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poor things, 2024)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을 보고

by sunjoo


이번 영화 <가여운 것들> 은 최근 개봉했던 그 어떠한 영화들보다도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로는 역시 주인공 벨라 베스터가 파리에서의 여정 도중, 돈을 벌기 위해 호텔에서 몸을 팔게 되는 지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외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 성관계 묘사, 태아의 뇌를 성인 여성에게 이식시킨 소재 등) 다소 성적인 장면들이 많다보니 이것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관측되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감상이 대립적으로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줏대 없이 관람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고, 저런 생각도 들고,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저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어느 쪽으로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매춘에 대한 소재를 내놓고, “나는 내 몸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내게 필요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 뿐이야“ 라는 대사를 주인공이 읊게 둬도 되는 것인가? 이러한 대사를 그냥 막 이렇게 전달하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고 발칙한 발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면 영화 전체의 흐름이 매춘을 긍정하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해보면 막상 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벨라는 그 누구보다도 호기심이 넘치고, 그 호기심을 자유롭게 탐구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태아의 뇌를 이식받아 유아와도 같은 정신연령을 지니고 사고하지만, 성인의 몸을 지녔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여러 신체적 활동을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해나갈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죠.

그렇기 때문에 벨라는 마치 백짓장과도 같은 자신의 머릿 속을 세상과 사회, 정보와 지식이라는 색깔들로 채워 넣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것이 바로 덩컨 웨더번과의 여행 (모험) 이기도 했고요.



벨라는 늘 본능적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또한 어른으로서의) 판단 기준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몸을 뉘이고 마구 울어대는 아이처럼, 먹기 싫은 게 있다면 뱉어버리고, 던지고 싶은 게 있다면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이는 벨라가 몸을 팔게 되는 과정에서 역시 마찬가지죠. 몸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 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벨라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매음굴로 입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벨라가 ‘몸을 팔고 돈을 버는 행위를 시작했다‘ 라는 사실보다는, ‘몸을 팔고 돈을 버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라는 사실이 조금 더 중요한 포인트로 느껴졌어요. 매춘을 통해 벨라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벨라는 어떤 결정을 하였는가? 결과부터 말하자면 벨라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취향의 섹스를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는 모든 과정을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느낍니다. 또한 매춘의 생활에 적응해갈 때쯤엔 “마음이 점점 허해져간다” 라고 말하며 지속되는 매춘 생활로 피어나버린 공허감과 허탈함을 여기저기에 대고 호소하죠. 그렇게 벨라는 결국 매춘을 그만두고 갓윈 베스터가 있는 고향으로 향합니다.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마음의 구석들을 무언가로 채워 넣기 위해서요.


*또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 매춘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대하는가 역시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전 여러 캐릭터들의 대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영화가 매춘이라는 방식을 긍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이 이러한 요소들을 영화 셀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또한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기보단, 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뭔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스스로 조금 아쉬웠습니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영화였지만 양쪽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는 영화였어요. 참고로 저는 볼만 했습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서 다시 볼 의향도 있네요. 이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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