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길들여지지 않으리
'자유로운 영혼',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독특한'...
나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과거의 나는, 쉽게 "yes"하는 적이 없고, 나만의 기준과 원칙이 있으며, 내 생각과 의견,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지금도 이러하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여동생도 20대 초반의 나를 '얼음'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따듯한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독립적이고 남자도 필요 없는 독신에다 나만 중요하지 다른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고 살면서도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나를 두둔하자면, 나는 '눈뜨고도 코 베어가는' 서울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부터 '혼자' 살면서 코베이지 않기 위해서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20대 초반을 보내야 했으므로, 마음의 벽을 낮추고 주변과 소통하며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면서도 고독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이 되어갔고, 어쩌면 그런 방식이 나와 맞았던 것 같다.
혼자였지만 늘 긴장하며 사느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허락할 기회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집안에다 독립을 선언하고 대학원을 들어가자마자 1학기 여름방학부터 현 남편인 남자 친구이자 인생 첫 남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독신 선언을 왜 했담?)
내가 전 남자 친구 현 남편과 사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그 물흐르듯한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10여 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대학교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친구가 하는 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냐?'
'너 예전의 너 맞아?'
그리고 내가 식전 기도를 했을 때, 그 친구는 심지어 기가 막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남편이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도 한 마냥, 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던, 그래서 나만 생각하고 내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내가, 주변을 챙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게 되고, 공공장소에서 시민으로서의 고양된 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식당에 가면 손을 엄청 많이 들어댔다. 손들고, 누군가 오면, 티슈 달라, 포크 달라, 음식을 더 익혀달라, 음식이 너무 많이 익었다,... 등등 대부분 합리적인 요청이긴 하고 무리한 요구가 아닌 거 같지만 이상하게 예전에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무언가 요청하는 것에 스스럼이 없었다. 내가 돈을 냈으니 서비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되도록이면 손을 안 들려고 하고, 현저히 손들어 누군가가 와주길 기다리는 횟수가 줄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그냥 적당히 내가 찾거나 넘어가거나, 맛이 없다면 그냥 다음에는 방문하지 않으면 뿐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서비스해주시는 분에게 어떤 요청을 하게 되면 굉장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바쁜데 방해하는 건 아닌지... 하는.
또, 고기 냄새가 싫다며 고깃집엔 들어가지도 않았던 나 때문에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내 친구들은 나와는 고기 먹으러 갈 엄두도 못 냈었는데, 결혼하고는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기꺼이 고깃집에 가고, 심지어 남편이 무얼 좋아하고, 어떤 게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어떠한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살았다면 지금은 "손해 좀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남하나 더 가져도, 설사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고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서 남에게 부탁이라 했다면, 지금은 아끼는 사람이라면 조금 귀찮게 안부도 묻고, 아무 일 없어도 전화하고, 부탁할 일이 있으면 부탁도 하려고 하면서 관계를 위한 핑곗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20대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고, 어떠한 고민거리나 속마음도 나누지 않았으며, 일상을 공유하거나 연애상담도 할 것 없이, 멘토나 인생선배의 조언이나 격려도 없이, 나는 그렇게 철저히 혼자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일상의 희로애락을 모두 누군가와 공유하고, 그 사람의 보호를 받기도 하고 내가 보살펴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를 가지면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이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 주니 내가 그 사람에게 더욱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해온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데... 달리 생각해보니, 사랑받고 따듯한 시선을 받아 얼어붙은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본연의 내 모습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고, 내가 배우지 못한 것들을 남편을 통해 알아가면서 조금씩 습득하고 익혀 형성된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내 친구가 나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눈알을 굴리는 걸로 봐서,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른 모습을 갖추긴 했나 보다. 미안-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카트리나가 페트로치오를 만나 길들여지듯, 나도 나도 남편을 만나 이렇게 길이 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페트로치오와는 달리, 나의 남편은 묵묵히 나를 지지하고 존중해주고 사랑을 주면서 나를 서서히 길들여왔고 현재 진행 중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나만의 버전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