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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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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Jul 18. 2020

우물 밖으로 나온 AI 개구리

삶의 모든 것이 변화한 곳


#AI #엔지니어 #무목적성 #식구 #3호점


새벽 논스 코워킹.jpg


늦은 새벽 1호점 코워킹,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내는 반복적인 클릭소리와 타건소리를 들으며 그를 지켜본다. 그를 한동안 지켜본 결과는 이렇다. 하루 동안 내내 열심히 일하고서도 꼭두새벽까지 코워킹에 남아서 무언가를 하곤 한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지만, 한 번도 말을 걸어 본 적은 없다. 오늘, 드디어 입을 열어 질문을 했다.


“안녕, 지금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해? 일이 많아?”


“어.. 일이 많다고 말하기가 애매하네. 지금 하는 일은 본업은 아니고, 사이드 프로젝트야.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


“어떤 프로젝트인데?”


“AI 학습 시 학습 데이터 및 중간에 발생하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저장 및 관리해주는 matrix 스토리지이고 오픈소스로 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답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돈보다는 이 프로젝트가 사회에 가져다 줄 가치가 기대돼”


“잠도 안 자고 이렇게 개인 프로젝트에, 그것도 돈 벌려고 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가져다주고 싶어서라니.. 진짜 멋있다. 코딩은 언제부터 배운 거야? 오래됐어?”


“고등학교 때부터 했었나? 처음 시작할 때에는 지는 게 싫어서 코딩을 했는데, 운 좋게 나한테 코딩이 잘 맞았어.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니 깃헙 그리고 커뮤니티 활동이 잘 되어서 네이버 클로바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고. 예전부터 클로바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바로 오케이했지. 그런데 일을 해보니까, 좋은 회사든 덜 좋은 회사든, 결국 회사는 자유도가 제한된다는 걸 느꼈어. 회사의 가치관이나 사명을 따라가야하고 그런거 있잖아.”


"지는게 싫어서 시작한 코딩"


“그렇네, 아까 말한 것처럼,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회에 뭔가 새로운 가치를 가져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회사만으로는 어딘가 갈증이 있었겠다.”


“응.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들어있는 기술을 만드는 거야. 예를 들어 이더리움같은 기술 말이야.  이더리움은 하나의 기술이 기반이 돼서, 사회, 그리고 문화를 되게 많이 바꿨어. 그런데 그 기술에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들어있단 말이야. 옛날에는 모든 돈이 중앙화 된 주체에 의해서 관리되었는데, 이더리움 기술에는 이것을 탈중앙화 시키겠다는 큰 이념이 들어있지.


나에게는 아직 졸업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는데,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사회나 문화를 바꾸고 싶은 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지.”


“멋있다… 태환이는 논스에 온 지 얼마나 됐어?”


“나는 논스가 2호점까지 밖에 없을 적에 들어와서 살았었어. 처음에는 1호점에 살았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외로웠던 것 같아. 항상 밥도 혼자 먹었고,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블록체인에 관련된 얘기만 하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무슨 얘기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잘 끼지 못했던 것 같아. 1호점 오픈 키친에서는 라면 한 번만 끓여 먹어봤고 그 외에는 한 번도 거기서 식사한 적이 없었어.”


“논스 사람들 몇몇은 그 시절을 구 논스라고 부르던데, 그때는 소셜장벽이 은근히 높았나보다?”


“응. 그때 있었던 룸메랑도 별로 안 친했어. 2달 동안 같이 방을 썼는데, 얼마나 안 친했냐면 룸메의 이름도 몰랐어.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방에 가습기 물이 샌거야. 그래서 아래 전깃줄이랑 카펫이랑 다 젖어서 룸메한테 알리려고 했는데 룸메 카톡도 없고 이름도 모르고.. 그래서 영세님한테 갠톡해서, 그 분 이름 이랑 연락처를 받았지. 나는 구 논스에서는 사람에게 다가가는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 2019년 2월에 구 논스에서는 나가게 되었어.”


“지금의 논스와는 사뭇 달랐구나. 그럼 태환 생각에 요즘의 논스는 어때?”


