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도 얇아지게 하는
나는 남편 덕후다.
그리고 남편은 나의 배우자로 애인으로 남친으로, 딸의 아빠로, 아들로, 사위로, 형부로, 삼촌으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소심하고 (자발적) 아싸인 나는 어떨 땐 좀 질투가 나니, 단점을 한번 굳이 끄집어 내 봐야겠다.
그래 사람이 단점이 없을 수는 없는 거다. 아무리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고 최고로 생각하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인간적으로, 단점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날에는 단점이 아닌 매력포인트나 귀엽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지만, 한 달에 한번, 피해 갈 수 없는 PMS 기간에는 콩깍지가 얇아지는지, 단점 아닌 단점들이 좀 보인다.
첫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파도 바로 약을 먹기보다는 조금 참아보고, 물건이 없으면 섣불리 사기보다는 없는 대로 지내는 등 좀 인내하고 참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럽거나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좀 참고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반면,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은 필요한 물건, 먹고 싶은 음식 등이 있으면 바로바로 그 물건을 사거나, 먹거나 해서 그 필요를 충족해야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산책 나왔다가 목마른 경우, 나는 좀 참다가 집에 가서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편은 바로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생수를 산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면, 나는 주말 즈음, 주말이 아니라도 언제쯤 외식하자고 좀 미리 정해놓고 외식을 하기를 원하는 편이라면, 남편은 그날 바로 그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도 남편의 이런 성향을 알아서, 요즈음은 나도 남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쿠팡을 통해 시키는 편이지만, 좀 고민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그 불편함을 즉시 해소하거나, 불편함을 감내하는 기간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갈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므로, 대부분의 날에는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하고 넘어가지만, PMS때에는 다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꼭 저래야 하나 (ㅡ.ㅡ)?"
둘째, 스트레스에 약하다.
나는 좀 온실 속에 자란 거 같으면서도 강하게 큰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성향 차이인지... 나에게는 일상에서 업무에서, 학생 때는 학업 중에 스트레스가 있어도, 그건 부차적인 것이라 스트레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차질 없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있다고 또는 스트레스가 많다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하는 일이 잘 안되거나,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경우, 스트레스를 쉬이 받고, 그 일에서 손을 잠시 놓고 바로 드러눕는 편이다. 물론 이는, 그런 스트레스로 인하여 곧바로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 (몸살 비슷한) 때문이기도 하다. 전기 퓨즈가 나가는 것처럼, 그냥 작동을 멈추어 버린다.
며칠 전에도, 중요한 업무로 공공기관에 가야 해서 둘이 연차를 내야 하나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 man cave(작업실 겸 게임방 겸 음악실 겸인 남편의 방)를 정비하다가, 그 많은 선과 그 많은 전자기기들을 정리하느라 지치고, 본인이 원하는 데로 되지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혼자 신경질을 내는가 싶더니, 이내 공공기관 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그러나 '다음'은 없는... 그런 일이었는데.
워낙 스트레스받으면 아프다는 걸 알기에, 평소에는 "아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쯧쯧, 저래서야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쑤욱 들고일어난다.
셋째, 40년 넘도록 자기 몸 사용법을 모른다.
나는 40 가까이 되도록 운동을 좋아해서 꾸준히 해왔으며 면역력이 그냥 강하게 태어났는지 병치레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남편은 운동을 꾸준히 하긴 하는데, 그건 안 아프기 위해서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운동을 하면 하는 데로 목, 어깨, 발목, 등... 등등 다양한 부위를 다치고, 담이 들기도 하며, 안 하면 또 안 하는 데로 스트레스를 받고 아프다.
많이 먹으면 많이 먹었다고 아프고,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속이 안 좋은 거 같다고 하다가 바로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다. 또, 맨날 어디 부위가 아픈 것 같다고...
이러한 면도, 면역력이 좀 약한 거 같아서 그러려니... 정말로 자주 아픈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아픈 사람이 더 힘들겠지...라는 생각이 주로 들며, 아픈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해줄 것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모널한 기간에는, "오 마이 갓!! 자기 몸 설명서가 필요한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목구멍 가지 올라온다.
넷째, 누구를 가르치는 건 꽝이다.
상식이 풍부하고, 생각이 바르고 깊은 면이 남편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가르치는 은사는 없는 듯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무엇을 모르거나 이해를 못하면, 왜 이해를 못하는지 본인은 이해가 잘 안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친절히 설명하는 머리는 없는 모양이다.
딸이랑 게임을 하다가, 딸이 아빠한테 뭘 물어보면, 정말 나라도 다시는 안 물어본다는 다짐을 하리만큼 불친절하게 알려주고, 이내 남편한테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 아빠한테 물어보지 마. 어차피 알려줘도 그대로 안 할 거면서." 그리고 딸은 서러워서 또 울거나, 삐친다. 게임을 반세기 가까이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건 알지만, 딸은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질문이 많은데, 좀 친절하게 대해주면 안 되냐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나는 회사는 달라도 매우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가끔은 하는 일 중 잘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슬쩍 물어보곤 하는데, 한 번은 "다시는 물어보지 말아야지. 어찌 됐든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왜 물어봤담?" 하는 생각까지 든 적이 있을 정도다.
많이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다르다더니... 남편에게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살이 심하다.
세 번째와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엄살이 좀 있다. 아니 심한 것 같다. 특히 아플 때는 모두가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앓으신다. 나의 경우에는, 아픈 적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PMS때 기분이 다운되거나 몸이 안 좋더라도 그냥 조용히 혼자 안 좋은 편이고, 에너지가 낮은 특별한 기간이니 차분히 시간을 보내면서 그 기간을 지낸다. 반면, 남편은 잦게 아픈 데다가 아픈 티도 엄청 낸다. 조금만 통증이 있어도 어디가 아프다, 운동을 해서 그런가, 안 해서 그런가,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가 등등, 그리고 음주한 뒷 날에는 체했나, 아니 해장을 해야 하겠다 (보통 체하면 안 먹지 않나?), 먹고 나니 내려갔다 (녜????) 등등 몸의 상태 변화를 매우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다.
한 번은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옆에서 괜찮은지, 뭐 필요한 게 없는지 귀찮게 하기보다는, 고요한 시간을 보내게 해야겠다 싶어서 딸과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고 온 적이 있었다. 한참 뒤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정색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사람이 아픈데 신경도 안 쓰냐"라고. 나는 나름 배려하느라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 것이었는데, 남편은 아픈데 내버려 둔 것 같아서 서운했나 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딱히 단점이 아니라, 남편이 나와 다른 점들인 것 같다.
내가 좀 업타이트되어있고,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면, 남편은 마음이 여유롭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타고난 면역력이 약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 부분을 보충하려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매우 존경스럽다.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견되는, 자기 몸 사용법 모르는 모습과 엄살은 대부분의 날에는 사랑스럽다.
남편은 나의 어떠한 단점도 따듯하게 감싸주고 나를 전체로 사랑해주는데, 나와 좀 다른 점이 있은들,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한 달에 한번 감정과 생각까지도 지배하는 호르몬의 힘은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아니다. 호르몬이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