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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Dec 05. 2016

기대작과 수상작 IDFA 씬 (2)

트레일러만으로 짐작해본 기대작과 실제 영화제에서의 모습

IDFA 다큐멘터리 영화제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당면한 과제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볼 것인가?"였다.


유튜브  IDFA계정에 올라와있던 2016년 IDFA 출품작 트레일러만 해도 150개(영화제가 끝난 현재는 164개)였고, 당장 영화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 트레일러와 영화의 시놉시스가 판단을 위한 자료였다.


유튜브 IDFA계정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트레일러들


영화제 기간을 기다리며 150여 개의 트레일러를 다 보기로 했다.


문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트레일러들은 대개 우리가 아는 일반 상업영화 트레일러랑은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다큐멘터리계의 블록버스터에서부터 학생들이 만든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가 있기에, 트레일러 자체가 상업영화의 그것처럼 압축하여 재미지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대략 영화의 톤이 어떤지,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혹은 정말 "느낌만" 보여주는 탓에 트레일러를 봐도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트레일러도 있었다.


하지만 꾸벅꾸벅 졸면서 150여 개 트레일러를 꾸역꾸역 다 보았다. 간간이 기억에 남는 트레일러에 대해 남겨둔 메모를 토대로 나만의  IDFA 2016 기대작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이 기대작 리스트의 선정 기준은 당장 내가 영화제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 기반하므로 매우 주관적으로 만든 리스트임을 밝혀둔다.


다큐멘터리 영화 트레일러는 영화의 많은 부분을 담아내는 게 무리가 있기에 영화의 완성도를 보기보다는 대략적인 이슈나 스토리, 영화의 톤, 편집의 리듬감, 주제에 대한 개인적인 공감대 등을 고려하며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재미'였다.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생소한 사람이 보아도 재밌을까 혹은 흥미 있게 볼 수 있을까가 나름대로 주안점을 둔 부분이었다. 숨겨진 맛이 풍부한 다큐멘터리란 장르의 결여는 아직 '꿀잼'이라고 생각하기에.


1.The Eagle Huntress

보자마자 대작이다라고 느낀 트레일러였다. 카자흐스탄 최초의 여성 독수리 사냥꾼으로 훈련되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원한 화면과, 흥미로운 소재가 '꿀잼'을 확신케 했다. 기대작 리스트 맨 위에 올려두고 꼭 봐야지라고 다짐했으나,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수많은 IDFA 관객의 선예약으로 모두 빠르게 매진돼 예약에 실패하고 말았다. 기회가 되는대로 반드시 시청하려는 다큐멘터리이다.

https://youtu.be/Vfi5JS6HTH0


2.China’s Van Goghs

소재가 흥미로웠다. 20년간 생계를 위해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려 팔아 살아왔던 중국의 화가가 고흐의 오리지널 작품을 보기 위해 유럽으로 간다는 스토리였다. 중국의 모조품 경제야 워낙 유명하지만 그 산업을 기반으로 지금은 중국식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예술 산업에서 반영된 중국의 모습, 모조품을 파는 장사꾼과 예술가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주 캐릭터의 고뇌 등 보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많았다.  다행히 IDFA에서 볼 수 있었는데, 기대했던 대로 재미와 의미를 둘 다 잡은 좋은 다큐멘터리였다. 추천할 수 있다.

https://youtu.be/MaSL5GxDl90?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3.Robinù

나폴리의 우범 지역에서 어릴 때부터 갱단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얘기이다. 20살에 처음 사람을 쏘는 거친 인생의 이야기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다뤘다. IDFA에서 스케줄이 맞지 않아 보진 못했지만 볼 수 있는 플랫폼이나 상영관을 찾는 대로 꼭 보려고 하는 영화이다.

https://youtu.be/GZez_wPk28I?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4.Forever Pure

클럽 Beitar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축구팀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축구팀 중 무슬림 선수를 한 번도 영입하지 않은 '순수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팀이었다. 어느 날 구단주가 2 명의 체첸 무슬림 선수를 영입해오고, 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Beitar의 서포터스는 나름의 저항을 시작한다는 시놉시스이다. 소재가 개인적으로 워낙 흥미로워서 기대작 리스트에 넣었는데, 다행히 매진되지 않은 상영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열광적인 응원이라면 롯데나 한화의 야구팬 등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Beitar의 서포터스를 그에 비견하기엔 예루살렘 축구팬들이 서러워할 듯하다.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다큐멘터리이다. 궁서체로 '목숨 걸고' 축구하는 선수들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https://youtu.be/NU5Knh87PDU?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5.Raving Iran

