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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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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스 Jun 21. 2020

베니스의 여인이 논스에서 겪은 일

도착지이자 출발점, 성장과 충만의 마을.

저녁 7시경 논스 1호점. 오늘도 어김없이 1층에서 올라오는 향긋한 음식냄새. 치고 있던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키보드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한 때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온기와 향기가 있는 곳으로 몸이 움직여본다.


계단을 내려와 1층 로비에 다다르면 탁구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스트레스 풀기에 만점인 탁구인데 지금은 뒷전이다. 뭔가 모를 이 이국적 향기와 온기만을 내 가슴과 배 속에 담고 싶다.


.

.


"이모~!"


"Chef~!"


부엌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들려오는 애칭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훤칠한 여인. 푸른 이국적 눈에 다소 동양적인 까만머리. 하얀피부와 오똑한 코. 존재감 하나만으로 부엌으로 장악하고 있는 그녀의 성은 '박' 이름은 '단희'.


"자.. 자네 부모님이 밀양 출신이던가?"


"Nope.."


그렇다. 밀양 박씨, 고령 박씨가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역삼동에 터를 잡은 '역삼 박씨'의 시조 Daniela, '박단희'가 되겠다.


"자네,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겐가?"


"Cooking?"


쿠킹이라.. 보아하니 칼질을 해대는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저기 한편엔 파프리카와 단호박, 그리고 시금치 비스무리 한 것이 채 썰려 있고, 다른 한편엔 스파게티 국수가 냄비 안에 끓고 있다.


"오늘은 쿡수?"


"Yupp.. Venice Style"


"오.. 이태리 국수"


다소곳이 앉아본다. 옆을 보니 비슷한 처지의 굶주린 소울들 주루룩 앉아 눈망울을 껌뻑이고 있다. 다들 맹하다. 오로지 이 이태리 내음에만 취하고 싶은듯 하다.



처음보는 이태리 국수.jpg


"Here you go"


헛!


접시가 특이하다.


화사로운 이태리 국수. 이 영롱한 국수의 이름은 무엇인가?


"I don't know. Just eat"


"넵.."


오오오.. 혀에 닿자마자 얼굴 전체에 퍼지는 단호박 향과 치즈냄새. 이빨에 끼일듯 말듯 쫄깃쫄깃한 국수빨. 거기에 고소함을 더하는 베이컨과 정체모를 구운 야채들. 그리고 시큼하고 구수한 버섯틱한 향기. 요리왕비룡의 과한 BGM이 귓가에 들려오는 순간!


"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버섯향기는?"


"Truffle"


트러플! 이것이 바로 트러플 기름! 기름 중에 으뜸은 올리브유라 들었거늘 나의 견문이 좁아도 참으로 좁다

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는 순간.


"Just eat"


"Sorry"


그렇게 혀는 가만히 있고 입만 오물거려본다. 먹을 때는 입을 닫고 맛있게 음미하는 것이 쉐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의. 옆을 보니 다들 무아지경이다. 이태리 장인이 만든 국수의 힘 앞에선 이상향이 따로없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을 홱 지나가는 물체.


무언가 그릇을 들고 쏜살같이 냉장고로 달려간다.


창백해지는 단희의 얼굴.


"Noooooo!"


그리고 냉장고 룸에서 쭈뼛쭈뼛 걸어 나오는 중생들.


그리고 그들 손에 들려있는 김치와 장아찌 통.


절대로 느끼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쉐프 눈치를 잠시 본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지은 뒤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이때를 틈타 아주 조심스레 김치 한 조각 국수에 살며시 올려본다.


"I'll KKKEEL YOU"


"I'm sorry.. but we have no choice"


아연실색하는 이태리 장인의 얼굴.


그녀의 얼굴 뒤로하고 김치에 안긴 이태리 국수를 입에 넣는다. 옆을 보니 타바스코 소스를 뿌리는 자도 있고, 초장에 찍어 먹는 자도 있다. 이것이 진정한 퓨전 푸드, 다양성의 극치.


"Daniela.. but why?.."


"Why what?


"What brings you to this kitchen?"


"Cuz I love cooking?.."


"Oh.."


"..."


"Then, what brought you to Nonce in the first place? What drove you?"


밥 먹다 던진 뜬금없는 질문.


"Hm.."


.

.


듣자 하니 단희는 고향 베니스에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았다한다.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하며 대부분 플레이스테이션 파이널 판타지로 나날을 보냈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람이 싫었다한다. 파이널 판타지의 세계만이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Then I found Nonce"


"From Italy?"


"Hm.. during my business trip here"


"Oh.."


작년 De-fi 이벤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논스. 그렇게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려 이탈리아와 1도 관련이없는 논스 제네시스에서 모국으로부터의 탈출구를 모색했다.


"I've lived a super traditional Italian life in Venice"


"Oh.."


"almost forced to follow the path laid out by someone else"


"I'm sorry"


"It's okay. I hated it so much that I locked myself up in my room playing games most of the time besides work"


"Oh.."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wanted something different.. not a life that's full of pressure and laid out by my family, but a life that I can chart on my own"


"Oh.."