“지금의 논스는 엄청 다르지. 끼워주는, 그러니까 수용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야. 내가 느끼기엔 더 인간적인 분위기인 것 같아. 구 논스 때는 1호점 라운지에 테이블도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완전 텅 비어 있었어. 그때에도 2호점 할머니 밥상이라는 소셜 이벤트가 매주 수요일마다 있었는데.. 솔직히 분위기 자체가 많이 어색해서, 한 두 번 가다가 잘 안 가게 되더라고.


다시 논스로 입주하게 되었을 때, 3호점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어. 처음에는 정민이 누나 밥 먹었어요? 식으로 존댓말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이제 다 친구가 됐지. 한국 어딜 가나 유교식 프레임, 군국주의 꼰대 프레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논스 와서 깨졌어."


"깨져버린 프레임"


"지금의 논스에서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하고 친구가 될 수 있더라고. 학교에서는 다 비슷비슷하게 취준생 밖에 만나볼 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좋은 회사를 간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로 레이블링 당하고  학점이 안 좋거나 취업을 잘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 들로 레이블링 당하고.. 거기다 또 학교 분위기상 꼰대 프레임이 좀 강했거든. 예를 들어 영원이 형? 같은 경우 10학번인데 10학번은 눈도 못 마주쳤어. 그런데 여기서는 다 말 그대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와 내가 좁은 세상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


코워킹에서 일하다 말고.jpg


"특히, 나는 창업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거의 없었어. 그리고 다들 코딩을 하고 있긴 하는데 왜 하는지 물어보면 잘 모르고, 코딩을 그냥 취업의 수단으로써만 보는 경향이 있어. 논스에 오고 나서 다양한 가치관들을 마주하게 되니까 내가 가진 편견이나 프레임을 깰 수 있었던 것 같아. 원래는 그냥, 여타 그렇듯이 난 금수저도 아니고 그래서 삶에 작은 부분들에서 불만이 이것저것 있었는데, 지금은 불만이 전혀 없어졌어. 무언가 불공평하더라도 그걸 잘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노력하게 됐어. 그러면서도 사는 게 재밌어."


논숙자들과 한강 나들이.jpg


"요즘은 퇴근 후에 항상 사람들하고 함께 놀면서 스트레스를 바로바로 해소할 수 있는 일상을 살고 있어. 3호점에서는 요리를 직접 해 먹는 문화가 있는데, “원가맨” 준태형이 먹고 싶은 음식 메뉴가 있으면 필요한 원재료를 쟁여서 직접 다 해봐. 감자탕, 꼬막무침, 동파육 등등.. 아 그리고 재택하는 사람들은 항상 비슷한 시간에 점심을 먹는데 그래서 누가 어디에 어느 시간대에 있을지 대강 추측이 가능해. 특히 쉬는 날이 꽃이야! 함께 사는 인수형이 차가 있는데, 맛집을 진짜 많이 알아. 한 번은 3호점 논숙자들 몇 명이서 인수 형 차를 타고 다 같이 맛집을 찾아 군산으로 한번 간 적이 있어. 밥을 자주 같이 먹다 보니, 확실히 ‘식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


"3호점, 퇴근 후 힐링 아지트"


이런 교류가 호점끼리도 더 많았으면 좋겠어. 나 코워킹 쓰기 전에는 1호점 사람들을 몰랐거든. 코워킹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2달 정도 됐어. 이미 형성된 무리가 있지 않나 해서 또 금방 친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고 그냥 바로 말 걸고 같이 놀고 그래 줘서 너무 고마웠어. 저번에 정훈, 이새, 혜랑 같이 양재 시민의 숲을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았어.”


“오.. 태환이 말하는 거에서 사랑이 아주 뚝뚝 묻어나오는데?”


“ㅋㅋㅋ 그런가. 나는 20살때부터 서울에 계속 살았는데, 서울에 친한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어. 그런데 논스에서는 굉장히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어. 이제는 가족한테보다 많은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네.”


“가족보다 깊다, … 그럼 프라이버시 문제로 힘든 적은 없었어?”


“아, 응. 사생활이 없어서 불편한 적은 거의 없었어. 오히려 사생활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본딩이 더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사생활을 줄여서 정말 값을 매길 수 없는 본딩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해.”


“그렇구나.”