이란의 테크노 음악 '광빠'인 젊은이들이 있다. 이란에서 DJ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던 이들은 이란을 떠나 세계 최대 테크노 음악 페스티벌로 향하는데, 그들 인생에서 줄곧 바라오던 테크노 음악의 현장에서 매료돼버린다. 결국 이란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비자 만료일자는 다가온다는 시놉시스이다. 트레일러를 보면 뭔가 유쾌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상황과 캐릭터에 기대작 리스트에 넣었으나 스케줄상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관객 평점이 순위권에 들은 걸 보니 확실히 재밌는 영화일 거라는 짐작은 간다. PATHÉ TUSCHINSKI 상영관 로비나 Mute매표소 앞에서 둘이서 온 관객들이 Raving Iran을 볼까 하고 논의 중인 모습들을 간혹 보면서 다른 관객들에게도 흥미로워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https://youtu.be/y2YHi8Xh6Fo?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6.Life, Animated

150개 정도 트레일러를 보다 보면 꾸벅꾸벅 졸게 된다. 그러다가도 다채로운 영상의 화면이 나오면 눈이 뜨이는데, 이 영화의 트레일러도 그중 하나였다. 자폐증에 대한 상식을 깨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높은 관객 평점을 받아 12시간 동안의 밤샘 다큐멘터리 관람 마라톤 이벤트인 'Docs around the Clock'에서 볼 수 있었다. 밤 9시부터 진행된 밤샘 상영 중 이 영화의 순서가 맨 마지막이어서 새벽 7시경 비몽사몽으로 보긴 했으나, 자폐증을 가진 어린이가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의 창구를 열어가는 신선하고 감동적인 내용이었던 탓에 그 졸린 와중에도 눈을 뜨고 보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https://youtu.be/stp5CSWepWs?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7.The First Monday in May

이 영화의 트레일러는 편집의 리듬감이 좋아서 메모해두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연중 한번 개최하는 패션 이벤트를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리한나 등 뉴욕의 셀러브리티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그들이 친구 셀럽들 대동하고 등장하는 장면 등이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IDFA 영화제 관람을 시작한 첫날 보게 된 이 다큐멘터리는 기대했던 만큼의 수려한 완성도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미술과 패션과 같은 키워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밌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https://youtu.be/BUiLrQwL2ps?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8.Abandoned Land

이 다큐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란 소재 때문에 보고 싶었던 다큐멘터리였다. 바로 옆 나라에 살면서도 투명하지 않은 일본 정부 덕에 정확히 알 기 힘든 그 현장의 이후 모습들이 궁금했다. IDFA에서 관람한 이 다큐멘터리는 원전 사태 이후 후쿠시마의 모습을 담담하게 잘 찍은 작품이었다. 화면들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그 뒤로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진실이 씁쓸함을 자아냈다. 이후 QnA 시간엔 더욱 답답함을 느끼게 된 일도 있었다.

https://youtu.be/joqXbS53284?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9.Smell Dating

이 영화의 트레일러는 38초로 매우 짧을 뿐 아니라 몇 컷 되지 않는 단출한 영상인데도 '냄새'로 짝을 찾는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줌으로 호기심을 당기게 했다. 스케줄 상 관람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관람 기회를 노려볼 것이다. 단 아이디어가 특이하더라도 그걸 러닝타임 동안 풀어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긴 하다. 

https://youtu.be/xFGr-IpB-a0?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10.Sacred

종교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매우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종교 자체에 대한 논의이거나 어느 한 종교의 씬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다큐멘터리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종교가 그 사회에서 이어지고, 기능하는 모습들을 다채롭게 담아낸다. IDFA에서 처음으로 관람한 영화였는데, 너무나 많은 로케이션에서 퀄리티 있는 멋진 영상들을 담아내서 혹시 클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만든 건가 했는데, 모두 전문 제작진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찍었다고 한다. 도대체 제작비가 얼마인 걸까.

https://youtu.be/qweWaVUoxGM?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




이렇게 10편의 기대작 리스트를 메모해갔지만 스케줄 상 실제 관람할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는 6편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도, 조금은 지루하게 관람하기도 하면서 실제 수상작이나 관객 평가 상위 작품과는 얼마나 겹칠까 궁금하기도 했다. 


