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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Jan 28. 2017

갤러리이즈 극기산수화 김예슬

너는 작가 김예슬이다


친한 동생 개인전에 선물 대신 글을 써주겠노라 했으면서 호되게 걸린 감기 때문에 몇 주를 그냥 보냈다. 글이라는 게 이상하게 또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던가.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이제 진짜 새해가 오기 전에는 적어봐야지 하고 브런치를 열었다. 하하 ( 그리고 새해가 되어버렸다. ) 



극기산수화는 제작되는 과정이 독특하다. 작가가 직접 물감을 줄넘기 줄에 묻혀 천을 이동시키며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아이들도 자신들도 똑같이 해보겠다고 나설 법도 하다. 극기드로잉 시리즈인 극기산수화의 작업은 결과물로 나타나는 형태도 독특하지만 작업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의도 또한 남다른 면이 있다.




"작가는 운동 계획을 세우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운동을 수행하며 드로잉을 한다. 동작의 반복 행위가 캔버스 위에 자취를 남기고, 그 흔적들이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운동은 작가의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계속된다.


극기 드로잉은 체력 단련을 위한 반복 운동과 드로잉의 일치를 꾀한 작업이다. 운동이 체력의 한계를 늘리고 육체미를 갖기 위해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작업방식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두 가지 모두, 자신의 한계를 넘고 고군분투하는 '극기'라는 공통적인 명제를 수반한다.


극기 드로잉은 작가에게 부여된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일상과 그것을 끝없이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출발한다. 규칙적 운동과 트레이닝을 반복하며 완벽한 몸매를 추구하는 것은 시대의 의무이고 미덕이 되었다. 규칙적인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등 현대인의 규격 맞춤을 위한 자기 계발은 반복이라는 필수조건을 나른다. 무한한 반복의 틈에서 작가는 자신을 옭매는 규칙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사이에 위치한 자기표현의 공간을 모색한다.


동작의 반복적인 행위가 만들어 낸 무한개의 궤적이 그려내는 풍경은 절대 생경하지만은 않다. 넓은 천 위에는, 깎아지른 기암괴석, 가파른 산등성이, 그리고 무성한 수풀을 연상케 하는 비정형의 포물선들이 쌓여있다. 규칙이 만들어낸 불규칙적 형상은 예상치 못한 극적인 풍경으로 감상을 이끈다."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작업하는 퍼포먼스와 그 결과로 남는 작업의 모양새가 더없이 고요해 보이는 산수화와 닮았다니 극과 극의 모양새가 아닐 수가 없다. 특히나 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 잔디밭에서 작업을 하는 풍경을 보자면 작가 개인에게는 사투가 아닐 수 없겠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평화로운 운동의 풍경처럼 보인다. 놀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내 눈에만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개인전을 열었다 하기에 예슬이의 개인전을 축하해주기 위해 인사동으로 향했다. 갤러리이즈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선정작가라는 것도 인사동에 도착해 처음 알았다.



인사동의 갤러리이즈의 2층 제2전시장에서 극기산수화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 기간은 2017년 1월 4일부터 2017년 1월 10일까지. 아쉽게도 이미 끝났다. 나는 철수하기 전 날 오후쯤에 전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 가볍게 이름을 남기고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캠퍼스나 액자가 걸려있는 모습이 익숙해서일까, 극기산수화 전은 첫인상부터가 곳곳의 긴 천들이 걸려있는 모습에서 자유롭고 독특한 예슬이만의 감성이 느껴졌다. 과연 예슬이답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생 때 만났으니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인연이지만 그때부터 예슬이는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시장은 그런 예슬이의 남다른 면모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작은 TV까지 감싸고 전시장의 중앙까지 늘어진 긴 작품은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사용하는 작업도구들이 그 작품의 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작가가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를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TV와 함께 배치해 둔 것은 좋은 생각처럼 느껴졌다. 막연했던 작품이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영상의 말미에는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쓰러지는 작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내 마음에 드는 메인 작품은 바로 이 두 개였는데, 빛나는 금분을 섞어 만든 작품과 파르스름한 푸른빛으로 완성된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내는 쌍둥이처럼 보였다.

재료와 천의 색에 따라서 혹은 작가가 운동화를 신었는지, 맨발이었는지에 따라서 또는 바닥에 타일이었는지 잔디 밭이었는지에 따라서도 결과물은 모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작품 위에서는 한 사이클의 작가의 극기 과정이 있었다는 것(체력의 한계까지 줄넘기를 뛸 수밖에 없는)을 떠올리면 그 고요한 산수화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아름다움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기산수화는 우리에게 생각의 시작을 던져준다. 왜 우리는 극기를 감수하는가? 그러한 극기가 이뤄내는 바는 무엇인가. 그 결과가 우리의 극기와 일맥상통하는가.

작가의 극기가 누군가에게는 평안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아파야 청춘이다'라는 말에 공감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지만 이 극기산수화 작업에서는 그 고통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읽히는 가치를 위해(몸매이건, 아름다움이건)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운동이 사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를 나 몰래 그리고 있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운동이 정말 싫다는 작가가 본인의 한계 안에서 극기를 추구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이 시도가 새로운 발견과 예술로 이어지기를 2017년 새해를 맞이해 빌어본다.




복도 잘 주워갔으니 꼭 행복 가득한 한 해 보내기를.





김예슬

YESEUL KIM


극기드로잉 시리즈:

극기산수화


The Extreme Drawing Series :

THE EXTREME LANDSCAPE


작가 웹사이트 및 연락처

www.yeseulkim.net

myriadwo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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