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라 만 번 구한 이야기
나는 남편 덕후다.
다른 사람들은 남편이 정말 좋지 않은 건지, 아니면 실제로는 사랑하지만 사람들이 으레 남편 흉을 보니 따라보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남편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 남편에 대한 이런저런 그다지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거기다 대고 또박또박 남편이 정말 좋다며 이야기하니, 언니들이고 친구들이고 다 얼마나 재수가 없을까.
그렇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표현한다.
남편을 만난 날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이 좋아진다고.
대체 남편이 어떠하길래, 그게 가능하냐고 궁금할 수도 있겠다.
나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음이 넓고 성품이 온화하며, 귀여우면서도 듬직하고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항상 믿음을 준다. 게다가 키도 크고 (내가 보기엔) 잘생겼으며, 심지어 세련되고 센스도 만점이다.
예체능에 두루두루 능하고 상식도 풍부하며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다.
한없이 한량이다가도 목표하는 바가 있으면 부단히 노력하고, 반드시 이루어내곤 한다. 그러면서도 어디에든 집착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에 분쟁을 싫어하므로 내가 걱정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하는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고 믿고 따르고 싶어 지게 된다.
이런 남편의 말 한마디에 걱정이 사라지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가장 좋은 건, 남편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남편은 사랑스럽다는 듯 따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고,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준다.
아이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나는 남편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라며 나를 아이보다 우선순위에 둔다.(아이가 알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매일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다니, 감개무량해서 감사기도가 절로 나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어째서 4차원에 여러모로 부족한 점 투성이인 나를 이렇게나 성숙하고 믿음직한 사람과 만나게 해 주셨지?
이즈음 되면 분명하게 감이 온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 한 번이 아니라 한 만 번 즈음 구한 것 같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와 남편은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성별의 차이도 있지만, 성격이나 취향 자체가 매우 다르다. 특히 나는 똥손에다 잘하는 게 없는 반면, 남편은 뭐든 기본적으로 뛰어나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나는 성실하지만 머리는 잘 안 따라주는 타입인데 남편은 한량이지만 스마트한 스타일이다.
나는 (여러모로 세련됨을 추구하지만) 딱히 센스가 있다고 할 수 없는 반면, 남편은 센스 있고 취향도 세련되었다.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빨리 해결해야 하는 성격이라 서두르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편이라면, 남편은 무엇이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고 슬기롭게 대처한다.
나는 무엇이든 내 멋대로 하는데, 남편은 음악이든 운동이든 제대로 배워하고, 독학도, 연습도 제대로 한다.
결정타로 나는 산책이든, 쇼핑이든, 카페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성격이고 남편은 집에서도 매우 편안한 집돌이다.
혹자는 이렇게나 다른데 흔한 성격차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은가를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설명은,
We complete each other.
서로 다르니까 각자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을 상대가 채워주는 거다. 물론 나에게 구멍이 더 많아서 남편이 나를 채워주는 면이 더 많기는 하다. (이런 게 바로 남는 장사지요.)
남편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보다 따듯하게 감싸주고, 자신의 재능, 지혜, 용기,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준다.
서로에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아 싸울 일도 없고, 대화도 잘 통하니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차피 잔머리를 굴리는 재능도 없다), 내가 살아가는데 남편이라는 존재가 나의 자존감의 근거가 된다.
그리하여, 내가 남편에 대하여하는 존경과 사랑의 표현은 진심으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고 해명하고 싶다.
내가 남편에게 주는 믿음과 사랑과 존경을 나도 남편으로부터 매일매일 받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남편 덕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