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행복하다면, 나는 새까맣게 타도 좋아
딸은 놀이터에서 노는 것 말고는 흥미를 보인 운동이 별로 없는데, 다행히 매우 좋아하는 운동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수영이다. 어릴 때부터 수영장뿐 아니라, 지나가다가 분수같이 물이 흐르거나 물 장식이 되어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그 앞에 멈춰 서서 한없이 물을 바라보고 좋아할 정도로 물 자체를 좋아했다.
수영은 어릴 때 배워야 하는데, 내가 워킹맘이다 보니 수영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레슨 받는 시간 동안 기다리고, 씻기고 챙겨줄 시간이 없어서 미뤄오다가, 5시에 퇴근하여 5시 반이면 집에 올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게 되어 딸과 수영장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혼자 수영장 다니면서 스스로 옷 갈아 입고, 씻고, 머리 말리기까지 하는 또래 친구들도 많지만, 아직 혼자 다녀본 적이 없으며, 스스로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이 아직까지 무리인 딸이 혼자 다니게 하기에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딸이 2학년 즈음되었을 때, 아직은 체력이 강하지 못하고 마음도 여려, 여럿이 쉬지 않고 (앞사람이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때에만 쉴 수 있다) 돌아야 하는 단체 강의보다는 딸의 페이스와 수준에 맞출 수 있는 개인 레슨으로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딸이 레슨 받는 동안, 나도 옆 레인에서 자유수영을 하고 마치면 딸과 같이 물장구치고 놀이하고 놀다가 같이 씻고 나오는 패턴이었다. 주중에도 주말에도 수영장 가서 그렇게 놀고 오곤 했다. 코로나 전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이 심해지자 급기야 수영장도 못 가게 되었고 이후 1년이 넘도록 수영 레슨을 못 받고 있었기에 딸의 수영앓이가 계속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 없을 만한 평일, 실내 수영장과 야외 온수 인피니티 풀이 있는 호텔에서 2박 3일을 묵으면서 매일매일 수영하게 할 계획을 마련해서 실행했다. 딸이 행복해할 것은 예상했지만, 그것이 나의 전지훈련이 될 것은 알지 못했다. 아니 예상했어야 하는데, 5월이라 아직 추웠고 코로나라 마음을 놓았던 것이다.
2박 3일 오전 오후로 4번 입장하여 땡볕에서 하루 종일 밥 먹으러 갈 때 빼고는 수영장에서 놀았다. 남편은 잠시 왔다 가는 수준이었고, 나와 딸은 수영장 죽순이가 되었다. 추웠지만 딸에게는 문제가 안되었다. 첫 이틀은 구름이 있었기에 다행이었지, 3일 내내 해가 쨍했으면 화상 입었을 각이다.
인피니티 풀이란 무엇인가. 자고로 사진 찍으러 가는 곳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인피니티 풀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예쁜 수영복 입고 서로 포즈 디렉팅 해가면서 사진 찍는 언니들, 여자 친구 사진 찍어주고 칭찬 또는 핀잔받는 남자 친구, 아빠와 아이가 놀면 사진 찍어주는 엄마... 친구들 그룹, 커플 그룹, 가족그룹이라도 이렇게 아기자기... 예쁜 사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땠나? 우리는 물안경 끼고 첨벙첨벙 수영하고 (사진 찍는 데는 다 피해 주는 매너는 갖추면서, 가끔 사진도 찍어드리고), 잠수하고, 즉석에서 만들어낸 놀이들도 잔뜩 하면서 점점 그으러 져 갔다.
특히, 딸이 돌고래처럼 수영을 잘하길래, 돌고래 쇼를 하자고 했는데, 그때는 그 돌고래 쇼가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몰랐다. 돌고래 쇼는, 내가 "자 방금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돌고래의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쇼쇼쇼~"하고 돌고래를 소개하고, 두 팔 벌려 동그랗게 링을 만들면, 딸이 거기를 쏙- 통과하고, 다리를 쫙 벌리면 딸이 잠수해서 아래로 지나가고, 손가락으로 포물선을 그리면 딸은 물아래서 위로 올라갔다 떨어지면서 포물선을 그려 내려가고, 손가락을 휘리릭 돌리면, 딸은 한 바퀴 돌아서 떨어지는..... 그리고 끝나면 엄청난 박수...의 순서로 진행되도록 구성이 되었다.
딸은 이 돌고래 쇼가 재밌었는지, 정말 2박 3일 동안 한 10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체감상 500번이다.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하니 안 할 수도 없고...
마지막 날, 호텔 체크아웃 직전까지 놀다가 씻고 갈 시간이 되어 수영장에서 나가자고 하니,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아쉬워..." 하면서 눈물을 뚝뚝흘리고, 이내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룸으로 내려와서 같이 씻는데, 좀 조용해서 봤더니 흐느끼고 있다.
"(흑흑) 엄마가... 일기장에... 우리 돌고래 쇼 한 거 적어줘...(흐흐흑)"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지만, 딸은 심각한 상황에서 내가 웃을 수는 없었다.
"그래 엄마가 일기장에 우리 돌고래 쇼 한 거 다 적어놓을게." 그리고 실제로 적어놨다.
나도 인피니티풀에서 예쁜 사진도 남기고 싶고, 썬베드에 누워서 호사스러운 시간도 보내고 싶지만, 딸과 수영장 가면 항상 내 모습은 10년째 동일한 비키니에 까만 피부, 항상 물안경은 써야 하고, 너무 타서 머리까지 피부가 벗겨진 적은 있으니 모자는 꼭 쓰려고 하지만 놀다 보면 걸리적거려서 나중에는 벗어버리기 일쑤... 그리고 여유로운 몸짓은 없고 딸과 추격전을 벌이거나, 잠수 누가 오래 하나, 싱크로나이즈드 대회, 등등 바쁘고 웃긴 동작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좋다. 내 몸이 새까맣게 타도, 딸이 나와 노는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 어렵거나 힘든 일을 마주할 때 꺼내어 보고 미소 지은 후 힘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
그래서, 내 몸에는 1년 내내 수영복 자국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