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tranger Apr 22. 2021

음치의 소원

환상의 듀엣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음치다. 학창 시절 합창할 때 소프라노였는데, 그 정도면 꽤나 높은음이 올라가는, 나름 노래 좀 잘하는 게 아니었나 싶지만 어쨌든 지금은 음치다.


피아노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잠깐 중학교 때 첼로, 몇 년 전엔 플루트까지 배워보고, 중학교 땐 지휘도 했었는데, 음감이 부족한 건 아닐 테고... 이전에는 몰랐는데, 목소리가 노래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을 2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음악 듣고 따라 부르고 둠칫 둠칫 리듬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는 매우, 극도로 꺼려하게 되었다. 당연히 노래방도 달갑지가 않다.


반면, 남편은 기타, 코드, 화음부터 보컬까지 못하는 게 없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 목소리. 노래할 때 감미로운 목소리는 정말이지 팬심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감미로운 목소리뿐만 아니라, 원래 심취하시는 분야는 롹(rock)이라 헤비메탈까지도 소화가 가능하시다.


무튼 재능 부자인 남편에 비해, 난 그러한 음악적 재능(및 기타 재능)은 별로 없는 편이다.


평소에 화음을 잘 넣는 사람을 동경했었다. 단조로운 멜로디에 화음이 더해지면, 누군가 마술을 부린 듯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나도 화음을 넣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 남편이 노래부를 때 살짝 화음이라고 생각되는 걸 넣어보지만, 결과는 매번 불협화음이었다.


내가 ‘화음’을 시도하면, 남편과 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 플러스 매우 신랄한 (코) 웃음을 보내곤 한다.


아, 화음 잘하고 싶은데...


반대로 내가 노래할 때 남편이 화음을 얹으면 내 목소리가 조금 에러일지라도 굉장히 듣기가 좋다. 음색이 풍성해진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냥 훨씬 듣기가 좋아진다.


그래서 남편과 멋지게 듀엣을 하고 싶다는 발칙한 소망이 생겼다. 음치인 내가 듀엣을?


내가 말도 안 되는 화음을 시도하고 듀엣을 하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본인이 최근 열심히 기타로 연습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의 ‘Shallow’를 권했고, 나는 이 곡을 반복해서 듣고 출퇴근길에 연습도 해보았다.


그리고 짜잔- 몇 가족이 같이 한 1박 2일 여행에서 밤이 깊어가는 때, 남편의 기타에 맞추어 우리 커플이 듀엣을 했는데,


우아- 된다!


내가 듣기에도 나름 괜찮았는데, 청중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연습하는 동안도 화음이 되는 순간도 상당히 신난다.


우리의 다음 듀엣곡은 최백호, 주현미 두 분이 부르신 ‘풍경’이라는 곡이었다. 워낙 곡 자체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아련한 느낌도 있는데 완전 옛날 느낌에 세련미가 더해져 내가 듣기에도 정말 좋은 거다. 이 곡은 마지막에 "랄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랄라라 라라라라"로 진행되는 부분 화음이 정말 좋은데, 여기서는 남자 음을 따라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풍경'도 여러 번 연습하고 남편과 맞추어봤는데, 나름 괜찮다. 좀 더 오버하자면, 황홀하다.


음치인 내가 남편과 듀엣을 하다니!  감개무량하다.


이제 두 곡 완성했다.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음역대가 극히 제한적이므로 선곡이 매우 어렵겠지만, 다음 듀엣곡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우히히.

매거진의 이전글 말괄량이 길들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