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만끽하려 암스테르담행
암스테르담에 왔다
한국에서 EIDF를 다년간 꾸준히 출석하다 보면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전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인이 집결한다는 국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IDFA가 그것이다.
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닌 일개 팬일 뿐이지만, IDFA란 다큐멘터리의 심장부에 대한 동경은 줄곧 품고 있었다.
사실 일개 팬이라 잘 몰라서 IDFA 발음도 '아이-디-에프-에이'라고 하고 있었다. 현지에 가니 다 '이드파'라고 부르더라. 못 알아들어서 몇 번 민망함. EXID는 '이-엑스-아이-디'라고 읽는데 왜...
어떻게 일정을 맞춰 큰 맘먹고 오긴 왔는데 걱정은 되더라. 생각한 것과 다르면 어쩌지. 너무 전문가들만 모이는 곳이라 할 게 없으면 어떡하지. 사전 조사를 좀 하고 갈랬더니 네덜란드어로 주로 설명된 IDFA홈페이지는 왜 이렇게 뒤져봐도 이해가 잘 안 가는지.
어찌어찌 조금씩 예매도 해두면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내가 번지수를 잘 찾아온 건지 걱정에 고풍스러운 유럽 건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11월 16일부터 27일까지의 IDFA 영화제 일정 중 18일에 도착해 첫 영화를 보러 간 순간, 그 걱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독특함과 유럽스러움과 아늑함을 고루 갖춘 척 봐도 역사를 느낄 수 있는 PATHÉ TUSCHINSKI 상영관에 들어서자 북적이는 다큐 영화인들의 광장 같은 분위기가 '잘 찾아왔어'라고 환영인사를 하는 듯했다.
롯데월드에 못 가봤을 때 상상하던 롯데월드는 이런 모습일꺼야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랄까, 신기해서 서성이다 첫 영화를 보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종종 오게 되는 PATHÉ TUSCHINSKI 상영관이 나는 무척 좋았다.
정말 유럽스러운 외관과 인테리어도 그렇지만
영화 상영을 전후하여 로비에 항상 서성이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적인 모습 때문에도 좋았던 것 같다.
대부분은 다큐멘터리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이겠지만, 단지 일개 팬의 입장에서도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세계인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 자체가 묘한 행복감을 만들어 냈다.
PATHÉ TUSCHINSKI 상영관 중 1관이 특히 아름다웠는데, 어떤 프랑스 영화를 볼 때 그 나라 영화광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것 같은, 참 이 영화제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내 비록 네덜란드어와 영어에 능하지 못해 이 곳 다큐 영화광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어 보진 못했지만, 암스테르담 사람들의 IDFA사랑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 싶음 매진되는 다큐영화가 꽤 많은 것도 그렇지만, 영화관에 들어서다 본 정말 힘든 걸음 하신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골절로 추정되는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러 오는 젊은 여성, 심지어는 콧줄을 하고 오신 노인 분도 보았다.(진짜 놀랐다.) IDFA의 본원이라 그런지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게 진심으로 웃고 깔깔대며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이 곳에 온 보람이 한 층 더 강화됐다.(+1)
예상보다 열띤 이 곳 사람들의 예매 경쟁에 150편의 IDFA 출품 영화 트레일러를 모두 꾸벅꾸벅 졸면서 섭렵하며 메모해둔 영화를 다 보진 못하지만, 단단히 즐기기로 하고 온 이 곳 IDFA의 씬들을 둔탁한 타이핑으로 조악하나마 남기고자 한다.
아직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는 다큐멘터리란 장르의 매력을 심층적으로 드러내고자 너무 심층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느낌적인 느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行인 듯하다.
즐기러 왔는데 만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