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한 사람이되고싶드아
나는 집안의 첫째로 말 수도 적고, 숫기도 없는 편이어서, 어딜 가든 눈에 안 띄고 조용조용하게 있기를 좋아한다. 전면에 나서는 일보다는 뒤에서 서포트하고 준비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기라도 하면 심장부터가 엄청 빠르게 뛰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상대방과 티키타카를 하면서 적절한 유머를 곁들일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정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억울해서 무언가 임팩트 있는 한마디를 재치 있게 하고 싶지만 생각이 나질 않아 가만히 있다가 한참 뒤에, 거의 대부분 자기 전에 '아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라는 뒷북을 치곤 한다. 아마 내 머리가 빨리 도는 편은 아니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나도, 회사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서 그런 건지, 나이가 들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지금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도 곧잘 하고, 친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가끔은 웃긴 사람이 되어있기도 한다. 다만, 재치 있고 유머 있어서 웃긴 것이 아닌, 어이없고 나이에 걸맞지 않으며 푼수 같아 웃기는 것. 그래도 좋다. 내가 웃기다니.
나는 재밌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제일 좋은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남편과 딸이 웃어주는 것이다. 나로 인해 남편이 입 크게 벌리고 진짜 웃기다는 듯 웃어줄 때, 딸이 너무나 재미나다는 듯 또는 너무나 어이없다는 듯 깔깔깔 웃어줄 때면 정말로 기분이 좋다.
그래서 특히 딸에게는 재미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이미지, 체면 따위는 다 내려놓고 (원래 들고 있지 않았기도 하지만) 딸을 웃기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는 코미디언을 했어야 해"
딸이 가끔 이렇게 말해주면 정말 행복하다. 내가 코미디언을 했으면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거 같단다. 코미디언은 웃기는 걸로 돈을 버니까,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예상은 딸이 보기에 내가 정말 많이 웃겨서 그런 것이 틀림없다.
딸이 웃기다고 해주면 날아갈 것 같다.
딸은 특히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부모가 그리 엄격하거나 대하기 어려운 타입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간관념, 규칙, 절약, 약속을 준수하는 데 철저해서 좀 너무 업 타이트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잠시나마 루즈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내가 망가지면서라도 딸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얼굴, 몸, 언어 등 활용할 수 있는 걸 모두 사용하여 개그를 시전 한다.
예를 들면, 딸이 어제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링’ 안무를 짤막하게 보여주길래, 나도 바로 양팔 딱 벌리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눈을 희번덕했더니, 배꼽 잡으면서 웃고 내가 계속하니 잘못했단다. 가르쳐 준 자기가 잘못했으니 제발 그만 하라고…
그리고 저녁에 우리만의 루틴이 있다. 자기 전에 기도하고 속상했던 일과 행복했던 기억을 말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무난하게 잘 지내는지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던지 그런 경험을 말하는 적은 거의 없는데, 가끔 속상한 경험을 말하는 경우에는 웃음으로 승화시키어 좋지 않은 경험을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Let’s laught it out-!
나랑 딸은 사진을 찍을 때에도 이쁘거나 노말(normal)함은 금지- 무조건 웃긴 표정이나 특이한 포즈를 취해야 하고, 길을 걸을 땐 누가누가 웃기게 또는 희한하게 걷나 내기를 하고, 집에서도 웃음 참기 게임으로 어떻게 하면 서로를 웃길지 고민한다.
그리고 최고는 역시 똥방귀와 코딱지 영역. 아이들은 똥방귀 코딱지 이야기라면 깔깔 넘어간다.
살아가기 쉽지만은 않은 우리 삶에서 웃음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아서, 내가 매사에 오버하고 망가져서라도 딸과 웃음을 공유하는 것이 정말이지 너무 행복하고, 나와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딸에게 켜켜이 쌓이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웃었던 기억으로 이겨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딸, 내가 너의 코미디언이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