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nimated> 다큐리뷰
브런치 초보 작가로서 하나의 글을 시작하는 게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논픽션라이프란 필명으로 하나의 글을 쓰더라도 좀 더 밀도 있는 조사 후에 내실 있는 글을 쓰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특정 정보나 이슈들은 면밀한 조사를 준비하다 늦어지기 전에, 보다 빠르게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경우도 있다.
IDFA 2016에서 만난 <Life, Animated>란 다큐멘터리가 그 예이다.
이 다큐는 자폐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이다. 조사를 하자면 꺼리가 넘친다. 하지만 심도 있는 준비를 위해 기다리기엔 이 다큐는 너무 훌륭해 하루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이 영화는 일찌감치 트레일러를 볼 때부터 알아봤다. 다채로운 화면이 눈에 띄었다. 주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워 보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되는 자폐아라니! 그 한 문장만으로도 만나고 싶어 지는 다큐였다.
그러나 IDFA 관객들의 안목을 너무 무시했을까. 관람 스케줄을 짜며 아차 하는 순간 다수의 상영이 매진되어버렸다. 다른 관람 방법을 찾아보던 중 이 다큐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관객 평점 순위에서 꽤 높은 자리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예매해뒀던 소위 다큐멘터리 마라톤이라고 하는 <Doc around the Clock>에서 관객 평점 상위 7편의 다큐를 연속 상영한다는 것을 들었다. 추이를 보아하니 그 리스트엔 넉넉하게 들어가겠거니 하고 걱정을 아꼈다.
내 예상은 맞았다. <Doc around the Clock>의 7번째 상영작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날 머무르던 호스텔에서 영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을 만났다. 로비에서 IDFA 소식지를 펼쳐보다 우연히 대화하게 된 그녀는 반갑게 영화제 얘기를 나누며 서로 관람한 다큐 정보를 나눴는데, <Life, Animated>에 대해서 물으니 그녀는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며 강력 추천했다.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오웬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그의 모습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흔히 보던 자폐아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루 종일 방에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만 보던 오웬을 관찰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여느 자폐아의 부모가 그렇듯이 오웬과 소통할 방법이 없는 나날을 보내다 문득 오웬이 간단한 대화에 대답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특정 질문에 대답을 하는 패턴에 놀라워하며 주목한 그는, 곧 그 질문과 대답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존재하는 대사인 것을 알아냈다. 하루종일 혼자 디즈니 애니매이션을 보던 오웬의 머리에는 그 모든 대사가 담겨있었고, 아버지가 그 디즈니의 대사 중 하나를 우연히 던지자 오웬은 그다음 대사로 답한 것이다.
오웬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하늘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애니매이션들의 모든 스크립트를 프린트했다. 디즈니의 대사들로 오웬과 조금씩 소통이 가능해지며 자폐증의 틈을 발견한다.
오웬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발판으로 세상과 소통을 넓혀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초기엔 디즈니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였다. 여러 자폐증의 예에서 보이듯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만큼은 덕후를 넘어 통달한 수준인 오웬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든 대사를 암기하고 있다. 그 대사의 단락과 문구를 활용하며 나름대로의 디즈니 세계관으로 발판 삼아 세상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린이를 주 청자로 하는 디즈니가 세상 모든 것을 담는 것이 아니므로, 그 세계관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상의 장벽들이 있다. 블라인드 스팟과도 같은 그 난관들 앞에서 오웬은 좌절하기도 당황하기도 하며 걸어나간다. 그 모습은 일견 코믹하기도 하지만 이내 대견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자폐증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은 학술적인 후행 연구가 기다려짐은 물론이다. 오웬의 소식을 들은 자폐증 학회에선 그를 초대했고. 오웬은 그 학술대회에서 자폐증 환자로서의 단독 발표를 준비한다. 자폐증 환자가 자폐증에 대해 논하는 컨퍼런스라니.
오웬은 결코 쉽지 않았던 학술대회에서의 직접 발표를 수행해냈다. 자폐증 환자로서 얘기하는 자폐증은 어떤 것일까.
오웬은 자폐증에 대한 세간의 인식엔 오해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폐증 환자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다고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과 소통을 단절한 게 아니라 세상과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모를 뿐이라는 것이다.
오웬의 발표 후 쏟아진 박수는 관객으로서 느끼는 울림의 크기만큼 컸다.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오웬과 오웬의 가족이 이겨낸 과정을 다큐를 통해 보았기에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자폐증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스토리 외에 심미적인 부분도 충족시킨다.
이야기의 한 축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화면은 눈을 즐겁게 한다. 역동적인 편집은 덤이다.
오웬의 캐릭터, 강력한 스토리, 다채로운 화면 이런 장점을 지닌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로튼토마토에서도 토마토미터 93%, 오디언스 스코어 84%로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2017/01/30 현재)
https://www.rottentomatoes.com/m/life_animated/
IMDb에서는 평점 7.7점을 기록하고 있다.(2017/01/30 현재)
http://www.imdb.com/title/tt3917210/
이런 좋은 다큐멘터리를 소개할 때마다 관람 플랫폼을 찾기 힘든 것이 항상 아쉬운 대목인데, 다행히도 <Life, Animated>는 관람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www.lifeanimateddoc.com/
<Life, Animated>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여러 정보와 함께, 관람 정보는 아이튠즈로 연결된다.
https://itunes.apple.com/us/movie/life-animated/id1120867190
아이튠즈에 다큐 제목으로 검색해도 되고, 위 링크를 따라가도 무방하다.
아직 한글 자막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추후 여러 플랫폼이나 국내 영화제에 소개된다면 한글자막으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ife, Animated> 트레일러