그렇지 않으니까 작품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껍질까지 말끔히 먹어치운 친구와 달리 나는 이빨로 열심히 복숭아 껍질을 갈아냈다. 껍질을 다 벗긴 복숭아는 역시 맛있었지만 복숭아를 다 먹기까지 난 시간이 꽤 걸렸다.



숙박공간에 예술을 불어넣다에 적었던 것처럼 감은 머리를 털면서 그림을 봤다. 나 다음으로 샤워를 한 친구는 그림 아래 주저앉아 머리를 말렸다. 우리 둘 다 철골 선인장들 옆에서 화장을 했다. 그렇게 곁눈으로 스치듯 보는 작품들은 하룻밤 사이에 친구가 된 것처럼 친근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친구는 다음에는 좀 더 화사하고 컬러풀한 그림들이 있는 숙소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낯설음과 편안함


여행자는 숙소에서 편안함을 찾으려고 한다. 여행자가 원하는 편안함이 충족되는 후보지가 많을 경우 우리는 +a를 찾는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낯선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비슷한 가격, 비슷한 조건이라면 모든 소비에서 응당 그러하듯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만 한정적으로 운영하는 ART & STAY는 분명 낯선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숙소가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에게는 숙소가 제공해야 하는 편안함이 낯선 매력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내게 ART & STAY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예술이 표현되는 다양한 형태들이 내게는 익숙하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그렇기에 보다 쉽게 예술가가 고민하고 던지는 낯선 주제를 매력적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 ART & STAY라는 개념이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사람들이 숙소에서 숙소의 기능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내 친구처럼 그 다음을 기대하게 될 것이고 ART & STAY는 우리가 호텔과 리조트, Airbnb, 게스트 하우스를 고르는 것처럼 당연한 숙소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분명 미래에는 당연한 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ART X STAY에서 지내보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


1. 월 1회 미술관 및 기획전 관람하는 사람

2. 독특한 숙소를 찾는 사람

3. 숙박형 갤러리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

4. 인스타그램 마니아

5. ART X STAY 작가의 팬



[ART X STAY] 김민기 X 우앤우에 대한 짧은 감상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모던한 갤러리같은 숙소, 도보로 바로 연남동과 홍대 입구로 갈 수 있어 주말을 보내기에 좋았다. 친구들 혹은 예술을 좋아하는 커플에게 추천하고 싶다.



Brunch에 쓴 ART X STAY 시리즈


1. 숙박공간에 예술을 불어넣다.

https://brunch.co.kr/@nonayo/50

2.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https://brunch.co.kr/@nonayo/56



Brunch에 쓴 독특한 숙소 리뷰들


1. 보잉 747기 조종석에서 보낸 이색적인 하룻밤

https://brunch.co.kr/@nonayo/7

2. 스톡홀름 범선 호스텔 AF CHAPMAN에서의 하룻밤

https://brunch.co.kr/@nonayo/16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했던 예쁜 숙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