다니엘라가 처음 논스 왔던 때가 기억난다. 이태리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와 어눌한 한국어 인사말에 다소 부끄러워했던 첫 만남. 당시만 해도 조금 방어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걸로 기억한다. 코워킹 테이블 밖에서는 거의 볼 일이 없었고 구석 공간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엌에서 국자를 들더니 라면과 햇반이 식문화였던 논스에 고급 이태리 가정식이라는 기적을 행사하였다. 이후 사람들도 동기부여를 받아 인스턴트 음식을 버리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논스의 음식문화와 부엌 분위기에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그 핵심에는 국수대첩의 영웅 박단희가 서 있다. 2017년 논스가 출범할 때만 해도 베니스 토박이 아낙네가 논스 부엌에서 이태리 가정식을 요리하고 있을 줄 누가 과연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가 논숙자들이 방금 마트에서 산 생재료를 가지고 부엌에서 소박하게 요리하고 있을 줄 알았겠는가? 


참 삶이란, 인연이란 모를 일이다.


단희를 보면 논스라는 곳은 단순한 공유주거, 공유노동 기능을 넘어서서 개인들에게 어떤 특별한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느낀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한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동시에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짠 시스템이나 스케쥴이 부재한 곳. 입주자들끼리의 커넥션도 개인의 자유와 역량에 맞겨져 있으니 하루하루와 매 순간이 새롭다. 이렇게 요동치는듯한 역동적인 환경은 특히 어떤 일련의 짜여진 루트를 걸어온 사람들에겐 적응 단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크거나 작은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First I thought they were throwing the party for themselves.. you know.. cuz they didn't seem to really care about me"


논숙자들이 자신을 위해 파티를 해준다고 했을 때 한 말이다. 무슨 계기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단희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진심"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본국에서는 모임이나 파티를 개인적으로 더더욱 기피했던 그녀. 그냥 다 가식덩어리, 알맹이가 없는 겉치레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의 정은 껍데기 따위는 단숨에 통과하여 가슴 깊은 곳까지 만져주는걸. 그렇게 정의 맛을 보더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지금은 더욱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고 최근에는 논스와 논숙자들에 대해 미디엄 포스팅을 작성했다.


"For the first time I realized that all that I was running away from, contact and real connections with people, were actually the thing I most fervently des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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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ing yourself be loved is itself a way of loving”


동해에서의 이태리 감성.jpg


무엇이 이런 개인적 변화와 성장으로 인도하는가?

.

.


"비빔밥과 같은 다양성"


논스는 다양하다. 정말 다양하다. 직업군도 다양하고 삶의 패턴도 다양하다. 삶에 대한 철학, 교리, 취미도 다양하고 식습관도 다양하다. 하지만 마냥 우리가 알고 있는 샐러드 같은 즉, 다양한 재료들이 같은 공간에 마냥 보기좋게 배치만 되어 있는 그런 이국적 다양성보다는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재료 각각 본연의 맛의 합보다 훨씬 더 맛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음식을 탄생시키는 다양성에 가깝다. 1+1+1+1=4 가 아닌 1+1+1+1=10 아니 100의 효과를 내는 그런 다양성.


흔히 비빔밥의 비결은 고추장에 있다고 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이 고추장에 섞여 특이한 맛을 내는데 논스에서는 논스 특유의 문화와 분위기가 고추장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이 논스맛 고추장으로 서로 동화되어 다양성 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나 프레임들을 벗어던진다.


"Nonce is that roadside shelter where you can take a breath and rediscover yourself" 
(논스는 숨을 고르고 자신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는 길가의 쉼터와 같다)
"Nonce is a place where growing up is synonymous with enrichment" 
(논스는 성장과 함께 충만해지는 곳이다)
"Nonce is having people waiting and rejoicing for your return"
(논스는 당신을 항상 기다리고 있고 당신이 돌아옴에 기뻐할 것이다)
"Nonce is not just a point of arrival, but also a home"
(논스는 목적지인 동시에 고향과 같은 곳이다)

 -- Daniela 미디움 포스팅에서..



한국을 온 몸으로 만끽하는 그녀.jpg


Italy in Nonce.jpg


이렇듯 논스는 단순한 공유주거라는 키워드를 초월하여 #spritual #lifechanging 의 해시태그가 붙는 곳이다. 종교적 프레임이 없는 동시에 굉장히 인간적이고 영적인 곳. 대한민국 유일 다양성으로 Unity(통합)에 이르고자 하는 커뮤니티. 운영진 조차, 논숙자들 조차 이런 마을이 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곳. 무엇이 이 커뮤니티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우리는 인연의 힘을 믿고 나룻배를 타 둥실둥실 흘러가본다. 그리고 그 흐름에서 맺어진 단희와의 인연은 삶의 다음 챕터를 위해 하늘길로 향하게 되었다.



끝이자 또 다른 시작.


"Dani"


"Hm?"


"I won't miss you"


"I know"


"No, you don't"


"Then why won't you miss me?"


"Cuz you'll always be in our heart"


"I knew it"


.

.


부디 타국에서도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라며..


-- In memory of Daniela, the Venetian NonSookJa



작성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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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전(Challenge): 뭉치면서 함께 도전하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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