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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ranger May 12. 2021

나는 신나게 살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 a woman's life is endless work and suffering. There is suffering and then more suffering."

-Pachinko by Min Jin Lee (파친코, 이민진 작가)


내가 2017년에 신간으로 나온 '파친코'라는 소설을 왜 2021년이 되어서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달 500페이지가량의 대서사시를 단숨에 읽어가면서,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대하여 가슴이 먹먹해지고 내가 겪은 일처럼 애통해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경험을 하였다.


특히, 시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이제 열여섯이 되는 선자에게 여자의 일생은 'suffering'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은 정말 슬펐다. 꽃다운 나이, 청춘으로 들어서는 아이에게, 너는 여자로 태어났으니, 다른 건 기대하지 말고 고생을, 고통을 기대하라고 하라고 한다. 자신이 살아보니, 다른 삶은 없고, 그냥 고생길만 있을 것이니 그러한 여자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살라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런 충고밖에 할 수 없지만 실제 그렇더라는 비관적 깨달음이자 어린 여성에 대한 가여움, 그리고 여자로서의 동지의식이 동시에 느껴져서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아팠다.  


"For a woman, the man you marry will determine the quality of your life completely. A good man is a decent life, and a bad man is a cursed life-but no matter what, always expect suffering, and just keep working hard."

-Pachinko by Min Jin Lee (파친코, 이민진 작가)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덧붙인다.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여자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지만 좋은 남자를 만나 괜찮은 삶을 살든, 별로인 남자를 만나 기구한 삶을 살든 상관없이 여자의 일생은 고생길이라고 말이다. 여자의 인생을 남자가 결정하는 것도 억울한데, 어떤 남자를 만나든 여자는 고생이라는 건 너무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나도 이런 생각에 사무쳐서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덜 자유롭고, 더 고생하며, 더 고통받아야 하는지 말이다. 나는 앞서 버거운 삶을 살아낸 여성들보다 더 자유롭고, 덜 고생하며 덜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왜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고, 그래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슬픔과 분노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소설에서, 주변에서 보고 들은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서 더 애통했다. 어찌하여 그토록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성들이, 이 시대가 낳은 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결혼해서 고생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슬프고 억울했다.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 고통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에서 더욱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 여성들은, 그래도 자신의 남편을 안 만났으면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식이 삶의 이유도 목적도 아닌데(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된 거 같다) 자식이 없었더라도 그렇게 혼자만, 고생하며 살지 않아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힘들고 비통하며 고생하는 여성의 삶이, 나와  딸에게 까지 이어질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내가 겪고 있지도 않은 일을 너무  일처럼 생각하면서 슬픔과 우울의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TMI: 소설 '인생 (by 위화)' 읽으면서는, 읽는 내내 남자 주인공인 '푸구이' 감정이 이입되어, 눈이 빨갛게 되도록 울었었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같다. 아무래도 운명이 이끄는 대로 불행하고 슬픈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작고 무기력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감정이 이입되는  같지만, 여자라서 여성의 슬프고 힘든 삶에  이입이  되는  같다.


그렇게 절망과 비관 그리고 슬픔에 휩쓸려 몇 주간을 보낸 후에, 나는 한 번 사는 삶을 억울하고 한탄스럽고 비관적인 생각에 머물러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심했다.


나는 신나게 살아야지-!


여자의 일생을 위해, 엄마를 위해, 내 딸을 위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나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에게, 여자로 태어났으니 고통만이 함께할 것이라고 전하는 일은 절대, 네버 에버, 있어서는 안 되니까, 나는 신나게 살아야만 한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나처럼, 긍정적이고 밝고 좋은 에너지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지만) 신나고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마음을 돌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즐겁고 편해야, 가족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니까.


나사 하나 살짝 풀고,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약간은 뻔뻔하게,

아주 FunFun하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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