11월 23일, 수상작들이 발표되었다. 리스트를 훑어보니 대부분이 주목하지 않았던 다큐멘터리였다. 맞추지 못했다는 실망감과, 이 영화들도 이렇게 재밌게 봤는데 저 수상작들은 얼마나 대단할까란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다.


IDFA Award for Best Feature-Length Documentary, IDFA 장편 다큐멘터리상은  "Nowhere to Hide"가 수상했다.

밤샘 다큐멘터리 마라톤 이벤트에서 볼 수 있었던 이 영화는 한 이라크의 아버지가 직접 내전의 현장에서 찍은 다큐멘터리인데, 실로 충격적이라는 얘기밖에 할 수 없는 생생하고 참혹한 영화이다. 한국에 산다는 것에 감사하자.


IDFA Special Jury Award for Feature-Length Documentary, IDFA 장편 다큐멘터리 심사위원 특별상은 "Still Tomorrow"가 수상했다.

뇌성마비로 장애를 가진 중국 여성이 불행한 결혼까지 겪고 그 아픔을 시로 풀어내 유명해지는데, 그녀의 유명세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트레일러도 보았으나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영화여서 더욱 궁금해졌다. 속히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되길 바란다.


VPRO IDFA Audience Award, VRPRO후원 IDFA 관객상은 "La Chana"에게로 돌아갔다. 전설적인 플라맹고 댄서인 La Chana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설명보다는 실제로 봐야 감동이 전해지는 영화이다. 리듬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전설을 생생한 무대에 세운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밤샘 다큐멘터리 마라톤 상영의 제일 힘든 시간이었던 새벽 5시에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졸지 않고 봤다는 얘기는 이 영화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IDFA 2016 수상작 공식 발표 링크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IDFA 출품작들의 관객 평점 순위


IDFA 2016 수상에 대한 기사 내용들 중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관객 평점 순위였다.

영화제 기간 중 IDFA에 참석하는 영화인의 쉼터였던 Cafe de Jaren에 가면 관객 투표 평점 순위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예매할 영화 선택에도 참고했던 관객 평점의 최종 순위가 결정됐을 때. 각 다큐멘터리들의 실제 관객들이 내린 평가가 어떨지, 그리고 내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궁금했다.


IDFA 2016 최종 관객 평점 순위

최종 순위에서 평점 1위를 차지한 La Chana가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자폐증에 대한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Life, Animated는 2위의 관객 평점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트레일러만 보고 예상했던 The Eagle Huntress가 3위를 차지한 것을 보고 뿌듯했다.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4위를 차지한 Singing with Angry Bird는 한국 제작진이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인도 빈민촌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김재창 선생님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관람하면서 실제 본 관객 반응도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정도로 좋았고, 재밌으면서도 뭉클한 이야기를 잘 찍은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높은 관객 평점을 받은 수작이 국내에서 나왔다는 것이 흐뭇했다. 지혜원 감독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곧 국내에서 관람 기회가 생긴다면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이다.


트레일러만 보고 주목하지 않고 지나쳤던 Prison Sisters 역시 7위의 높은 평점을 받았는데, 실제 관람해 보니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IDFA 2016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Nowhere to Hide와 트레일러만 봐도 재밌어 보였던 Raving Iran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 




비록 실제 영화제에 가게 되어 당장 봐야 할 다큐멘터리들을 고르느라 만들어본 기대작 리스트였지만, 실제 관람을 하며 기대치와 비교해보는 재미, 그리고 실제 수상작과 다른 관객들의 평가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재밌거나 가치 있는 영화들을 발견하면서, 이런 다큐멘터리들을 속히 국내 관객들도 접할 수 있는 EBS의 디박스와 같은 플랫폼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추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많으나, 볼 수 있는 곳을 추천할 수가 없는 실정이니 말이다. 


더불어 해가 지날수록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수준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촬영기술, 편집기술, CG 등이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적절히 활용되면서도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에 다큐멘터리 팬으로서 손이 아프게 박수를 보낼 뿐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리포트를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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