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에서 빈둥빈둥
회사에서 대부분의 날은 퇴근시간에 미련 없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기 위하여 업무시간 동안에는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정말 어떤 날은 회사에서 화장실을 하루에 두세 번 밖에 가지 않을 정도로 (내가 물을 안 마시는 편이긴 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날도 있다.
째깍째깍 땡.
퇴근시간이 되면, 얄짤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퇴근시간 엘리베이터 러시아워 이전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고, 회사 앞 횡단보도를 제 때 건너야,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 할 일을 차례차례 생각해본다. 보통 먼저 저녁 준비, 저녁 먹은 것 정리, 아이랑 놀기, 숙제 봐주기, 아이 씻기기, 아이 재우기 등 순으로 진행된다. 이틀에 한번 빨래하기, 빨래 개기, 대충 청소하기, 화장실 청소도 포함되고, 쓰레기도 이틀에 한번 꼴로 해야 한다. 온라인 장보기 및 기타 필요한 물품 주문도 내 몫이다. 이건 정말 최소한의 할 것에 불과하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5-6시간을 집안일을 하고 가족을 케어하고 하려면,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몸은 좀 바쁘고 힘들어도 괜찮지만, 정신적으로 힘들면 몸도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살림과 육아 등 모든 집안일을 다 수용하려면 다시 멘탈을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참새와도 같이 나의 아지트, 카페에 들른다. 집에 가기 전 친숙하고 커피맛도 좋은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글을 읽거나 쓰기도 하고, 카페 사장님과 담소도 나누고, 맛난 디저트도 먹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도 생각이 나면서 서서히 와이프/엄마 스위치가 켜지게 된다.
퇴근 전 카페에 들러 잠깐의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 동안 회사에서 수고했다고 자신을 토닥이기도 하고, 이제 집으로 다시 출근해서 다른 일들을 할 나 자신을 격려하기도 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맡은 일 처리하고, 집에서는 잘하지도 못하는 살림 신경 쓰고 하느라 혼자 분주한 나와 내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지만, 행여나 수면 속 다리를 쉼 없이 움직이는 오리와 같은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알아주면 되는 걸. 나는 정말 수고하고 있고, 그런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잠깐이지만 이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이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집에서 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기꺼이 할 수 있게 된다.
워킹맘은 집에서의 역할과 회사에서의 역할 사이에서 하루에 두 번 이상 모드를 변경해야 한다. 모드 변경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너무 빨리 해버리면, 버그가 날 수 있으므로, 이렇게 한 박자 쉬면서 와이프/엄마 스위치를 켜면 조금은 적응이 빨라질 수 있다.
어느 워킹맘의 멘탈관리법.
퇴근길에 동네 아지트에 들러 반나절 동안 수고한 나를 다독이고, 나머지 반나절을 고생할 나를 응원하는 나만의 시간(me time)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