"응. 특히 공간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삶을 그대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사람 만나는 데에 있어서 목적성이 없는 공간.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옷 입고 티비 보고 두부김치에 맥주 한 캔 까면  비로소 마음을 열고 본딩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소위 말하는 네트워킹 행사나 플랫폼은 막 꾸미고 가야하고, 몇몇 사람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갈 때도 많아서 좀 불편해. 그리고 공간은 3호점 처럼 15명?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고 15명 중에서 10명 정도는 그대로 남고 5명 정도가 순환적으로 바뀌는 구도가 알맞은 것 같아."


"목적이 없는, 삶 그 자체를 공유하는 곳"


“그래도 사람끼리 부대끼다 보면 싸울 때도 있고, 그러면 불편하지 않아?”


“음.. 일단 잘 싸우지는 않는 것 같아. 딱 한 번 논숙인 한명이랑 2주 정도 말을 안 하고 데면데면 지낸 적이 있는데, 계속 얼굴 보니까 그냥 풀리더라. 그리고 서로 배려하고, 각자 배려하는 자세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서 딱히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아직까지 크게 논스 커뮤니티에 대해 불만스러운 점도 없어.


한 가지 조금 우려하는 사항이 있다면, 지금 논스 커뮤니티의 다이내믹에서 일방적으로 취하기만 하려는 사람이 논스 커뮤니티 내에 생기면 어떡하지.. 라는 건데 사실 이건 신규 입주자 큐레이션의 문제인 것 같아서 논파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혹여나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기존 주민들이 잘 가이드해 줄 수 있는 부분이고."


“3호점이 특히 논스 문화가 잘 배어있는데 그 열쇠는 무엇일까?”


"3호점 같은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지원해줘야 할 것 같아. 좀 똘끼 있으면서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잘 모을 수 있는 사람? 3호점으로 치면 인수형? 같은 사람? 그런 한 사람 선정해서 어느 정도의 요리비나 다과비를 지원해주고 분위기를 메이킹해 줄 수 있게 화력지원을 해주는 거지. 그러면 문화 정착이 쉬워질 것 같애.


"사랑 넘치는 사람에게 지원듬뿍"


"문화 정착의 문제를 공간과 연관시키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학교 기숙사 때 공간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서로 마주치면 어색하고 빨리 방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많았거든. 공간도 물론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문화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 거기에 말도 편하게 하는거, 군대식 프레임을 완전 깰 수 있게끔 서로 말 편하게 하는 문화가 있으면 더더욱 본딩이 잘 이루어질 것 같애."


“친구라기 보단 ‘식구’라고 느껴?”


“그런가 ㅋㅋ 3호점 논숙자들끼리 찍은 사진이 지금 1,500장 정도 있거든? 그중에서 잘 나온 것들을 골라서 이번에 사진을 인화했어. 그냥 뽑아두고 싶어서. 인화하는데, 돈이 하나도 안 아깝고 뽑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더라고. 이런 게 또 3호점의 특이한 문화 중 하나인 것 같아. 기브 앤 테이크라기보다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해주고 또 돌려주게 되는 그런 문화가 있어. 정민이 누나도 누나가 요리할 때면 무조건 다른 사람도 같이 먹자고 해주고.”


3호점 지하쿠킹 타임.jpg


“와우, 사진 1500장..!”


태환이는 다시 핸드폰 화면을 켜 3호점 식구들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동안의 3호점 추억들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을 들추며 열심히 브리핑을 한다. 이 때는 누구 생일파티였고, 이 때는 다 함께 어딜 갔었고, 이 때는 함께 앞뜰 잡초제거를 했고 등등 설명해주는 그의 신난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선명한 애정이었다.


“학교에 복학해서 기숙사에 살게 되면 솔직히 논스 사는 것보다 훨씬 돈은 절약되는데, 그런 거 상관없어. 논스에서 사는 게 그 백 몇만 원 아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 같아.”


“와, 태환이 완전 논스 홍보대사를 해도 되겠네. 음.. 요즘 개인적인 고민이나 뭐 그런 건 없어?”


"논스 오면서 오히려 더 많아졌어. 옛날에는 공대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취업 등과 같은 정해져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삶에 있어서, 방향성에 있어서 고민이 생겼어. 나쁜 것 같지 않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 리스크에 대한 쿠션효과를 논스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애.”


“그럼 태환이는 논스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게 뭐야?”


“논스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거?"


"응"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랑”


.

.


태환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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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김다형

편집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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