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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Nov 22. 2016

헨릭 빕스코브의 Den Plettede Gris

덴마크의 작은 카페


2015년은 대림 미술관에서 헨릭 빕스코브전을 본 해였다. 그 후에 북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하루 덴마크에 들리기로 했는데 어딜 가야 할지 고르기가 어려웠다. 덴마크에 별다른 애정이나 관심도 없었으니 그냥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갈까 했는데 하필 들르는 요일이 월요일이었다. 제일 가보고 싶은 디자인 박물관이 휴관이라 덴마크는 잠시 들리는 것에 이의를 두자는 생각이 훨씬 강했다. 그럼 어딜 가면 좋을까 했는데 헨릭 빕스코브가 코펜하겐에 카페를 통째로 디자인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왕 갈 곳이 없다면 헨릭 빕스코브의 카페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코펜하겐 계획에 헨릭 빕스코브의 카페를 방문하겠단 계획이 추가되었다.


*이 포스팅은 헨리 빕스코브의 코펜하겐 카페를 방문한 한글 포스팅이 보이지 않아 적어보는 포스팅입니다.



그리고 코펜하겐에 도착했을 때는 수면 부족에 감기 기운에 정신은 하나도 없고 덴마크 돈은 바꿔두질 않아서 카드로 모든 돈을 써야 하다 보니 최대한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배가 고픈데 뭘 먹지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지금 헨릭 빕스코브 카페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갈 곳이었고 그렇다면 거기서 배를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면서. 지도로 위치를 보니 시내에서는 거리가 떨어진 곳이라 아침에 제일 먼저 그곳을 들렸다가 시내를 구경하고 공항으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내가 가려던 카페 Den Plettede Gris 헨릭 빕스코브의 오피스 옆에 있는 카페였다.(몰랐다.) 그래서일까 도착한 카페 맞은편에는 PVH 오피스가 있었다. 카페가 위치한 Paper 섬은 공장지대에서 핫한 문화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장소여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한적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문래동이나 성수동 대림창고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패션에 별 관심도 없고, 헨릭 빕스코브의 팬도 아니면서 가보겠다 생각을 한 나도 신기하지만 그 카페 사람들은 더 신기해했을 것 같다.



카페 건물은 멀리서 보기에도 한눈에 딱 눈에 띄었다. 네이비 빛을 머금은 페인트로 칠해진 벽면과 하얀 유리창 그리고 곳곳에 놓인 벤치들이 마치 레고로 만든 하나의 세트 같았다.



건물은 정말 예뻤다. 하늘이 맑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너무 건물이 덩그러니 있어서 선뜻 들어가도 될지 망설여졌다. 앞에서 서성이자니 휴일을 보내려는 가족들이 카페 앞을 지나쳐 운하 옆에 있는 인터렉티브 뮤지엄으로 향하고 있었다. 들어가도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문 앞에 걸린 OPEN이라는 사인이 내게 용기를 줬다. 



어렵게 들어간 카페의 내부는 작았다. 앉아있던 훈훈한 바리스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커다랗게 보였던 건물의 4분의 1 정도만이 카페로 활용되고 있는 듯했다. 말 그대로 사무실 한구석을 잘라내어 카페로 탈바꿈한 느낌? 카페는 웹사이트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작고, 더 현실감 있고, 더 아늑했다. 들어서자 손님은 나 혼자였다. 수줍은 기분으로 카페라테와 아몬드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배가 고팠고 추위와 아침부터 많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공복으로 뛰어다녀 지쳐있었다.



가게 곳곳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팽이들이 걸려 있었다. 주황색 전등과 곳곳에 놓인 초가 실내를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따스한 라테와 크로와상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카페에 막상 앉으니 노곤함과 막막함이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카페가 작아 오래 있기에 눈치가 보였고, 코펜하겐의 날씨 역대급으로 흐렸다. 이런 날엔 호텔 침대에 누워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뒹굴거리는 게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입 베어 문 크로와상은 안에 아몬드 페이스트가 들어있어 진하고 고소하고 바삭했다. 라테는 너무 뜨겁지 않게 따뜻하게 식도를 넘어갔다. 줄어드는 양이 아쉽게 느껴졌다.



카페에 혼자 앉아 다음 일정을 어찌하면 좋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곧 카페를 지키고 있던 직원과 친해 보이는 여러 명의 남녀가 카페로 들어섰다. 서로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물어보며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를 나누는 그들은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아쉬움과 만남의 반가움을 가득 안고 있어서 외톨이 여행자인 나는 그들이 휴가가 끝났음을 아쉬워하는 표정들과 미묘한 흥분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곧 한 여성이 익숙한 듯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직접 커피를 내렸다. 그들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 모여서 속닥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북유럽을 떠돌았더니 이젠 영어와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와 덴마크어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내 귀에 닿는 말들은 그 의미의 해석보다 목소리가 표현하는 감정에 더 가까웠다.



나는 상상했다. 저 사람들은 이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 이리라.(지금 생각하니 옆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사무실은 어쩐지 들뜬 공기로 가득하고, 어차피 연말이니 다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거고 그러니 이 사랑방 같은 카페로 넘어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을 내가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는지 그들 중에 한 명이 내게 어떻게 이 카페를 왔냐고 물어보았다. 참 독특하고 예쁜 귀걸이를 하고 있다고 내심 생각했던 사람이라서 한국에서 전시를 보고 헨릭 빕스코브를 알게 되었고 코펜하겐에 들리면서 꼭 와보고 싶었다고 하니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신의 귀걸이가 참 예쁘다고 말해주니 고맙다고 직접 만든 것이라 답해주었다.




만약 내가 이 카페를 들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북유럽 여행을 준비하는데 헨릭 빕스코브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 여행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테지. 하지만 그저 기억해내고 들렸다는 경험 하나만으로도 코펜하겐에 내가 아는 특별한 곳 하나가 늘어났으니 그 사실은 기뻤다.

이 날 내가 들렸던 그 어느 곳보다 사실 제일 포근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서울이 그리워져 서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 떠올려봐도 좋은 곳이었다. 다음에는 저녁에 간단한 술을 한 잔하러 친구랑 가보고 싶다.




큐트한 돼지모양 간판


헨릭 빕스코브의 Den Plettede Gris

http://www.henrikvibskov.com/index.php?/cafe/#

http://www.visitcopenhagen.com/copenhagen/den-plettede-gris-gdk916634


실내는 작은 10석 규모의 카페

헨릭 빕스코브가 디자인한 대로 운영되고 있다.

커피, 주류, 주스, 케이크, 데니쉬, 쿠키 등이 판매되고 있다.

여름에는 외부 벤치와 의자에서도 음료와 푸드를 즐길 수 있을 듯


추천하는 방문자


패션을 공부하거나 헨릭 빕스코브의 팬

구석에 숨은 매력 있는 카페에 방문하길 원하는 방문자

여행을 여유롭게 하는 타입의 여행자


비추천하는 방문자


넓고 예쁜 인테리어의 카페를 원하는 사람

효율적인 동선으로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

헨릭 빕스코브의 머리털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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